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왕비 윤씨페위사건​

조선봉건왕조 제9대왕 성종은 왕비 윤씨에게서 태여난 아들 융(후의 연산군)을 세자로 삼았다.

그런데 성종의 왕비 윤씨는 지나치게 질투심이 많았다.

성종왕의 어머니인 인수대비는 늘 그러한 왕비의 성품을 경계하여 《질투심은 부녀자의 일곱가지 죄악중의 하나로 꼽는것이니 부디 고치도록 하여라.》하고 타이르군 하였다.

그러나 왕비는 조금도 삼가하지 않았다.

성종에게는 정귀인, 엄소용, 권숙의 등 세명의 후궁이 있었다. 왕비 윤씨는 이들 세사람을 몹시 질투하였다.

어느날 임금인 성종이 왕비 윤씨의 처소로 갔다.

그런데 그의 처소에서 자그마한 함 하나가 임금의 눈에 띄였다.

《중전, 저건 전에는 보지 못하던 물건이요.》

왕의 말에 왕비는 당황해하며 얼른 한쪽구석으로 치워버렸다.

《중전, 그걸 이리 주시오.》하고 임금은 왕비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왕비는 망설이다가 마지 못해 그 함을 내밀었다.

임금은 그 함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그안에는 흰 가루약과 이상한 책이 들어있었다.

임금은 움찔 놀라며 《이건 비상이고 이 책은 남을 저주할 때 읽는 주문을 적은 책이 아니오?》하고 왕비에게 물었다.

왕비는 아무 말도 못하고 벌벌 떨기만 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왕비는 줄곧 자신에게 곧 큰 벌이 내려질것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움에 떨고있었다. 

며칠후 임금은 왕비에게 《왕비 윤씨는 거처를 자수궁으로 옮기고 근신하도록 하라.》는 명을 내렸다.

성종 11년 가을 어느날 임금이 왕비 윤씨를 찾아갔다.

왕비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기는 커녕 오히려 가슴속에 원망과 앙심을 품고있은지라 임금을 보자마자 분한 마음이 치밀어 그만 손톱으로 그의 얼굴을 할퀴어주었다.

임금의 얼굴에 손톱자리를 냈으니 왕비 윤씨가 무사할리 만무하였다.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는 크게 화가 나서 《백성들의 집에서도 이런 일은 있을수가 없다. 그런데 하물며 한나라 임금의 얼굴에 손톱자국이 나게 하다니. 이 무슨 못된짓이냐. 당장 왕비를 페하여 내쫓아야 한다.》고 하면서 펄펄 뛰였다.

1479년 6월 성종은 마침내 왕비 윤씨를 페하여 친정으로 내쫓았고 1482년 8월 사약을 내려보내여 죽게 하였다.

이렇게 성종왕비 윤씨는 자기의 질투심때문에 왕을 노엽힌것으로 하여 왕비에서 페위되였으며 결국은 사약을 먹고 죽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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