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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대의 명수 월명과 단천령​

우리 나라 중세력사에는 저대명수로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로는 승려 월명과 단천령을 들수 있다.

월명은 8세기중엽 신라 경덕왕때의 이름난 승려였다. 월명은 《도솔가》, 《제망매가》 등 향가작품을 창작한 시인이였을뿐아니라 저대명수이기도 하였다. 한번은 그가 달밝은 밤에 정문앞길을 거닐면서 저대를 불었더니 달이 가던 길을 멈추었다고 한다. 이로 말미암아 그가 거닐던 길을 《월명리》라고 불렀으며 이때부터 저대명수로서의 그의 이름도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단천령은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저대명수였다. 16세기 중엽에 활동한 단천령은 종실계렬의 사람으로서 당시 서울장안에서 이름난 저대명수였다.

그는 1560년경에 개성으로 가던 도중 림꺽정이 지휘하는 농민폭동군에게 붙잡힌적이 있었다.그때 폭동군은 그가 종실 단천령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저대를 잘 불것이라고 하면서 한번 저대를 불어보라고 하였다.

때는 달이 하늘중천에 떠있어 낮과 같이 밝은 밤이였다.

단천령이 팔소매속에서 학의 다리뼈로 만든 짧은 저대를 꺼내여 한곡조 불기 시작하였다.저대소리는 마치 룡이 날아갈듯이 용솟음쳐 하늘에 충돌할 기세로 울려퍼지더니 어느사이에 변하여 비장한 감정을 자아내는 처량한 음을 내기도 하였다.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경하던 사람모두가 환희에 차있었고 지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림꺽정은 여러 사람들의 동정을 살펴보다가 급히 손을 흔들어 저대소리를 중지시키면서 《저 량반을 여기에 남겨둔댔자 쓸데가 없다.당장 돌려보내라.》고 하였다.그리고 자기가 패용했던 작은 칼을 단천령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가는 길에 길을 막는자가 있을것이니 이 칼을 보이라.》고 하였다.

단천령이 다음날 장단에 도착하니 과연 두 기마병이 나타나 체포하려고 하였다.단천령이 곧 림꺽정으로부터 받은 칼을 내보이니 그들은 즉시 그를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그후 항간에 퍼져 저대명수로서의 단천령의 명성이 더 높아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들은 력사기록에 남아 전하는 단편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그러나 이를 통하여 사람의 감정은 물론 자연도 감동시킬만큼 풍부한 형상력을 가진 악기를 만들고 그를 능숙하게 다룬 우리 선조들의 슬기와 재능을 다시한번 엿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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