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무 라 이 ​

중세일본에서 봉건특권층에 속한 군인신분의 사람 또는 계층. 

원래 사무라이란 《시종》한다는 뜻이다. 일본에서 사무라이가 발생할수 있은 요소는 벌써 8세기 말에 나타났다. 이 시기 지방고을의 통치자(군사)와 떠살이농민들은 자기 자식들을 무예로 련마시켰다. 이것은 지방유력자들이 무예로 단련하여 무사화될수 있는 요인으로 되였다. 

10~11세기이후 일본에서는 토지에 대한 국가적지배가 약화되여 각 지방의 유력한 호족들은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황무지를 개간하여 사유지로 만들었는데 이를 장원이라 하였다. 장원령주들은 더 많은 토지와 농민을 빼앗으려고 하였으며 농민폭동과 외부의 침습으로부터 자기 령지를 보호하려고 하였다. 이리하여 장원령주들은 자기 지반을 강화하고 령지를 보호하며 토지와 농민을 더 많이 쟁탈하기 위해 자신과 친척들, 일부 농민들로 무장을 갖추어 사적무력을 가지게 되였는데 이것이 사무라이(무사)의 출현이다. 

당시 《천황》일족들과 중앙의 귀족들은 국사로서 지방에 내려가있으면서 각지에 장원을 만들고 세력을 시위하였으며 지방의 장원령주들과 사무라이들은 그들을 보호자로 삼고 그와 주종관계를 맺는데로 나갔다. 이리하여 사무라이집단은 보다 큰 집단으로 합쳐져 무사단이 형성되였다. 그가운데서 가장 세력이 큰것은 《천황》의 자손들인 겐지와 헤이시를 각각 두목으로 한 무사단이였다. 

이 시기 장원을 기증받은 사원들도 승려들과 농민들로 무사단을 조직하여 세력을 강화하였다. 

무사단은 강한 세력을 가지고 점차 중앙의 정권쟁탈전에 끼여들었다. 그리하여 헤이시가 겐지를 평정하여 정치의 실권을 쥐였다. 그러나 겐지일족인 미나모또 요리또모가 반란을 일으켜 가마꾸라(가나자와현)에 사적통치기관을 꾸리고 헤이시일족을 격파함으로써 12세기 말에 사무라이에 의한 무인정권이 수립되였다. 

사무라이는 사, 농, 공, 상의 4민가운데서 사에 해당되는 지배계급신분으로서 일반평민과는 달리 칼을 차고 말을 타고다닐수 있으며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죽이고 성(城)을 가질 특권을 가졌다. 그들은 농민, 수공업자, 상인들을 가혹하게 억압착취하였다. 

사안에서도 신분상등급이 있었다. 

에도막부(도꾸가와막부)시기 사는 장군-지끼산(장군에게 직접 복무하는 대봉건령주), 다이묘-배신(다이묘와 지끼산의 가신들)-종자(하층에서 복무하는 사무라이)-랑인(실업한 사무라이)으로 나뉘였다. 

사무라이들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농민폭동을 진압하는데서와 봉건적분쟁에서 호전성을 발휘하였다. 사무라이들속에서는 점차 그들에게 고유한 사회도덕규범으로서 주인에 대한 멸사복무와 호전성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무사도》가 형성되였다. 

처음 《궁시의 도(활쏘는 사람의 도리라는 뜻)》로 불리우던 무사도는 15세기 후반기 이후의 전국시대와 260여년간의 에도막부시기에 더욱 호전성을 띠면서 반동적인 유교교리로 체계화되였다. 

근대에 와서 봉건세력과 야합한 일본부르죠아지들은 제국주의의 침략적본성에 사무라이들의 호전성을 결합시킨 이른바 《야마도정신》을 침략의 사상적도구로 내세우고 해외침략에 미쳐날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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