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형원(1622-1673)​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실학자.

자는 덕부, 호는 반계이다. 과거에 응시하여 진사가 되였으나 벼슬을 하지 않고 전라도 부안의 우반동에 내려가 일생을 학문연구에 바쳤다. 초기실학자의 한사람인 그는 《쓸모있는 학문》(실용지학)을 연구하고 《사물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진리를 탐구》(실사구시)할것을 주장하면서 철학, 정치, 경제, 군사, 력사, 지리, 언어 등 여러 분야의 학문을 연구하였다. 그는 나라가 부강하기 위하여서는 봉건국가의 모든 분야에서 제도들을 일부 고쳐야 한다고 하면서 일련의 사회정치적인 개혁안을 내놓았다. 특히 사회정치개혁의 중심문제를 토지제도의 개혁으로 보면서 공전제를 주장하였다. 그는 토지에 대한 사적소유를 없애고 모든 토지를 국가가 지배하는 공전으로 만들자고 하면서 경작자 1명에게 1경(약 1결)의 땅을 주되 4경에서 1명의 군사를 내며 나머지 3명은 《보》로 만들자고 하였다. 그리고 국가에서는 소출의 1/15에 해당하는 국가세만을 받으며 그밖의 국가 및 개인지주들의 온갖 착취는 다 없애야 한다고 하였다. 이와 함께 량반관료들에게도 학문을 연구하고 국가를 통치할수 있도록 벼슬에 따라 최고 12경까지의 땅을 나누어주고 노비를 시켜 농사를 지을수 있게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땅은 국가에서 사정하여 나누어주며 받은 땅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생동안 경작케 하며 땅을 받은 사람이 죽은 다음에는 그 땅을 국가에 바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은 량반, 지주들에 의한 대토지소유와 농민들에 대한 한정없는 착취, 압박을 제한해보려고 한점에서 일정하게 긍정적인 면을 가지였으나 량반관료들을 우대하려고 한 본질적인 제한성을 가지고있다. 그뿐아니라 그것은 량반들이 정권을 쥐고있던 당시사회에서는 실현될수 없는 공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수공업과 상업, 화페류통을 발전시킬데 대한 개혁안을 제기하였고 신분제도 특히 노비제도를 고칠데 대한 방도도 제기하였다. 또한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군대제도를 고치고 군사요새인 성과 고을행정중심지인 읍을 결합시키는 원칙에서 성을 잘 쌓을데 대한 문제 등도 제기하였다. 그는 이처럼 실학형성기에 실학의 사상리론적기초를 확고히 마련하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저서로서는 《반계집》, 《반계잡지》, 《반계수록》, 《여지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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