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들의 유교수업​

조선봉건왕조시기 왕들은 통치방법을 유교교육에서 찾고 주로 그 교리에 기초하여 생활하였다.

왕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왕의 아침기상시간은 해뜨기 전인 새벽 5시전후로서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자리조반(아침에 일어나면서 그 자리에서 먹는 간단한 음식)이라고 하여 죽같은것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였다.

이어 의관을 바로하고 대왕대비나 대비에게 문안인사를 한 다음 왕으로서의 자기 사업을 시작하였다.

공식적인 하루업무의 시작은 정전(왕이 조회를 하던 궁전)에서 열리는 조회로서 이때 왕은 대신들을 만나 국사를 의논하고 자기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그리고 해뜨기 시작하는 아침에는 《경연》에서 유학의 경서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경연은 왕의 《리상정치》를 도와주는 강의시간이였지만 실제로는 여기서 왕권의 행사를 규제하는 기능을 가진것으로 하여 경전해석을 놓고 왕과 신하사이에 학문토론이 벌어지군 하였다. 이것은 단순한 토론이 아니라 정치적토론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여서 아침, 점심, 저녁에 3차례나 진행되였다.

《조선봉건왕조실록》에 있는 1401년 태종때의 기록을 보면 권근이 왕에게 경연의 중요성을 아뢰는 대목이 있다.

《경연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제왕의 도는 학문으로 밝아지고 제왕의 정치는 학문으로 넓어집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뒤 비록 경연을 베풀었으나 쉬는 날이 많았습니다. 학문하는 뜻이 너무 가벼운것이 아닙니까. 날마다 경연에 나오시여 마음을 비우고 뜻을 공손히 하여 하루라도 빼먹지 마십시오.》

1520년에는 아침경연때 침전안에까지 녀자사관을 두고 임금의 거동과 언행을 기록하자는 의견을 제기하여 사관(왕조력사를 편찬하는 관리)의 눈길이 닿지 않는 사생활까지 감시하려고 하였다.

이 말에 중종(11대왕)은 글에 능한 녀자가 있겠는가, 선악을 판단하는 정직한 사관을 뽑는게 가능하겠는가 등의 리유를 들어 거절하였다고 한다.

아침경연이 끝나면 조반을 받았다. 이어 각 부서별로 업무를 보고받고나면 점심때여서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경연에 들어가 공부를 해야 하였다.

그리고 지방이나 중앙으로 파견되는 관리들을 만나 여러가지 임무를 주었다.

그러고나면 오후 3~4시경이 되는데 이때에는 대궐을 지키는 야간호위병들의 명단을 점검하고 암호를 정해주었으며 잠시 휴식을 했다가 다시 저녁경연에 들어가 학습을 하였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저녁식사를 한 다음 다시 밀린 업무를 본 후 부모들을 찾아 저녁문안인사를 하였다. 그래야 하루의 공식적인 일과가 끝나고 밤 9시부터 자정까지 2~3시간정도의 한가로운 시간이 차례졌는데 이 시간에야 비로소 독서를 하거나 왕비나 후궁들의 잠자리를 찾을수 있었다.

물론 모든 왕들이 다 이와 같이 하루를 보낸것은 아니였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관습화된 생활질서를 규정해놓은것에 불과하였다.

연산군(10대왕)은 《나의 학문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경연에 나가더라도 어찌 더 배울것이 있겠는가.》고 하면서 경연제도를 아예 무시하고 제멋대로 즐겼는데 대체로 많은 왕들은 하루를 마음껏 향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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