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점수세​

조선봉건왕조때 봉건국가가 개인들에게 금, 은, 동, 연 등을 캐는것을 허가해주고 그들로부터 세금을 받아내던 광산경영방법.

설점수세가 나오게 된것은 몰래 은광을 채굴하여 리득을 보는자들을 국가가 막을수 없게 된 조건에서 해당한 대책을 세울 필요가 제기된것과 관련된다.

16세기 말까지 철광과 은광을 비롯한 광산경영권 즉 모든 광산채굴과 광석제련은 봉건국가가 인민들의 부역로동을 통하여 진행하고 그 리득을 독점하였으며 개인의 광산경영은 엄격히 금지되였다. 17세기이후 상품화페관계가 발전하면서 국가의 승인없이 은광을 채굴(잠채)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였다.

잠채는 봉건국가가 경영하는것보다 생산성이 훨씬 높고 생산량과 리익도 많았다. 그리하여 봉건국가는 17세기 중엽에 이르러 지정된 기업주에게 은점 즉 은광의 경영을 승인하고 세금을 받아내는 정책을 쓰게 되였다.

설점수세에 의하여 광산경영은 엄격한 법적규정이 적용되였고 잠채에 의한 탈세는 철저히 단속되였다.

설점수세가 적용된 후 자본경영자들의 자본축적도 점차 늘어나고 모여드는 점군(고용로동자)수도 늘어났다. 개인광산경영은 부역로동에 의한 관영채굴과는 달리 일정한 자본을 가진 자본가가 신분적구속이 적은 로동력을 적용하여 경영하는것이였기때문에 그 리득도 더 많았다.

설점수세는 광산경영에서 순 봉건적인 부역제로부터 자본주의적관계로 넘어가는 과도적단계의 역할을 놀았다.

설점수세는 봉건국가의 법전인 《속대전》에 은광에 관한 규정으로만 되여있었으나 실지로는 금, 은, 동, 연 및 기타 광산경영에도 널리 적용되였다.

설점수세에 의한 봉건국가의 세금수탈은 끝없는 리윤을 추구하는 기업주들에게 있어서 큰 방해로 되였다. 리윤이 많은 기업이였던 은점에 점차 상인, 기업주들이 밀려들게 되고 기업주들은 여러가지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세금을 회피하거나 더욱더 몰래 캐는 잠채로 넘어가게 되였다.

설점수세는 18세기 후반기이후 사실상 거의 유명무실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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