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1575-1641) ​

조선봉건왕조의 제15대왕. 죽은 뒤의 이름은 혼, 선조의 둘째 아들이며 후궁 공빈 김씨의 소생.

1592년(선조 25년)에 왕세자로 책봉되였으며 1609년 2월에 왕으로 되였다.

광해군은 당파싸움의 페단을 알고 그것을 억제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오히려 당쟁에 휘말려 들어가 국가통치를 문란약화시키였다.

당시 집권한 대북파의 지지를 받고있던 광해군은 대북파의 흉계에 빠져 형제들인 림해군, 진릉군, 영창대군, 릉창군을 역모로 몰아 죽이는 살륙전을 벌렸다.

광해군과 봉건통치배들의 당파싸움으로 국가통치질서는 혼란되고 국방력은 약화되였으며 인민들은 재난과 고통속에서 헤매이게 되였다. 대외관계에서 광해군은 쇠퇴몰락하는 명나라와의 관계를 멀리하는 한편 신흥하는 후금의 세력이 만만치 않다는것을 느끼고 되도록 후금과의 마찰을 피하면서 정세를 악화시키지 않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의 이러한 중립적태도는 정권쟁탈의 기회만을 노리고있던 서인당파에 공격의 구실을 주었다.

마침내 광해군은 1623년에 정권탈취의 음모를 꾸며오던 리귀(1557-1633), 김류(1571-1648), 최명길(1586-1647), 김자점(?-1651) 등 서인당파의 정변으로 왕자리에서 쫓겨나고 그의 조카벌되는 릉양군이 국왕으로 되였다.

왕자리에서 쫓겨난 광해군은 정권탈취를 정당화하려는 서인당파들로부터 혈육들을 살해한 패덕한으로 몰리웠고 료동출병의 실패원인, 나라의 경제형편을 곤경에 몰아넣은 책임 등의 죄과를 들쓰고 귀양살이를 가게 되였으며 제주의 귀양지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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