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복(1712-1791) ​

18세기의 력사가, 실학자. 

어려서부터 열심히 공부하면서 량반정치의 부패상을 알게 된 안정복은 학문연구에 뜻을 두고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학자로서의 이름이 알려져 1751년 의영고 봉사, 사헌부 감찰 등의 벼슬을 하였으나 곧 벼슬을 그만두고 20여년간 학문연구에 힘썼다. 1772년 세자익위사의 익위가 되고 다시 세손강서원이 되여 세손(뒤날의 정조)을 가르쳤고 후에 중추원 첨지까지 지냈다. 그는 우리 나라의 력사, 지리, 제도, 문화, 언어, 풍습 등 각 분야에 걸쳐 심오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의 학문연구는 처음에는 주로 유교경전에 대한 단순한 해석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1746년에 성호 리익에게서 배우면서부터 그의 사상에서는 전환이 일어났다. 그는 성호의 실학사상을 계승하여 사회생활의 실천적요구를 학문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출발하여 조선력사서술에서 종전과는 다른 방법과 체계를 도입함으로써 편사학을 발전시켰다. 력사적사실을 비교적 정확하게 고증한 《동사강목》은 그의 대표적인 력사저서로 된다. 이밖에 조선봉건왕조시기의 력사를 서술한 《렬조통기》, 광주의 지방지인 《광주지》 등 수많은 책들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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