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시애(?~1467년)​

1467년 함길도농민전쟁의 지휘자.

함길도 길주태생으로 지혜있고 용감하며 무예가 출중하여 일찌기 리징옥의 부하로서 그의 신임을 받았다. 리징옥이 피살된 후 군직을 그만두었다가 회령부사로 임명되였다. 정부의 함길도차별정책에 불만을 품고있던 그는 신세포와 매잡이, 서울로 오가는 녀진사신들의 짐운반과 려행도중의 뒤치닥거리부담 등 봉건정부의 가혹한 억압착취를 반대하는 함길도지방인민들의 힘을 리용하여 자기의 정치적목적을 달성하려고 동생 리시합을 비롯한 심복들과 함께 폭동준비를 적극 다그쳤다.

그는 각지에 심복들을 보내여 지금 조정에서 함길도군민을 살해하기 위하여 하삼도군사를 본도에 파견하였는데 수륙병진하여 충청도병선은 벌써 경성 후라섬에 닿았다는 요언을 퍼뜨리여 도내 군민을 반정부투쟁에 궐기시키였다. 

일정한 준비를 갖춘 그는 1467년 5월 함길도절도사 강효문과 길주목사를 습격처단하는것으로부터 폭동을 일으키고 함길도지방농민들을 광범히 묶어세웠다. 각지 인민들은 리시애의 호소에 호응하여 궐기하였으며 불과 며칠사이에 고원이북 함길도의 전지역이 그의 지휘밑에 들어갔다.

그는 자칭 도의 절도사가 되여 본영을 길주에 두고 도내 각 군의 농민군을 지휘하여 남진하였다. 그리고 각 고을의 원을 자기가 직접 임명하고 남진하였으며 창고를 열어 빈민을 구제하고 옥문을 마사 《죄수》들을 석방하니 인민들의 한결같은 환영을 받았다. 

이에 바빠맞은 봉건정부는 왕족인 구성군 리준을 《토벌군》의 총지휘관인 병마도총사로 임명하고 6도의 군사 3만여명을 동원하여 농민군을 진압하게 하였다. 호판 조석문과 강순, 어유소, 남이 등 당시 조정의 명인, 명장 20여명을 동시에 출정시키니 조선봉건정부로서는 전례없는 대소탕전이였다.

그러나 그해 6월 농민군은 북청전투에서 《토벌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으며 8월에는 만령에서 《토벌군》과 큰 규모의 격전을 벌리였다.

농민군은 만령전투에서 패하여 큰 손실을 입었으나 투쟁력량을 정비강화하기 위하여 단천방향으로 퇴각하였다. 단천에로 진지를 이동하고 북대천을 자연요새로 하여 방어태세를 갖추고있던 리시애는 자기를 체포하려는 일부 토호출신 지휘관들의 음모를 알아차리고 길주쪽으로 피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농민군은 모두 흩어지고말았다. 

리시애는 다시 부대를 수습하여 《토벌군》에 대항하기 위하여 8월 12일 룡성(수성)쪽으로 퇴각하던중 경성 건가퇴에서 배신자들에 의하여 체포되였다. 이날 체포된 리시애와 그의 동생 리시합 등은 변절자들에 의해 《토벌군》지휘부에 넘겨져 학살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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