학생등록 |  학생가입 
일본의 독도강탈야망의 반동성​

령토강탈야망에 들뜬 일본반동들의 파렴치성이 극도에 달하고있다.

얼마전 일본은 독도의 령유권이 마치도 저들한데 있는것처럼 세계여론을 오도할 목적밑에 홈페지까지 개설하고 아무러한 타당성도 없는 자료라는것들을 들어가면서 독도강탈야망을 또다시 드러내놓았다.

최근에 들어와 우심해지는 일본반동들의 독도《령유권》론은 력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하나의 망설이며 가장 악랄한 령토강탈야망으로 일관된 반동적인 침략론리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독도는 그 누구도 침해할수 없는 우리 나라의 신성한 령토입니다.》

일본의 독도《령유권》강탈야망의 반동성은 첫째로, 그것이 조선에 대한 가장 악독한 식민지지배정책의 직접적산물이라는데 있다.

근대시기 일본의 해외침략의 첫 대상으로 된것은 조선이였으며 우리 나라는 20세기초에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되였다. 독도문제는 바로 이러한 일본의 조선침략정책의 발현이다.

지금까지 일본이 들고나오는 독도《령유권》주장의 《신빙성》근거는 1905년 2월 22일에 발포한 《시마네현고시 제40호》이다. 

《시마네현고시 제40호》가 조작공포된 전과정을 따져보면 그것이 철저히 조선에 대한 침략책동의 한 고리였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 문제의 이 공문서가 조작되기 5년전인 1900년에 조선봉건정부는 근대법적요구에 기초한 법령(칙령 41호)으로 독도가 울릉도에 속한 우리 나라 령토임을 명백히 재확인하고 《관보》(정부기관지)에 그 내용을 공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이러한 사실을 고의적으로 외면하고 독도가 저들의 령토임을 주장하는 《시마네현고시 제40호》라는 낮은 급의 지방행정기관공시문을 발포하였다. 여기에는 그들나름의 음흉한 타산이 있었다. 

이 시기 일제는 조선에 대한 독점적지배권을 둘러싸고 짜리로씨야세력과 정치군사적으로 첨예한 대립상태에 있었다. 이로부터의 출로가 짜리로씨야를 군사적으로 제압하는데 있다고 판단한 일제는 1904년 2월 8일 침략적인 로일전쟁을 도발하였으며 그해 2월 23일에는 조선봉건정부를 위협공갈하여 《한일의정서》를 강압적인 방법으로 체결하였다. 6개 조로 된 이 《협정》에서는 전쟁기간 일본군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우리 나라의 임의의 지역을 군용지로 사용할수 있다는것을 못박았으며 그러한 지점의 하나로서 울릉도, 독도도 지정되였다. 뒤이어 일제는 울릉도와 독도에 해군망루를 건설하며 독도주변에 해저전선을 늘여 조선반도 북부와 울릉도-독도-일본령토를 련결하는 전선망가설을 계획하였다.

이렇게 되여 당시까지 일본인들에게 어로적《가치》로만 인정되여오던 독도가 일약 군사적요충지로 되였으며 일제는 그 지정학적가치가 새롭게 부각된 독도를 아예 일본령토로 편입하려는 야망밑에 해군성, 외무성 등 여러 성들을 발동하여 탈취작전을 벌렸다.

교활한 일제는 독도탈취에 정부가 공개적으로 나서는 경우에 일어나게 될 국제적물의를 피하기 위하여 이미 독도수역에서 어업활동을 벌리고있던 민간인어로기업가를 추동하여 《어업독점권》을 신청하게 하고 그것을 농상무성, 해군성, 내무성, 외무성 등이 《심의》하도록 하였다. 1905년 1월 10일 그 《청원》을 접수한 일본내각은 같은 해 1월 28일 독도를 일본령토로 편입한다는것을 결정하고 2월 15일에는 내무대신《훈령》으로 시마네현지사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고 현내에 고시할것을 지시하였다. 이렇게 되여 1905년 2월 22일 《다께시마편입》에 대한 《시마네현고시 제40호》가 조작되였으며 오끼도로부터 서북쪽으로 85n.mile이나 상거하고있는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시킨다는것과 섬을 《다께시마》로 부른다는것을 내용으로 하는 고시문이 《현보》에 게재되고 이 사실이 2월 24일부 《산잉신붕》에 자그마한 보도기사로 실렸다.

이러한 음모에 뒤이어 일본 해군성은 1905년 7월 25일 독도에서 망루설치작업을 시작하여 같은 해 8월 19일에 완성하고 6명의 인원까지 배치하였다. 또한 10월 8일에는 독도와 울릉도를 련결하는 해저전선을 늘이였으며 11월 9일에는 독도와 일본본토를 련결하는 해저선부설을 완료하였다. 이 모든것은 일제가 로일전쟁을 도발하고 우리 나라를 군사적으로 강점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였으며 국제사회계도 조선봉건정부도 전혀 모르게 진행된것이였다.

조선봉건정부가 독도의 일본령토《편입》사실을 알게 된것은 1906년 3월이였다. 다시말하여 음모적인 방법으로 독도를 저들의 령토에 《편입》시킨 일제는 이 사실을 조선에 대한 식민지지배를 확립한 다음해인 1906년 3월 28일에야 조선봉건정부에 알렸으며 그것도 정부급에서 공식적으로가 아니라 지방관리인 오끼도 도사로 하여금 울도(울릉도)군수 심홍택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하게 하였다. 일제의 이러한 책동은 조선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통치를 위하여 이미 작성된 《시간표》에 따라 취해진 계획적인것이였다.

당시 조선봉건정부는 명색뿐이고 이러한 행위를 제지시킬만 한 그 어떤 권능도, 힘도 없었다. 

1905년 11월 17일에 벌써 군사적강권을 발동하여 《을사5조약》을 날조한 일제는 그해 12월 20일 《통감부 및 리사청관제》를 공포하여 식민지지배체제를 확립하고 다음해 1월 17일 《대한제국》의 외부를 완전히 페지함과 동시에 조선봉건정부의 일체 모든 권한을 저들이 조작한 《통감부》가 장악통제하게 하였다.

결국 1905년 일제의 독도《편입》책동은 전조선령토를 강점하기 위한 침략의 전주곡이였다.

오늘날 일본의 독도《령유권》주장은 20세기초 조선에 대한 침략책동의 한 고리로 벌어진 독도강탈책동의 연장이며 식민지강점정책의 산물로서 절대로 허용될수 없는 현대판식민지강탈론, 가장 악랄하고 반동적인 침략론이다.

 

일본의 독도《령유권》강탈야망의 반동성은 째로, 그것이 현시기 일본이 처한 심각한 정치군사적 및 경제적위기를 해소해보려는 극히 모험적인 침략론이라는데 있다.

일본반동들의 독도《령유권》론에는 그들식의 정치적목적이 은페되여있다. 극성스러운 대미추종정책으로 하여 국제사회로부터 《정치난쟁이》, 《외교미숙아》로 불리우고있는 일본은 미국의 대조선정책, 대아시아태평양전략에 대한 적극적인 추종으로 하여 주변나라들로부터 분노와 저주, 조소와 비난의 대상으로 되고있다. 때문에 일본은 《미국에 끌려가는 아시아나라》, 《아시아에서 멀어져가는 아시아나라》로 불리우고있다.

일본의 체질화된 대미추종은 저들의 《정치대국화》를 실현하는데서 가장 큰 흠집으로 되고있다. 이 근본적인 약점을 감추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일본반동들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끊임없는 령토분쟁을 야기시키고있으며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하여 자기의 《위상》을 높이려고 책동하고있다. 중국의 조어도문제, 로씨야의 남부꾸릴렬도문제와 함께 우리 나라의 독도문제를 만들어놓고 그 무엇을 《해결》해보려는 일본의 속심이 바로 여기에 있는것이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의 파렴치한 독도《령유권》론은 오늘 저들의 침략적인 생존전략과도 깊이 련관되여있다.

21세기에 들어와 일련의 나라들이 벌리고있는 여러가지 형태의 경쟁은 본질에 있어서 에네르기쟁탈경쟁으로 되고있다. 현시기 누가 더 많은 에네르기를 개발하거나 쟁취하는가에 따라 나라와 민족의 생존과 번영이 결정된다는것이 지배적인 견해로 되고있다.

일본은 자연부원이 매우 부족한 나라이며 에네르기를 비롯하여 원료, 연료자원의 수입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이다. 이러한데로부터 그들은 21세기 생존경쟁에서 이길 방도를 주변나라들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서 찾고있다. 인공지구위성을 비롯한 현대적인 탐측결과에 의하면 독도주변을 비롯한 조선동해에 풍부한 기체수화물자원이 매장되여있다는것이 이미 알려졌다. 현시기 일본이 독도에 대하여 더욱 탐욕을 부리는 리유의 하나가 여기에도 있다. 독도주변해역의 풍부한 수산자원과 고급어족도 역시 그들의 탐욕대상에서 례외로 되지 않는다. 결국 일본의 독도《령유권》론의 밑바탕에는 에네르기문제를 포함한 심각한 경제적리권쟁탈야망이 짙게 깔려있는것이다.

일본의 독도《령유권》론에는 또한 군사적목적이 보다 중요하게 깔려있다.

일본은 결코 경제적가치때문에만 독도를 탐내는것이 아니다. 해외팽창을 우선적인 국시로 여기고있는 일본에 있어서 독도는 동북아시아의 큰 연안국들을 끼고있는 넓은 조선동해에 위치하고있으며 조선반도에서 가까운것으로 하여 그 지정학적의의가 크고 군사전략적으로 중요시되고있다.

일본반동들은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어 집어삼키려 하고있을뿐아니라 독도문제를 조선재침의 도화선으로 삼으려 하고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독도《령유권》문제는 우리 나라에 대한 재침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구실로 되고있다. 때문에 일본반동들은 일본인들의 호적을 독도로 옮겨주는 날강도적인 행정조치를 취하는가 하면 독도주변수역의 《수로측량》과 《탐사》, 정밀지도제작, 인터네트홈페지를 통한 독도《령유권》의 합법화를 운운하면서 잔꾀를 부리고있다. 또한 독도에 침략무력을 들이밀어 군사적방법으로 섬을 빼앗으려 하고있으며 실제적인 《독도접수》를 위한 군사훈련까지 벌려놓고있다.

총체적으로 볼 때 일본의 독도《령유권》론은 지난날 일제의 강도적침략론이였던 《정한론》의 현대판개정이라는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있다.

일본은 조선민족과 국제사회의 공정한 여론과 량심적인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리성적으로 나오는것이 좋을것이다.

일본이 아무리 잔꾀를 부려도 독도는 과거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영원히 조선민족의 신성한 령토로 남아있을것이다.

리영남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