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인문명의 란》

1467-1477년에 일본에서 벌어진 봉건적내란.

1467년이 《응인원년》이며 1477년이 《문명 9년》에 해당함으로 그렇게 부른다.

1467년 하따게야마가문에서 상속문제를 가지고 전쟁이 일어날 정황이 조성되자 야마나시 모찌도요는 은밀히 무력을 파견하여 호소가와 가쯔모또가 지지하는자를 격파하였으며 그 기세로 가쯔모또의 지방령지를 탈취하려고 하였다. 이에 가쯔모또가 군대를 동원하여 대항함으로써 마침내 《응인문명의 란》이 시작되였다.

호소가와파는 병력 16만명으로 《동군》이라 하였고 야마나시파는 9만명이였으며 《서군》이라고 하였다.

싸움은 처음에 《서군》이 우세하였으며 오우찌 마사히로가 2만여명의 병력으로 교또에 올라와 《서군》에 가담함으로써 《서군》은 《동군》을 포위하였다. 한편 《동군》은 적진영내에서의 와해공작, 반변 등으로 점차 력량을 수습강화하였다.

교또에서 시작된 전란은 점차 주변에 확대되고 일진일퇴를 거듭하였다. 그간 량자사이에는 화의도 거론되였으나 성립되지 않았다.

1473년에 모찌도요, 가쯔모또가 련이어 죽자 전란은 점차 뜸해지고 《응인 원년》으로부터 11년째 되는 1477년에 강화가 이루어졌다.

이 내란의 결과 교또의 절반이 초토화되여 궁성과 사찰 등 수많은 건물이 불탔으며 이후 일본의 정치, 문화의 중심은 교또로부터 지방으로 옮겨졌다.

《응인문명의 란》은 일본에서 지방분권적봉건세력들사이의 세력권쟁탈시기인 《전국시대》의 서막을 열어놓고 무로마찌막부의 멸망을 결정적으로 앞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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