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반정​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1623년에 리조에서는 인조반정이라는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인조반정은 서인당파가 대북인당파와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새로 왕자리에 올려앉힌 권력싸움이였습니다.》

임진조국전쟁후 남인당파 량반관료들을 정권에서 몰아내고 권력을 틀어쥔 북인당파 량반관료들은 선조(통치년간: 1568-1608)가 죽고 광해군(통치년간: 1609-1623)이 왕이 되자 다시 소북인파와 대북인파로 분렬되여 추악한 권력싸움을 계속하였으며 실권은 대북인파가 장악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광해군통치시기에는 북인파내부에서 소북인파와 대북인파사이의 대립과 파싸움이 치렬하게 벌어졌다.

오래동안 중앙정치무대에서 밀려나있으면서 권력을 잡을 기회만 노리고있던 서인파의 김류(1571-1648), 리귀(1557-1633) 등은 북인파들이 저들끼리 싸우는 기회를 타서 1620년경부터 무장정변의 방법으로 정권을 탈취할 음모를 꾸며왔다.

리귀 등은 무관 리서, 신경진, 심기원, 김자점, 리괄 등과 짜고 무장정변준비를 적극 다그쳤으며 장단부사 김류를 그 대장으로 임명하였다. 1623년 3월 12일 밤에 그들은 홍제원에 집결하였다가 정변을 일으켰다. 정변은 안으로부터 훈련대장 리흥립의 호응을 받아 쉽사리 성공하였다.

13일 새벽 광해군과 그의 지지자인 대북인파들은 모조리 쫓겨나고 원종(선조의 다섯째 아들)의 아들이며 광해군의 조카인 릉양군 종(인조)을 왕자리에 앉혔다. 이 정변이 곧 《인조반정》이다.

이와 같이 인조반정은 당시 량반통치층안에서 벌어진 추악한 권력싸움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잡은 통치배들은 저들에 의한 왕위교체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이 사건에 《반정》이란 이름을 달아 인조가 왕이 된것이 그 무슨 《그릇된》 정치를 《바른》 길로 돌려세워놓은것처럼 가장하여 선전하였다.

인조반정후 정권은 오래동안 서인파량반들이 독점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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