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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1907.6.8-1982.4.9)​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 군사활동가. 본명은 최득권이다. 

일찌기 반일투쟁에 참가하였다가 옥중생활도 하였다. 주체21(1932)년 7월에 감옥에서 나온 후 연길현에서 적위대를 거쳐 반일인민유격대에 입대하였으며 연길유격부대 중대정치지도원으로 있었다. 이해 10월 당조직의 성원으로 되였다. 주체22(1933)년 9월 왕청현 소왕청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만나뵙고 귀중한 선물을 받는 영광을 지니였다. 좌경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에 의하여 《민생단》의 억울한 루명을 쓰고 전사로 강직되였다가 주체24(1935)년말 중대장으로 임명되였다. 주체25(1936)년 3월 안도현 미혼진밀영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또다시 만나뵙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아안았으며 이때부터 련대장의 중책을 맡고 군사정치활동을 능숙히 벌리였다. 주체26(1937)년 5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국내진공작전방침을 받들고 무송으로부터 안도, 화룡을 거쳐 무산일대에 진출하여 적극적인 군사활동을 벌림으로써 수령님의 전략적방침을 실현하는데 적극 기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휘하신 간삼봉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여 위훈을 세웠다. 주체29(1940)년 8월 소할바령회의후에는 소부대를 이끌고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군사정치활동을 벌렸다. 이 시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국내에서 소집하신 여러 회의들에 참가하였다.

해방직후에는 보안간부훈련소 련대장으로, 주체37(1948)년 8월부터는 내무국 제3경비려단장으로 사업하였다.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조선인민군 제2보병사단장, 제2군단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에 따라 적후의 넓은 지역에 제2전선을 전개하고 맹렬한 군사정치활동을 벌림으로써 전국을 전환시키는데 이바지하였다. 1211고지를 비롯한 주요전선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전략전술적의도대로 전투들을 능숙하게 지휘함으로써 조국해방전쟁의 최후승리를 이룩하는데 기여하였다.

전후 주체44(1955)년 12월부터 민족보위성 부상으로 사업하였으며 그후 당중앙위원회 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당중앙위원회 군사부장, 당중앙위원회 비서 겸 민족보위상, 인민무력부장, 중앙인민위원회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중책을 지니고 인민군대를 강화발전시키며 나라의 방위력을 강화하는데 헌신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주체혁명위업의 위대한 계승자로 높이 받들어모시는데서 특출한 기여를 하였다.

주체45(1956)년 4월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에서부터 계속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거되였으며 주체55(1966)년 10월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에서와 주체59(1970)년 11월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에서 정치위원회 위원으로 선거되였으며 주체69(1980)년 10월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에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거되였다. 주체46(1957)년부터 계속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되였다. 공화국의 최고훈장인김일성훈장》과 공화국영웅칭호, 국기훈장 제1급을 비롯한 많은 훈장과 메달을 받았다.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 끝없이 충직하였다. 병으로 사망하였다.

대성산혁명렬사릉에 그의 반신상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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