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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요》​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시집 가서

서동이를

밤이면 안고 잔다네

 

어찌 보면 궁중에서 호의호식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은 공주의 타락한 생활을 야유하는듯싶은 노래 《서동요》이지만 여기에는 백제의 총각 서동과 신라 진평왕(579-632)의 셋째공주 선화와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깃들어있다.

서동은 원래 백제의 수도 사비성 남쪽 어느 한 산기슭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았다.

그는 들에 나가 마를 캐다 팔아서 하루하루 끼니를 이어왔는데 그가 마를 캐는 총각이라고 하여 그의 이름을 한자로 마서자를 붙여 서동이라고 불렀다.

서동이 어렸을 때 어느날 동무들과 함께 마를 캐러 나갔다가 이웃동네에 새로 시집온 한 새각시를 두고 잘생겼다느니, 못생겼다느니 하면서 말씨름을 벌린적이 있었다.

이때 서동은 친구들앞에서 《나는 아주 이쁘고 귀한 녀자한테 장가들테다.》하고 흰소리를 쳤다.

그러자 한 친구가 《그럼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게 생겼다는 신라공주 선화한테 가지.》하고 놀려주었다.

《선화공주?! 그가 정말 세상에 으뜸가는 미인이라면 그한테 장가들테다.》

그 말을 듣고 친구들은 와르르 웃었다.

《얘, 선화공주가 너같은 가난뱅이한테 시집 오겠대?》

《소가 웃다 꾸레미 터지겠다. 얘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바라보지도 말랬어.》

《왜, 나도 좀 있으면 총각이 될텐데.》

《하하하, 총각이 되면 아무한테나 다 장가갈수 있다더냐?》

친구들의 놀림을 받게 된 서동은 약이 올랐다.

《가지 않구. 두고봐, 내 이제 꼭 선화공주를 색시로 삼고말테다.》

원래 한번 한다고 한 일은 해내고야마는 성미인지라 서동은 이때 동무들앞에서 으시대느라 롱으로 한 말이지만 앞으로 기어이 선화공주를 안해로 삼으리라 마음먹었다.

어느덧 서동이 다 자라 기골이 장대한 름름한 총각이 되였다.

그리하여 그는 친구들에게 한 언약을 실행하려고 신라로 떠났다.

그는 선화공주를 찾아다니면서 만약 공주가 자기를 가난뱅이로 배척하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공주가 혼자 다닐 때 업어오거나 밤에 그의 방에 뛰여들어가 자루에 넣어서라도 데려오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신라의 수도에 와보니 공주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우선 공주가 사는곳이 어딘지 알아내기가 조련치 않았다. 서동이 람루한 옷차림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선화공주가 어데 사는가고 물으면 모두 대주지 않았을뿐아니라 도리여 미친놈이 아닌가 하여 피하기까지 하였다.

여러날 신고하던 끝에 선화공주가 있는 곳이 사량궁이라는것을 겨우 알아내여 찾아갔으나 이번엔 궁을 호위하는 군사들이 그앞에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하지만 어느때이건 공주가 궁밖으로 나올 때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기다려보았으나 한달이 가고 두달이 가도 공주는 그림자조차 볼수가 없었다.

그사이에 서동의 가슴은 바질바질 타들었다.

어떻게 하여야 공주를 불러낼수 있을가.

그를 만나자고 누구한테 부탁할수도 없는것이고 궁앞에서 나오라고 소리를 쳐 불러낼수도 없는 일이였다.

(공주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이런 번민속에 모대기고있을 때 매일같이 궁안에서 울려나오는 노래소리와 거리와 골목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소리가 그의 머리를 틔워주었다.

《그렇지, 노래로 공주를 불러내자. 노래는 누구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궁궐에도 들어갈수 있을것이니까.》

그는 곧 공주와 자기의 관계를 담은 노래를 지었다.

그리고는 자기가 길량식으로 가지고왔던 마를 구워 거리에서 놀고있는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면서 노래를 배워주었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시집 가서

서동이를

밤이면 안고 잔다네

 

노래는 놀랄만 한 파문을 일으켰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이 거리, 저 거리로 퍼졌고 얼마후에는 온 장안에, 나중에는 궁궐에까지 번져가게 되였다.

그러자 공주의 비행을 비난하는 여론이 궁궐안팎에서 떠들썩했고 고관들은 왕에게 꼬리를 물고 상소하였다.

《이 소문이 비록 근거없는것이오나 공주가 궁중의 풍기를 어지럽혔다는 소문이 성안과 온 나라에 퍼지고있으니 그냥 놔두었다가는 궁실의 존엄이 심히 훼손될가 하나이다.

아무래도 공주를 궁궐에서 내보내여 온 나라 관리들과 백성들에게 나라의 법도가 엄함을 알려야 할것 같사옵니다.》

노한 신라왕은 선화공주를 멀리 정배보내라는 령을 내리였다.

그리하여 억울하게도 선화공주는 서동이 내돌린 노래때문에 궁궐밖으로 쫓겨나게 되였다.

서동은 사량궁근방에 지켜섰다가 귀양지로 가는 공주의 뒤를 따랐다.

《공주님, 저도 귀양지쪽으로 가는 사람이온데 불행하게 된 공주님을 위하여 그곳까지 모셔다드리고저 하오니 저의 소원을 허락해주시기 바라나이다.》

억울하고 쓸쓸한 마음을 어데다 하소할데 없어 안타까와하던 선화공주는 서동의 청을 기꺼이 받아주었다.

서동이 공주를 가까이하고보니 선화공주는 정말 듣던바대로 이 세상에 더없을 미인인데다 마음 또한 어지였다.

서동은 한없는 기쁨과 행복감에 싸여 밤낮없이 공주곁에서 떠나지 않고 극진히 돌봐주었다. 원래 노래를 잘 부르는 서동인지라 공주의 울적한 기분을 가셔주려고 여러가지 흥겹고 즐거운 노래도 지어 불러주었다.

선화공주는 매우 기뻐하며 길을 갈 때나 류숙할 때나 서동을 곁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였으며 매번 재미나는 이야기와 노래를 청하군 하였다.

이러는 사이에 선화공주는 서동에게 정이 들었다.

귀양지에 도착한 서동은 공주의 거처지를 마련하여 불편없이 지내도록 한다음 공주에게 자기는 할일을 다하였으니 이젠 그만 물러가겠노라고 하였다.

그러자 공주는 펄쩍 놀라며 정배살이가 끝날 때까지 자기를 동무해주며 떠나지 말라고 극력 만류하였다.

이때에야 서동은 넌지시 물었다.

《하지만 제가 남자로서 어찌 늘 공주님곁에 있겠나이까. 그러다 서동이라는 사람이 나타나면 공주님에게는 좋지 않을테니 제가 물러남이 좋을가 하나이다.》

《서동이요?! 호호… 난 아직 그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보지도 못했어요.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남을 곤경에 빠뜨려놓을수 있을가요. 한번 속시원히 만나보기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이제 그 사람이 나타나면 어찌겠나이까?》

《나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어요. 이 원한을 기어이 풀고야말터이니 그대는 조금도 겁내지 말아요.》

이때 서동은 정색하고 무릎을 꿇었다.

《제가 바로 그 서동이옵니다.》

《아니?…》

공주는 깜짝 놀랐다.

《저는 백제사람이온데 어렸을 때부터 공주님이 인물 잘나고 품행이 바르다는 소문을 듣고 안해로 삼고싶은 마음을 금할수 없어 신라에 왔습니다.

그런데 공주님을 만날길이 없어 할수없이 그런 불손한 노래를 지어 내돌리였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곤장을 안기든 목을 치든 이젠 공주님의 처분에 맡기겠나이다.》

《?!》

공주는 너무도 뜻밖의 일에 어안이 벙벙하여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러니 지금껏 내가 저 어리무던하고 착해보이는 총각의 잔꾀에 걸려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분하고도 맹랑한 일이였다. 그러나 공주는 이 열정적이고 대담한 총각에게 벌을 내릴수 없었다. 이미 그의 가슴속에서는 서동에 대한 사랑이 봄풀처럼 자라고있었던것이다.

《아니, 난 당신을 절대로 놓아줄수 없어요. 가지 마세요, 가지 마세요.》

그러는 공주의 아름다운 눈에는 맑은 눈물이 가랑가랑 맺혔다. 그것은 행복의 눈물이였다.

 

* 옛 문헌기록들에 의하면 서동은 백제 30대왕인 무왕(600-641년)의 어린시절 별명이였다고 한다. 《서동요》는 현재까지 가사가 전해지는 초기향가의 하나로서 원래는 인민들의 슬기와 지혜를 찬양하여 구전으로 창조전승되던것인데 7세기 후반기에 향찰표기법으로 서사화된것으로 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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