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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1397-1450)

조선봉건국가의 제4대왕. 

자는 원정, 태종의 셋째아들이다. 

세종은 비교적 풍부한 학문지식을 소유한 봉건군주로서 통치기간(1419-1450) 적극적인 문화장려정책을 실시하였다.

1420년 학자들을 모아 집현전이라는 학술기관을 설치하고 력대의 책들을 수집연구하였으며 세계에서 제일 먼저 측우기를 만들어 전국적으로 강우량을 재게 하였다. 그리고 정초, 정린지 등을 시켜 자동물시계와 해시계, 여러가지 천문관측기구들을 만들어 기상천문관측사업을 진행하게 하였다.

왕궁안에 언문청을 설치하고 성삼문(1418-1456), 최항(1409-1474), 정린지(1396-1478), 신숙주(1417-1475) 등 집현전학자들에게 연구를 진행하게 하여 1443년 12월(양력 1444년 1월)에는 28자로 된 우리 나라 문자인 《훈민정음》을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그의 통치시기 불교는 억제되고 유교가 장려되였으며 《고려사》, 《력대병요》, 《농사직설》, 《향약집성방》 등 여러 부문의 도서들이 수많이 편찬되였다.

이 시기 대외적으로는 명나라, 일본과의 관계가 정상화되였다. 두만강연안에 6진(경흥, 경원, 종성, 온성, 회령, 부령), 압록강중류연안에 4군(려연, 우예, 무창, 자성)이 설치됨으로써 북쪽지방의 방비가 강화되였다.

세종통치시기 봉건문화가 발전하고 나라의 대외적지위가 높아졌다. 봉건군주로서 세종의 모든 활동과 그 결과는 봉건지배계급의 리익을 옹호하기 위한것이였다.

이 시기 인민대중에 대한 봉건적압박과 착취는 보다 째여지고 강화되였다. 토지별농사작황에 따르는 토지등급이 규정되고 조세수탈을 위한 공법이 제정되였다.

조선봉건국가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의 기초로 된 《경제륙전》이 증보되였다.

결과 인민대중에 대한 봉건적억압과 착취는 더욱 강화되였으며 이로 말미암아 이 시기 평양의 대성산에서는 농민폭동군의 대규모적인 투쟁이 계속되였다.

모든 사실은 봉건통치하에서는 그 어느 시기에도 피압박인민대중의 처지는 여전히 가혹하였다는것을 말하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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