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유민들을 포섭​

고려는 건국초기부터 이웃 발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것을 대외정책의 중요한 원칙으로 삼았다.

동족의 나라인 발해가 북방에 건재하는것은 갓 수립된 고려를 거란, 녀진의 침습으로부터 믿음직하게 지켜주는 방파제의 역할을 하였던것이다.

고려는 926년 발해가 거란에 의하여 멸망한 이후에 동족의 나라를 찾아 남쪽으로 이주해오는 그 유민들을 받아들여 서북면 여러 지방에 안착시키였다.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고 고구려의 옛땅을 되찾기 위해서는 반거란감정이 강한 발해유민들을 받아들이며 국력을 충실히 하는 문제가 매우 중요했기때문이다.

발해인들의 고려에로의 대대적인 이주는 발해왕조멸망직후에 특히는 928년 거란이 발해인들의 투쟁을 와해시키려고 그들을 료양지방으로 강제이주시킬 때부터였다.

934년 발해가 무너진지 8년째되는 해 7월에 발해의 왕세자 대광현이 수만명을 데리고 고려에 이주하여왔다. 제집을 잃고나면 형제의 집으로 찾아들기마련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기때문이다.

왕건은 태자를 먼저 개경교외에 내보내여 성대하게 맞아들이게 하고 친히 왕궁으로 불러들여 접견하였다.

《페하! 망국의 왕자가 되여 이렇게 의탁하려고 찾아왔으니 부끄럽기 그지없소이다.》

《그런 말을 마오. 그대가 수만명의 유민을 데리고왔으니 이제는 고려와 발해가 하나로 된셈이 아니요. 실로 그대는 고려를 위하여 큰 공로를 세웠소.》

왕건의 겸허한 몸가짐과 따뜻한 격려의 말에 대광현은 감격하여 눈물을 머금었다.

《조국에 있을 때 고려는 고구려를 이은 한겨레의 나라요. 임금은 도량이 크고 덕망이 높아서 잃었던 나라를 찾으려면 그에 의탁해야 한다는 말을 익히 들어왔소이다. 지금 페하를 뵙고보니 과연 명불허전이라 소인이 고려의 병졸이나 미관말직이라도 불사하겠으니 신하로 받아줬으면 천만다행이겠사오이다.》

《왕세자는 어찌 겸양의 말이 그토록 심하시오. 나를 믿고 불원천리하고 찾아온 왕자를 박대함을 나는 원치 않소. 항차 두집을 하나로 합치는데 이바지한 세자의 공적을 봐서라도 어찌 소홀히 대하겠소.》

대광현은 감격하여 울면서 말하였다.

《소인이 페하의 이토록 큰 대접을 받을줄은 몰랐소이다. 대왕을 만나고보니 내 집, 내 나라에 온것만 같소이다. 내 결초보은해서라도 두터운 은덕에 보답할것을 맹세하나이다.》

《우리도 먼데 갔다 돌아온 자기 집, 자기 나라의 사람을 만난 심정이요.》

왕건은 이렇게 말하면서 대광현을 따뜻이 위로하였다.

왕건은 며칠후 특별히 좋은 날을 빌어서 발해세자 대광현을 환영하는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고려조정의 장군들과 재상들, 세자를 따라온 발해조정의 높은 관리들, 장군들, 세자의 가족과 친척들, 이주해온 백성들을 대표하는 성읍, 부락의 우두머리들 등 백여명이 여기에 참석하였다.

풍성한 음식상과 흥겨운 풍악도 좋았지만 고려장상들의 부드럽고 은근한 말투는 긴장한 발해사람들의 마음을 한껏 늦구어주었다.

대광현도 고려태자를 상대로 하여 어지간히 술을 마시였다. 《동궁마마! 나는 오늘같이 즐거운 연회를 일생 잊지 못하겠소. 려로의 몰렸던 피곤이 일시에 다 풀리는것만 같소.》

《이제는 한집안, 한식구가 되였으니 오래오래 살면서 함께 복락을 누립시다.》

세자의 말도 친절하고 은근하게 울리였다.

잔치가 끝나갈 무렵 왕건의 명령이 발포되였다.

《발해국 세자 대광현이 관리들과 백성 수만명을 데리고 귀화한 공적을 갸륵하게 여겨 그에게 <왕계>라는 성과 이름을 내려주며 고려왕실족보에 등록하도록 한다. 발해국세자 대광현에게 <원보>(제4등급) 벼슬등급을 주며 백주(배천) 고을을 식읍으로 주고 거기서 삼가 조상의 제사를 받들도록 할것이다.》

그리고 발해국세자 대광현을 따라온 발해관리들과 장군들에게도 그 품계에 따라 고려의 벼슬을 적당히 주었으며 군인들과 백성들에게도 각각 토지와 주택을 주어 안착시키도록 하였다.

대광현은 감격하여 부르짖었다.

《페하! 실로 황공하오이다. 성은에 길이 보답하겠소이다.》

거기에 참가하였던 발해관리들과 백성들이 기쁨과 만족을 가지고 물러가자 궁전은 조용하여졌다.

이때 서너명의 근신들이 왕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아뢰였다.

《페하가 외국에서 온 망명객들을 환대하는것은 그르다고 할수는 없사오나 지나치게 후한 대접을 하면 발해사람들이 고려를 허수하게 볼 념려가 없지 않소이다. 대왕은 이 점에 대하여 세번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왕건이 바라보니 모두다 문신들로서 전장에는 나가보지 않은 백면서생들이다. 왕건은 새로운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까마귀떼처럼 입을 열고 왈가왈부하는 그들의 소행이 괘씸한바도 없지 않았으나 내색은 하지 않고 부드럽게 타일렀다.

《우리 고려앞엔 두가지 대업이 나서고있소. 하나는 분렬된 국토와 겨레를 하나로 통합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구려의 옛 강토를 되찾는것이요. 그런데 지금 신라와 후백제를 통합하는것은 시간문제요. 그리 힘들것은 없는데 고구려의 옛땅을 되찾는것은 보다 어려운 일로 되고있소. 발해의 왕자를 륭숭하게 대우했다는것이 알려지면 그 유민들은 고려를 찾아 계속 넘어올것이요. 신라와 후백제의 귀족들도 고려에로 기울어질것이니 일석이조가 아니겠소. 경들은 하나만 보고 둘은 생각하지 못하니 안타깝소그려.》

《페하의 심원한 뜻은 범인이 도저히 헤아릴바 없습니다.》신하들은 충심으로 감탄하였다.

왕건은 다시 말을 이었다.

《병서에도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것을 제일가는 방략으로 삼았으니 우리는 피를 흘리지 않고 나라의 통일을 달성하자는것이요. 그러니 몇개 벼슬자리나 주는것을 아까와해야 되겠소.》

고려가 발해세자 대광현과 그가 거느리고온 신하백성들을 륭숭하게 우대하였다는 소식은 날개가 돋친듯이 북쪽으로 퍼져갔다.

이민족 거란의 통치하에서 신음하던 발해유민들은 목마르던 사람이 샘물을 만난듯이 기뻐하였다.

《고려에로 가자. 그 길만이 살길이다. 말도 풍속도 다른 거란에서 벼슬을 할바에는 고려에 가서 농사를 하는것이 편안하겠다.》,

《나는 대대로 군인노릇한 가정에서 태여났으니 고려에 가서 군인이 되겠다. 그리하여 거란을 냅다 치고 멸망한 발해를 회복하는데 나의 피를 바치겠다.》

발해유민들은 사슴이 산불을 피하여 들로 내려오듯이 속속 고려를 찾아왔다.

발해세자 대광현이 고려를 찾아온 그해 12월에 발해관료 진림 등 160명이 왔으며 938년에는 무려 3 000여호가 고려에로 넘어왔고 980년에도 수만명의 발해인이 고려에 귀화하였다.

고려정부는 이들에게 일일이 벼슬과 집과 땅을 주어 변방에 안착시키여 편안히 살게 하였다.

이후 130여년동안 기록에 남은것만 하여도 18차에 걸쳐서 발해유민 수만명이 고려로 넘어왔다. 낮게 잡아도 발해유민 십수만명이 넘어왔으니 그것은 봉건시기에 벌어진 민족의 대이동이였다.

피줄을 같이하는 수많은 발해유민들이 동족의 나라인 고려에 이주하여 정착한 결과 단일민족으로서의 우리 인민의 혈연적뉴대와 공통성이 더욱 공고해지게 되였다.

그후 발해유민들은 고려의 변방을 강화하며 반거란투쟁을 벌리는데서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993년 거란의 제1차침략때 청천강계선의 안융진에서 적들을 물리치는데 크게 이바지한 중랑장 대도수, 1010년 거란의 제2차침략때 곽주(평안북도 곽산)방어전투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전사한 대장군 대회덕은 다 발해유민들의 후손이였다. 그들은 거란을 증오하는 감정이 강한데다가 왕건에게서 입은 두터운 은덕을 잊지 못하여 희생적으로 싸웠던것이다.

지사는 자기를 믿고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목숨도 기꺼이 바친다고 하지 않았던가. 발해사람들이 바로 그렇게 행동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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