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조선국토병탄을 《합법화》한 비법불법의 문서 《한일합병조약》​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제국주의는 지난날 근 반세기동안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과 고통을 들씌운 피맺힌 원쑤입니다.》

올해는 과거 일제가 비법적인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한 때로부터 110년이 되는 해이다.

일제는 《한일합병조약》을 강압날조하여 조선의 국토를 병탄하고 우리 인민에게 수십여년간 식민지노예의 비참한 운명을 강요한 불구대천의 원쑤이다. 일제가 조선인민에게 들씌운 이 극악한 범죄행위는 력사상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가장 악랄하고 비렬한것이였다.

일제가 날조한 《한일합병조약》은 우선 군사적위협과 강권에 의하여 날조된 《조약》으로서 그 어떤 합법성도 없는 불법무법의 문서이다.

일찌기 19세기중엽부터 피비린내나는 《정한론》을 부르짖으며 조선에 대한 침략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려오던 일제는 1876년 《강화도조약》체결을 계기로 우리 나라에 대한 본격적인 침략의 길에 들어섰다. 그후 미제의 적극적인 지지와 사촉을 받으며 조선에서 독립적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하여 미쳐날뛰던 일제는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로일전쟁을 통하여 저들의 이 추악한 목적을 달성할수 있었다.

일제는 이에 토대하여 우리 나라를 저들의 완전한 식민지로 전락시키기 위한 범죄적인 책동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었다.

1905년 《을사5조약》과 1907년 《정미7조약》의 날조를 통하여 우리 나라의 외교권과 내정권을 강탈한 일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조선의 국토를 병탄하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이 지구상에서 없애버리기 위한 전대미문의 범죄책동에 련이어 달라붙었다.

1909년초에 당시 일본외상이였던 고무라 쥬다로는 조선에 대한 병합과 그를 실현하기 위한 방도를 적은 침략안인 《대한방침》, 《대한시설대강》을 외무성 정무국장 구라찌 데쯔기쯔와 비밀리에 합의작성한 후 1909년 3월 30일에 그것을 총리대신 가쯔라에게 제출하였다. 이 침략안은 그해 4월 10일에 진행된 가쯔라, 고무라, 이또 히로부미 3자비밀회담에서 아무러한 의견상이도 없이 그대로 통과되였으며 7월 6일에 정식 각의를 걸쳐 일본《천황》의 재가를 받아 확정되였다.

일제는 이 침략안에서 《적당한 시기에 한국의 병합을 단행할것》, 《병합시기가 도래할 때까지는 병합의 방침에 따라 충분히 보호의 실권을 갖도록 노력하며 실력부식을 도모할것》 등 《조선합병》을 위한 실행계획을 구체화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의 국토병탄을 국책으로 정한 일제는 곧 그것을 실행하는데 달라붙었다.

교활한 일제는 먼저 친일주구단체인 《일진회》를 조종하여 《한일합병청원운동》을 벌리도록 하였다. 그들이 여기서 노린것은 조선병탄이 마치도 조선사람들의 《의사》에 따라 실행된것처럼 묘사함으로써 저들의 범죄행위를 합법화, 정당화하자는데 있었다.

그러나 일제의 그 어떤 간교한 책동도 조선인민을 속일수 없었다. 우리 인민들은 일제의 국토병탄책동을 반대하여 여러가지 형태의 투쟁을 과감히 벌렸다.

음모적방법으로는 저들의 더러운 목적을 순조롭게 이룰수 없다는것을 느낀 일제는 군사적위협과 강권으로 《조선합병》을 실행하는 길로 나갔다.

일제는 1910년 5월 30일 《합병》을 단행할 인물로 악명높은 륙군대신 데라우찌 마사다께를 지정하고 이자를 3대 조선《통감》으로 임명하였다.

또한 《합병》준비를 빈틈없이 하기 위하여 이해 6월 3일에 《병합준비위원회》를 설치하고 여기에서 조선봉건정부의 황실과 원로대신의 대우, 조선인민에 대한 통치방침, 《합병》실현에 필요한 자금보장 등 총 21개에 달하는 조항을 검토하게 하였다. 이 위원회에서 내린 결정은 7월 7일에 완료되여 8일 내각회의에서 《병합실행방법제목》으로 승인을 받았다. 《병합실행방법제목》에는 일제가 일방적으로 미리 작성한 합병조약안, 선언문 등도 들어있었다.

일제는 이러한 준비끝에 1910년 7월 중순에 데라우찌에게 《합병조약》을 체결할데 대한 임무를 주어 조선에 파견하였다.

7월 23일에 피묻은 발을 서울에 들여놓은 데라우찌는 즉시 일제침략군과 헌병, 경찰들을 대대적으로 증강하는 한편 일체 정치적집회와 연설회 등을 금지시키고 이를 어기는 경우 가차없이 체포, 투옥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살벌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여 조선봉건정부의 통치배들을 위협한 데라우찌는 8월 16일 친일매국역적들인 리완용, 조중웅 등을 불러 《한일합병조약안》과 《합병》에 관한 각서를 넘겨주고 대신회의에서 그대로 접수할것을 강박하였다.

일제가 날조한 《한일합병조약》은 또한 국제법적요구를 완전히 무시한 《조약》으로서 그 어떤 법적효력도 가질수 없는 비법불법의 문서이다.

8월 18일 일제의 날강도적인 요구에 순응한 매국역적 리완용은 대신회의를 열고 일제가 제시한 《합병조약안》을 토의에 붙였다. 그러나 학부대신 리용직이 이에 대해 《이같은 망국안에는 목이 달아나도 찬성할수 없다.》고 강경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이날 회의는 아무런 결과도 없이 끝나고말았다.

이렇게 되자 데라우찌는 리용직을 일본의 《수해위문》을 위한 특별대신으로 임명하고 그를 일본으로 강제로 빼돌리도록 하였으며 다른 대신들을 통감관저로 불러 《조약》안에 찬성할것을 강박하였다. 군사적위협과 공갈로 친일매국역적들을 굴복시킨 데라우찌는 1910년 8월 22일 리완용을 불러 《한일합병조약》에 《조인》하게 하였다.

군사적위협과 강권으로 조선의 국토병탄을 《합법》화한 《한일합병조약》은 초보적인 국제법적요구를 완전히 무시한 거짓문서로서 그 어떤 법적효력도 가질수 없는 비법불법의 빈종이장에 불과하였다.

《조약》날조 당시 널리 통용되였던 《만국공법》제409조에는 《만일 다른 사람의 협박을 받아 자유가 없이 한것이라면 그 조약은 다 페지할수 있다.》고 규정되여있으며 1969년 유엔국제법위원회에서 채택한 윈협약에는 조약이 《협박에 의한 강제의 결과에 수행된것인 경우에는 어떠한 법적효력도 가지지 않는다.》라고 규정되여있다. 그러나 일제는 국제조약체결의 보편성과 공인된 원칙에 완전히 배치되게 폭력적인 위협속에서 쌍방사이의 자유로운 합의가 전혀없이 일방적인 강압과 강요로 《한일합병조약》을 제멋대로 날조하였을뿐아니라 조약의 효력발생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인 최고통수자의 비준까지도 위조하는 류례없는 국제법적사기, 협잡행위를 감행하였다.

《만국공법》 제406조에는 조약은 《반드시 국왕의 승인이 있어야 실행될수 있으며 국왕이 비준하지 않으면 곧 휴지로 된다.》고 규정되여있다. 하지만 일제는 국제조약체결절차와 효력발생조건을 무시하고 조선황제의 비준을 위조하는 파렴치한 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순종황제는 1926년 4월 26일 림종직전에 남긴 유언에서 《일명을 겨우 보존한 짐은 병합인준의 사건을 파기하기 위하여 조칙하노니. 지난날의 병합인준은 강린(일제를 말함-인용자)이 역신의 무리와 더불어 제멋대로 해서 제멋대로 선포한것이요. 다 나의 한바가 아니라, 오직 나를 유페(깊숙이 가두었다는 뜻-인용자)하고 협제(위협하고 통제한다는 뜻-인용자)하여 나로 하여금 명백히 말을 할수 없게 한것으로 내가 한것이 아니니 고금에 어찌 이런 도리가 있으리요.》라고 하였다.

이처럼 일제에 의해 조작된 《한일합병조약》은 아무런 합법성도 법적효력도 없는 비법불법의 《조약》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일본반동들은 《한일합병은 조선인의 선택이였다.》느니, 《세계 여러 나라와의 합의》가 있었다느니 뭐니 하면서 일제의 《조약》날조행위를 외곡, 정당화하면서 조선침략사를 극구 미화, 찬양하고있다. 이것은 일본특유의 군국주의적체질과 도덕적저렬성을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일본은 그 무엇으로써도 과거 침략적이며 강도적인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한 행위를 비롯하여 40여년간의 조선식민지통치기간 우리 인민에게 끼친 특대죄악을 절대로 정당화할수 없다.

서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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