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민의 해방전쟁승리에 기여한 조선인민의 력사적공적

 

2. 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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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은 다음으로 동북지방과 관내해방을 위한 수많은 작전과 전투들마다에서 무비의 희생성과 영웅성을 발휘하여 주도적이고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중국인민의 해방전쟁 전기간 조선인부대의 모든 전투원들이 숭고한 국제주의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모든 작전과 전투들마다에서 주동적이고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시였다.

해방전쟁초시기부터 무적의 군력을 떨쳐온 조선인부대들은 전략적방어시기와 전략적공격시기의 수많은 작전과 전투들에서 불멸의 위훈을 세우고 전국을 해방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조선인부대들은 우선 전략적방어시기 견고한 방어진지를 굴설하고 완강한 방어전을 벌리는데서 무비의 용감성과 희생성을 발휘하였다.

1946년 4월에 진행된 제1차 장춘해방전투는 조선인부대의 결정적인 역할에 의하여 승리를 이룩한 대표적인 전투였다.

1946년 3월 중순에 들어서면서 쏘련군대가 동북의 대도시들에서 철수하기 시작하자 이 기회를 리용하여 장개석국민당군은 심양과 장춘을 점령하였으며 병력을 집중하여 사평의 동북민주련군 주력부대들을 압박하였다. 그리고 5개 사단의 병력으로 장춘이북까지 차지하고 길림, 교하를 거쳐 돈화, 연변지구로 침공하면서 동북의 해방구들을 위협하였다.

조성된 정세는 동북민주련군이 우세한 력량으로 달려드는 장개석국민당군대의 침공을 좌절시키고 사평계선에서 포위된 부대들을 구출하여 송화강동북쪽으로 이동시키는 한편 동만에 이미 창설된 근거지들을 보위하고 그에 의거하여 동북해방전쟁의 전환적국면을 열어놓을것을 절박하게 요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3월 당시 동북민주련군 부총사령원이며 길료군구사령원 주보중의 요청으로 조선의 최북단 남양에까지 가시여 동북민주련군 주요지휘성원들을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북민주련군 지휘성원들에게 할바령을 중심으로 한 로야령산줄기와 송화강계선에 견고한 방어진지를 굴설하고 그에 의거하여 적의 침공을 결정적으로 좌절시킬데 대하여서와 북만과 남만의 조선인부대들을 총동원하여 정황에 맞게 병력의 집중과 분산, 견고한 방어진지에 의거한 완강한 방어전과 적배후타격전의 배합 등 다양한 전법으로 적을 타격할데 대하여, 당면하게는 사평계선에서 포위되여있는 중국인부대들을 구원하기 위해 장춘해방전투를 진행할데 대한 전술적인 대책안까지 세워주시였다.

 

이에 따라 길동분구사령부산하의 제1야전군과 포련대를 비롯한 2만여명의 조선인사단은 민주련군의 중국인부대들과 함께 주체35(1946)년 4월 사평계선에서 포위된 림표가 지휘하는 동북민주련군 주력을 구출하기 위한 제1차 장춘해방전투를 진행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장춘해방을 위한 전투임무를 받은 련대장 박락권동지는 련대를 이끌고 주타격방향인 동남방향에서 공격하면서 도시공격전법과 적군와해사업을 능숙히 배합하여 적의 주력집단인 《철석부대》를 소멸하고 도시중심부로 공격성과를 확대하여 장춘해방의 결정적인 돌파구를 열어놓았다. 조선인부대의 이러한 결정적역할에 의하여 총공격을 개시한지 5일만인 1946년 4월 18일 장춘은 해방되였으며 사평계선에서 포위되였던 동북민주련군의 주력부대는 안전하게 철수하여 재진격의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게 되였다.

* (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 5 《승리》 조문 민족출판사 1992년 277페지)

 

이 전투에서 조선인부대의 지휘관이였던 박락권동지는 대오의 앞장에서 전투를 지휘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였으며 그가 지휘하는 련대는 《동북의 맹호부대》로서의 위훈을 떨치였다.

조선인부대들은 할바령과 로야령산줄기, 송화강이북지역과 서남지역에서 방어공사를 진행하였으며 그에 의거하여 적들의 침공을 물리치기 위한 치렬한 방어전을 벌리였다.

왕청보안련대에 있던 조선인중대는 주체35(1946)년 8월부터 10월까지 할바령에서 연변으로 나가는 국민당군대를 막기 위하여 방어공사를 진행하였는데 이 방어공사에서 여러명이 길동군구로부터 특공을 수여받았고 10여명이 큰 공을 세웠다.

 

조선인부대들이 할바령계선에서 방어축성공사를 진행한 사실에 대하여 중국도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썼다.

《… 공사에 동원된 조선인부대들은 김일성주석의 뜻을 받들어 동북해방전쟁에서 새로운 국면을 마련하기 위한 진지굴설에서 높은 혁명적기개와 불굴의 의지를 과시했다. 그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낼수 있다는 높은 혁명적기개와 불타는 열정을 안고 없거나 부족한 자재와 작업도구들을 자체로 해결하여 토목화점들도 만들었고 삽과 곡괭이에 불꽃을 튕기며 주야분투하여 전호와 참호, 교통호들을 훌륭하게 꾸려놓았다.》

 

1946년 12월부터 1947년 4월까지사이에 있은 림강보위작전은 국민당의 남만해방지구에 대한 거듭되는 공격을 막아낸 방어전과 적극적인 반타격전의 대표적인 실례이다.

이것을 일명 3하강남, 4보림강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아군부대들이 3번 송화강을 넘어와서 적을 치고 림강에 대한 적들의 공격을 4번이나 막아냈다는 의미이다.

 

3하강남, 4보림강작전에서 휘남현성앞 남산고지탈환전투는 조선인부대들이 영웅적위훈을 세운 대표적인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조선인부대인 독립4사 3련대 1대대 3중대의 12명으로 조직된 폭파조를 인솔한 분대장은 앞장서서 폭파약을 끌어안고 적의 화점에 가슴을 내대여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불타는 적개심을 안고 조선인부대의 전투원들은 고지를 향해 돌격해올라가 적들을 몽땅 소멸하였다.

그후 이 부대에서는 노래 《지뢰수 조성두용사》와 연극을 만들어 보급함으로써 중국인부대에까지 알려지게 되였으며 전반적인 전투사기를 높이는데 이바지하였다.

* (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 5 《승리》 조문 민족출판사 1992년 284~285페지)

 

이처럼 조선의 수많은 아들딸들은 무비의 희생성을 발휘하여 국민당군의 남만침공을 격파하고 근거지를 보위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으며 이로 하여 동북민주련군은 적들의 《남공북수》전략을 파탄시키고 동북에서의 전쟁형세를 유리하게 전변시킬수 있었다.

조선인부대들은 또한 동북의 전지역을 해방하기 위한 작전과 전투들에서 언제나 주력으로 활동하였다.

1947년 7월에 들어서면서 동북민주련군에서는 전략적공격에로 넘어갔다.

동북의 전지역을 해방하기 위한 사평해방전투, 길림해방전투, 금주해방전투, 제2차 장춘해방전투, 흑산-대호산전투, 심양해방전투, 영구해방전투 등 수많은 전투들에서 조선인부대들은 영웅적위훈을 세웠다.

특히 수만명의 조선사람들의 피의 대가로 이루어진 사평해방전투의 승리는 국민당군대에게 서산락일의 운명을 가져다주고 동북해방전쟁에서 중국공산당의 승리를 예고하는 신호로 되였다.

사평해방전투는 조선인부대의 용감성, 희생성의 상징으로 되였다.

처음에 동북민주련군을 지휘하던 림표가 동북민주련군의 중국인부대만으로 사평에 대한 공격을 진행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조선인부대들이 다시 공격의 주력을 맡게 되면서 사평시의 3분의 2를 장악하였다.

이렇게 전과를 올렸지만 심양에서 국민당군 5개 사단이 증원해오기때문에 다시 아군은 사평시를 내주고 철수하여 심양과 장춘사이의 도로와 철도를 차단하고 적들을 견제하였다.

동북민주련군이 장개석국민당군대와 1진1퇴의 공방전을 무려 10개월이나 계속하다나니 아군은 손실을 많이 입었을뿐아니라 전투원들의 사기는 저락되고 전투전망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이러한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평전투의 실태를 보고받으시고 조선인부대의 지휘관들에게 동북에 있는 전체 조선인부대들과 인민들을 총동원하여 적들에게 숨쉴 틈을 주지 말고 집중적인 공격을 들이대여 사평해방전투를 빨리 결속하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동북지방에서 활동하고있던 모든 조선인부대들이 다시 모여왔으며 사평지구에 있던 조선사람들만이 아니라 멀리 연변지구의 조선사람들까지 담가대와 치료대를 무어가지고 사평으로 달려왔다.

동북민주련군은 주도권을 틀어쥐고 국민당군대를 파멸에로 몰아갔으며 최후공격전을 개시하였다.

성시공격의 주타격방향에서 행동한 조선인부대의 장병들은 적들의 발악으로 어려운 정황이 조성될 때마다 대오의 앞장에서 용감성을 발휘함으로써 전투승리에 결정적기여를 하였다.

사평해방전투기간 조선인부대의 공병들은 특출한 위훈을 세웠다.

성시공격부대들의 맨 앞장에서 돌격해들어간 조선인부대 공병들은 희생을 무릅쓰고 적진에 육박하여 돌파구를 열어나갔다.

사평해방전투기간 수많은 조선인부대 장병들이 희생되였는데 그들중에는 적의 포대를 까부시려 폭약을 안고 달려갔다가 희생된 사람들만 해도 수십명에 달하였으며 어느 한 중대는 전투후 30명밖에 남지 않았다.

사평해방전투에 참가하여 조선인부대 전투원들의 영웅적투쟁모습을 직접 목격한 동북인민해방군의 한 지휘원은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시가의 일목일초도 무심히 대할수 없을것이다라고 하면서 조선사람들에 대한 찬탄과 감사의 정을 금치 못하였다.

 

당시 동북인민해방군(1948년 1월부터 동북민주련군을 동북인민해방군으로 개칭) 총사령원은 조선인부대들의 결정적역할에 의한 사평전투의 승리로 자기의 명성이 높아지게 되자 위대한 수령님께 뜨거운 감사와 높은 신뢰, 존경의 마음을 담아 좁쌀 10만t과 지성어린 선물을 올리였다.

동북인민해방군의 한 지휘원은 자기의 글에서 《동북해방전쟁기간에 민주련군지휘성원들이 김일성주석께 홍안령산 수달피외투와 사자털돗자리를 선물로 삼가 드린것은 조선속담에 있는것처럼 머리칼을 베여 신이라도 삼아 그분께 보은하고싶은 우리의 심중을 표시하기 위한것이였다.》라고 썼다.

 

조선인부대 전투원들은 그 이후에 진행된 수많은 전투들에서도 조선사람의 슬기와 기개를 떨치고 무비의 희생성과 대중적영웅주의를 남김없이 발휘하였으며 동북해방전쟁승리에 지울수 없는 공적을 남기였다.

그리하여 수년간에 걸치는 동북해방전쟁은 중국공산당의 승리로 결속되게 되였다.

조선인부대들의 주동적이며 결정적인 역할에 의하여 동북해방전쟁이 중국공산당의 승리로 결속된 후 장개석은 동북전쟁에서 조선사람들이 판을 쳤기때문에 졌다고 실토하였다.

 

중국인민해방군 제4야전군 164사 사단장이였던 왕효명은 조선인부대 장병들앞에서 동북해방전쟁의 승리를 경축하여 연설하면서 《동북지방은 해방되였다. 조선사람들은 동북해방전투에서 기폭제의 역할을 하였다. 군사가 많고 적은것이 전쟁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것은 아니다. 조선사람들이 중국사람들에 비하여 수는 적으나 당신들이 아니였다면 동북지방을 해방할수 없었다.》라고 자기의 심정을 그대로 표현하였다.

 

조선인부대들은 또한 중국관내해방작전에 참가하여 커다란 위훈을 세웠다.

1948년 11월초 중국 동북지방의 가장 큰 도시이며 장개석국민당군대의 총사령부가 자리잡고있던 심양을 해방한 중국인민해방군의 주력부대의 하나인 제4야전군은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관내로 진격해들어갔다.

제4야전군에 속한 조선인부대들은 평진전역에 참가하여 북평, 천진, 장가구를 해방하며 이어 화동지방에서 회해전역을 벌려 장강이북지역을 완전히 해방하는데도 크게 기여하였다.

조선인부대 전투원들은 동북해방전쟁이 승리적으로 결속된 후에도 관내해방을 위한 수많은 전투들마다에서 위훈을 세워 전국해방의 날을 앞당겨나갔다.

천험의 요새에 의거하여 저항하던 적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엎고 불의적인 공격으로 승리한 장강도하전투와 중경해방전투, 참대돛배로 미국제군함을 격침시킨 해남도상륙전투 등은 조선인부대 전투원들의 무비의 희생성과 용감성, 결정적이며 주도적인 역할에 의해 승리가 이룩된 대표적인 전투들이다.

장강도하시 조선인부대의 전투원들은 대담하게 당풍진의 적을 기습하여 68척의 선박을 로획한데 이어 장강기슭의 적들을 들이쳐 300여척의 선박을 로획하였으며 희생을 무릅쓰고 아군의 진격로를 개척하였다.

조선인부대의 전투원들의 희생적인 투쟁으로 로획한 각종 배들을 타고 인민해방군 부대들이 장강을 도하하여 적들의 퇴로를 차단하자 적 한개 군단은 스스로 투항하였다.

조선인부대의 전투원들은 장강을 도하한 후 장사, 대용, 중경을 해방하기 위한 전투에서도 위훈을 세웠다.

중국인민해방군 제2야전군 사령원 류백승은 중경해방전투에서 공훈을 세운 제4야전군 47군의 조선인부대 모든 전투원들에게 표창을 주었으며 중남군구 총부에서도 47군에 집체표창을 하였다.

원래 중경을 해방할 임무는 중국인민해방군 제2야전군이 맡았는데 4야전군 47군의 조선인부대들이 중경해방을 도와준데 대하여 매우 감사히 여겨 표창하였던것이다.

중국인민해방군 제4야전군 13병탄 38군, 49군에 속한 조선인부대들도 산해관을 넘어 평진전역에 참가하고 의당전투를 승리적으로 끝냈으며 양자강을 건너 형보전투 등 수십차의 전투를 거듭하면서 하남성, 강서성, 광동성, 호남성, 광서성, 귀주성들을 련이어 해방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외에도 조선인부대의 전투원들은 해남도상륙작전과 해방전투에서 무비의 희생성과 용감성을 발휘하여 선봉대, 돌격대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함으로써 빛나는 공훈을 세웠다.

조선인부대 장병들이 중국혁명에 이바지한 사실에 대한 이상의 자료는 수많은 전투와 사건들가운데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전 동북민주련군의 한 지휘원은 자기의 회상기에서 《조선인민이 피로써 중국혁명을 도와준것은 진정한 동지, 진정한 전우만이 할수 있는 지지성원이였다. 중국의 광활한 대지에 선혈을 뿌린 혈전만리의 길에서 어느 한 조선인사단은 700명밖에 남지 않은 실례까지 있었다. 중국혁명에 심신을 바친 조선동지들의 헌신과 희생을 늘 잊지 않고있던 모택동주석과 주은래총리는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중국혁명을 각방으로 지지성원해주신데 대해 깊은 사의를 표하고 중국의 오성홍기에는 조선동지들의 피가 스며있다고 하였으니 그에 담긴 의미심장한 뜻을 어찌 잊으랴.》라고 썼다.

 

참으로 조선인부대의 전투원들은 중국해방전쟁의 나날 동북광야로부터 해남도에 이르기까지 전중국의 광활한 대지우에 수많은 위훈의 발자욱을 남겨놓았다.

김일성종합대학 박사 부교수 엄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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