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호칭​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왕들은 일생동안에 수많은 호칭을 받았다. 이 호칭들은 출생과 성년식, 결혼과 사망 등과 같은 의식에서 받는것과 특별히 업적을 찬양하여 주는것들도 있었다.

우선 왕의 본처의 맏아들이 세상에 태여나면 원자(왕세자로 책봉되지 않았을 때의 호칭)가 되였다. 그후 관례를 진행하면서 자를 받고 세자에 책봉될 때 이름을 받았다. 즉 원자에서 세자가 될 때까지는 원자라고 불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는 원자때 관례를 치르는 경우가 많았다. 관례를 진행하면서 자를 받았는데 자는 그 사람이 일생동안 명심해야 할 훈계 또는 축복의 내용을 담은 두 글자로 이루어졌다. 실례로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왕인 세종의 자는 원정이고 정조의 자는 형운이라고 하였다.

세자에 책봉되면서 이름을 받는 절차도 복잡하였다. 우선 아무 날에 원자를 세자에 책봉한다는 결정이 나오면 대신들과 2품이상의 관료들이 세자의 이름을 지을 준비를 하였다. 이들은 세자의 이름을 한개의 글자로 하겠는가 아니면 두개의 글자로 하겠는가 그리고 무슨 변(한자의 부수의 하나)으로 하겠는가를 왕에게 문의하고 의논하였다.

이때 왕이 한개 글자 또는 두개 글자로 이름을 짓되 어떠어떠한 변으로 하라고 명령하면 이에 따라 신하들은 정해진 부수와 글자수에 따라 세가지 이름을 지어서 올렸는데 이가운데서 왕이 하나를 골랐다.

왕의 이름은 함부로 부를수 없었으며 만약 잘못하여 글로 쓰거나 말을 하면 큰 벌을 받았다.

과거시험에서 력대 왕들의 이름이 답안에 한글자라도 들어가면 무조건 떨어졌다. 상소문에도 왕의 이름을 쓰면 접수되지도 않았을뿐아니라 만약 왕의 이름이 있는 경우 곤장 100대의 중형을 받게 규정되여있었다. 따라서 조선봉건왕조시기 왕의 이름은 금기해야 할 글자의 하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 사람들은 력대 조선왕들의 이름을 다 외워야 하였다. 그래야 상소문을 쓰든지 과거시험을 치르든지 아니면 문장을 지을 때 그 글자를 피할수 있었기때문이였다.

다행히도 조선봉건왕조시기 왕들의 이름은 언어생활에서 흔히 사용되지 않는 특이한 글자를 쓰거나 아니면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쓰는 경우가 많았다. 만약 자주 사용되는 글자를 왕의 이름으로 결정하게 되면 언어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수 있기때문이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왕조력사를 보면 본래의 왕을 내쫓고 다른 사람이 왕이 되였거나 그리고 직계가 아닌 계통에서 왕위를 계승한 실례들도 있었다. 이들의 이름은 언어생활에서 흔히 쓰일수 있는 글자였기때문에 왕위에 오르는것과 함께 이름을 고쳤다.

실례로 태조 리성계(1335-1408)의 이름인 성계는 많이 리용되는 글자였기때문에 왕위에 오르면서 《단》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조선봉건왕조시기 왕들도 일반유학자들처럼 자신의 호를 가지고있었다. 호는 자기자신을 표시하기 위해 붙이거나 스승 또는 친구들이 붙여주는 일종의 별명이라고 할수 있다. 실례로 정조의 호는 홍재이고 순조의 호는 순재이다.

왕이 생존기간 《훌륭한 업적》을 이룩하면 신하들은 왕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하여 존호를 지었다. 실례로 임진조국전쟁이 끝났을 때 신하들은 선조(14대왕)의 공덕을 찬양하기 위해 《지성대의격천희운》이라는 존호를 지었다.

이것은 지성으로 대단한 일을 처리하여 하늘을 감동시키고 이것으로 하여 나라의 운명을 건져냈다는 의미를 담고있지만 사실은 지성으로 큰 나라를 섬겨 명나라의 원조를 받아 왜군을 격퇴한 공이 있다는 뜻이였다.

왕이 죽으면 그의 일생을 평가하고 그의 공덕을 찬양하기 위해 시호(죽은 뒤에 공덕을 칭송하여 지은 이름)를 지었다.

그리고 왕의 3년상이 끝나고 신주(죽은 사람의 이름과 벼슬이름 등을 적은 나무패)가 종묘(력대 왕이나 그 안해의 신주를 넣고 제사지내기 위하여 지은 사당집)에 들어가면 종묘에서 그 신주를 부르는 묘호(왕의 신주를 종묘에 넣고 그 왕에 대해서 정해붙이는 칭호)가 있다.

묘호는 신하들이 왕의 일생을 평가하면서 《공》이 많다고 여겨지면 조를 붙이고 《덕》이 많다고 여겨지면 《종》을 붙여서 두 글자로 지었다. 실례로 태조 리성계라고 할 때 태조가 묘호에 해당한다. 성종, 예종, 선조, 고종 등도 모두 묘호이다.

일반적으로 왕들의 의식속에는 종보다 조가 격이 높다는 선입견이 있어서 종에서 조로 뒤바뀐 경우도 있었다. 선조, 영조, 정조, 순조 등이 그 실례이다.

조선봉건왕조시기의 력대 왕들중에서 조가 붙은 왕은 7명이였고 종이 붙은 왕은 18명이였다.

왕중에는 조와 종의 호도 받지 못하고 연산군, 광해군 등과 같이 군으로 불리운 사람도 있는데 왕의 지위에 오르기는 하였으나 반정에 의해 쫓겨난 왕들에 대한 칭호였다.

왕의 무덤을 정중하게 불러 특별히 《릉》이라고 하였다. 릉은 구릉이라는 의미인데 왕의 무덤이 구릉처럼 크고 웅장하다는 뜻을 담고있다.

왕의 무덤을 가리켜 부르는 호칭이 릉호이다. 세종의 릉호는 영릉인데 《릉》대신에 《묘》자를 붙여 영묘라고도 하였다. 세조도 마찬가지로 릉호가 광릉인데 광묘라고도 하였다.

이와 같이 왕은 살아생전에 받는 칭호와 죽어서 받는 칭호가 많았다. 이렇게 많은 왕의 칭호는 보통 붙여쓴다. 맨 앞에 묘호를 놓고 그다음 시호와 존호 등 왕이 받은 호칭들을 차례로 썼다.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왕들은 보통 20~30자의 호칭을 가지고있었다. 많은 경우에는 60~70자의 호칭을 가지고있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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