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강소​

갑오농민전쟁때 농민군이 전라도지방에 설치하였던 자치기관.

1894년 5월 8일 농민군과 봉건정부사이에 전주화의가 성립된 후 농민군은 화의에서 합의된 페정개혁안의 실시를 감독하고 통제할 목적밑에 농민자치기관으로서 집강소를 설치하였다.

당시 농민군이 전라도의 거의 모든 지방을 장악하고있었기때문에 이 지방에 대한 봉건통치는 마비상태에 있었다. 이러한 형편에서 농민군은 봉건통치기구인 지방관청과는 별도로 집강소를 설치하고 페정개혁안을 적극 실시하여나갔다.

전봉준(1854-1895)은 전라감사 김학진과의 담판을 통하여 그로 하여금 각 고을에 집강소를 설치하는것을 인정하게 하였다. 이리하여 전라도 53개 고을에 모두 집강소가 설치되였다. 그리고 전주에는 대도소를 두어 각 고을의 집강소들을 지도하도록 하였다.

농민군의 지휘자인 전봉준은 금구, 원평을 중심으로 전라우도의 집강소들을, 김개남(?-1895)은 남원에 있으면서 전라좌도의 집강소들을 지도하였다.

집강소는 각 고을의 관청청사를 그대로 사무소로 리용하였다.

집강소에는 책임자인 집강과 그를 보좌하는 약간명의 의사원이 있었고 그밑에 성찰, 동몽, 집사, 서기 등을 두었다.

집강은 페정개혁안을 토의결정하고 집강소운영에 대한 책임을 졌다. 성찰은 주로 사회질서유지임무를 맡았고 동몽은 청소년교육교양과 관련한 일을 맡아 하였으며 집사는 재정문제와 관련되는 사업을 담당수행하고 서기는 집강소에서 토의된 문제들을 기록하는 일과 전반적인 내부사업을 맡아하였다.

집강소는 먼저 지방관청과 민간에 남아있던 무기를 회수하여 농민군의 장비를 강화하고 집강소를 보위할 수성군을 조직하였다. 또한 노비문서를 불태워버리고 묵은 채무관계를 무효로 선포하는 등 일련의 진보적인 사업들을 추진시켰다.

그러나 집강소는 봉건제도자체를 완전히 부정하고 사회를 근대화하기 위한 정치적요구를 제기하지 못하였으며 봉건제도의 개혁에서 근본문제인 토지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봉건적토지소유관계를 청산하고 토지를 농민들에게 분배할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악질관료들과 지주들을 철저히 청산하지 못하였다.

이로부터 집강소는 자체의 튼튼한 정치경제적지반을 꾸릴수 없었으며 일본침략자들과 봉건통치배들의 탄압이 강화되고 그해 10월에 농민들이 다시 투쟁에 궐기하게 되자 스스로 해산되고말았다.

집강소는 비록 한개 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고 또 오래 존재하지도 못하였지만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농민자치기관으로서 당시로서는 큰 의의를 가지였으며 농민들의 반봉건투쟁에 고무적영향을 주었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