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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사》의 창작유래​

사람들은 세나라시기 백제의 가요라고 하면 모름지기 가요 《정읍사》를 제일먼저 생각할것이다.

이 가요가 창작된지도 이제는 어언 천수백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읍사》가 오늘까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는것은 그 사상예술적우수성과 함께 거기에 깃든 당대 인민들의 애틋한 인정세계 특히는 작품의 창작유래에 대한 일화와 적지 않게 관련되여있다.

가요 《정읍사》의 제목은 백제때 정읍현에서 지어진 노래라는 의미로 붙여진것이다.

언제인가 이 현에 살던 어떤 사람이 멀리 행상을 떠난적이 있었다.

당시 가난한 사람들속에서는 농한기에 행상(보짐장사)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런데 그 행상인이 여느때에는 닷새면 어김없이 돌아오군 하였는데 이번에는 보름이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이였다.

기별 한장 없는 남편을 두고 초조해하던 행상인의 안해는 그를 마중가려고 몇번이고 길차비를 갖추었지만 홀로 남을 아이 생각에 도로 눌러앉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여느날처럼 남편의 밥그릇을 가마에 넣어두고 방문을 열던 안해는 아버지를 부르는 아이의 잠꼬대를 듣게 되였다.

(오죽이나 아버지가 그리웠으면…)

한숨속에 다시 문을 닫은 안해는 이날따라 짙어가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안은채 천천히 전주로 뻗은 등성이오솔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달빛에 어스름히 드러난 길, 그우로 인차 오마하고 떠나가던 남편의 정겨운 모습이 안겨왔다.

혼인후 말다툼 한번없이 의좋게 살면서 늘 반복되는 리별이 지겨워 제발 이노릇을 그만두라고 애원한적은 그 몇번이였던가.

그때마다 남편은 《참, 아낙네들이란 마음이 너무 여린게 탈이야. 농사만 지어 산다면 여북 좋겠나. 관가에 물 조세만 해도 아름찬데 그냥 있으면 어쩔텐가.》 하며 훌쩍 떠나군 하였다.

이번에도 같이 따라서겠다는 청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으나 안해는 먼길가는 남편의 마음을 번거롭게 하는것 같아 그만두었었다.

깊어지는 상념을 안고 등성이마루에 올라서는데 문득 저아래 수림가에서 인기척소리와 함께 웬 그림자가 언뜻 스쳐지나는것이였다.

안해는 너무 기쁜김에 무서움도 잊고 가까운 너럭바위로 뛰여올랐다.

《이보세요, 당신이예요?》

그러나 산골짜기가 되넘기는 메아리뿐 저쪽에선 아무런 응대도 없었다. 아마 밤짐승이였던게지.

저도 모르게 허거픈 웃음을 지으며 바위우를 내리려던 순간 (혹시 남편이 밤길을 오다가 맹수나 도적이라도 만나면…) 하는 불길한 생각에 그는 그만 등골이 오싹해났다.

그는 다시 수림속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으나 어둑침침한 그곳에선 소쩍새소리만 처량히 들려왔다.

(제발 그이가 늦어지더래도 밤길을 걷지 말았으면.…)

갈마드는 불안감으로 차마 바위를 내리지 못하는 안해의 심중에는 이제껏 품었던 야속함보다도 남편의 신상에 대한 근심이 더 짙게 갈마들었다.

하지만 일이란 예측하기 어려운 법이니 남편이 꼭 이밤에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수 있으랴.

(이럴 때 홰불이라도 있었으면 그이가 찾아오게 비쳐라도 주련만…)

안해는 무심결에 사위를 둘러보았다. 모든것이 어둠에 잠겨 쥐죽은듯 고요하였다.

단지 눈앞에 또렷이 보이는것은 중천에 솟은 둥근달님뿐이였다.

그러나 그 달빛은 너무도 희미하게만 느껴졌다.

(아, 달님아, 너라도 좀 더높이 솟아서 랑군님 오는 앞길을 비쳐주려마.)

안타까운 심정을 하염없이 되뇌이던 녀인에게 불현듯 (그렇지, 차라리 노래를 부르면 어떨가. 그럼 그이가 오시더라도 멀리서 내 노래를 들으실수 있을거야.)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리하여 안해는 달을 우러러 진정을 터놓듯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달아 높이 좀 돋아서

어긔야 멀리 좀 비치여다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온 장터 다니시지 않느냐

어긔야 진창을 디디올세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한참 노래를 부르느라니 어느덧 마음속에 남편이 자기의 노래소리를 듣고 더 빨리 올것만 같은 생각이 들면서 무거운 근심이 한결 가벼워지는것만 같았다.

그럴수록 안해는 더욱 목청을 돋구며 거듭 노래를 불렀다.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는데 캄캄할세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안해의 갸륵한 그 심정을 헤아린듯 은하수 비낀 밤하늘의 달님도 유난히 밝은 빛을 뿌려주고있었다.

 

*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정읍사》를 《정읍곡》으로도 표기하였다. 그에 의하면 조선봉건왕조시기까지도 정읍현 북쪽 10리되는 곳에 행상인의 처가 노래를 지어부르던 바위가 있었는데 그것을 가리켜 《망부석》(남편을 기다리며 바라보던 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정읍사》는 현재 전해지는 우리 나라 가요유산가운데서 절가형식의 가장 오랜 작품의 하나로서 녀성적인 부드러움과 섬세성이 느껴지는 시적서정의 특성과 고유한 우리 말 표현의 재치있는 구사 등으로 하여 세나라시기 서정가요의 발전면모를 엿볼수 있게 한다.

《정읍사》는 창작이후 광범하게 애송되면서 후날 봉건궁중음악으로까지 리용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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