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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기시

고려, 조선봉건왕조시기 봉건국가의 무기제조사업을 맡은 중앙관청.

목종때(998-1009)에 군기감을 설치하였다가 1308년(충렬왕 34년)에 민부에 합쳤으며 1356년(경효왕 5년)에 다시 독립시켰고 얼마후 군기시로 고치였다.

정원은 문종때(1047-1083)에 판사(종3품), 감(정4품), 소감(종5품)이 각각 1명, 승(정7품) 2명, 주부(정8품) 4명이 있었고 리속으로 감사 8명, 기관 4명, 산사 2명이 있었다. 그후 몇차례의 변동이 있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는 초기에 군기감으로 부르다가 1406년에 다시 군기시로 고쳤다. 정원은 정(정3품), 부정(종3품), 첨정(종4품)이 각각 1명, 판관(종5품) 2명, 별제(정6품) 2명, 주부(종6품) 2명, 직장(종7품) 1명, 봉사(종8품) 1명, 부봉사(정9품) 1명, 참봉(종9품) 1명이 있었다.

군기시는 경공장(중앙관청수공업장)을 차려놓고 거기에 예속된 노비, 신량역천신분의 수공업자, 부역으로 징발한 인민들의 로동력과 기술을 무상으로 착취하여 무기류, 무장장구류, 군사기자재 등을 생산하였다.

고려때 군기감(군기시)의 경공장에는 행수, 지유 등 우두머리급 수공업자 겸 행정적감독관이 13개 수공업부문에 23명이 있었다.

조선봉건왕조시기 군기시관할하의 경공장은 서울, 개성, 양근에 있었다. 거기에는 700여명의 수공업자들이 소속되여 16개 부문에서 일하였다.

당시 무기제조는 봉건국가의 관청수공업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으며 군기감의 경공장은 규모와 기술에서 상당히 발전되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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