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음모의 악순환속에서​

발해 제4대 왕자리에는 대흠무의 족제(먼 친척벌되는 동생)라고 전하는 대원의가 올랐다.

그가 어떤 경로를 거쳐서 왕위에 오르게 되였는지는 정확히 알수 없다.

장손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규례대로 한다면 그의 등극은 명백히 합법적인 절차를 밟지 않은 불법이다. 태자였던 굉림의 아들 대화여(후에 제5대 성왕)와 그의 동생인 대숭린이 있는데 먼 친척벌이 되는 대원의가 권좌에 올랐으니 어찌 합법적인 경로를 거쳤다고 할수 있겠는가.

그러니 결코 그 자리는 편안할수 없었다.

꿈에도 바라마지 않던 룡상에 오른 그의 기쁨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수 있었으랴. 천하가 발아래 굽어보이는 옥좌에 틀스럽게 앉아있노라니 고금의 피비린내나는 궁정비화들이 충분히 깨도가 되였다. 나라님이 생겨 몇천년 죽이고 죽음당하고 내쫓고 쫓기우며 피의 력사가 이속에서 흘러왔나니 형제간에 불화하고 인척간에 불친하고 군신간에 불신하며 공신이 되기도 하고 역적이 되기도 하며 그처럼 바라던 보위.

지그시 눈감고 명상에 잠긴 대원의의 귀가에 문건에 인준을 청하는 한 관리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임금의 앞에서는 모두가 무서워 떠는구나.

아무렴, 나라님앞에 누가 감히 엇서랴. 꿈속에서 깨여나기 싫은듯 대원의는 눈을 감은채로 습관적으로 대왕의 옥새를 받아 조서우에 콱 눌렀다.

선조성의 관리는 어새를 제 위치에 누를수 있게 조서의 위치를 변경시키느라고 무던히 땀을 뽑았다.

하지만 대왕의 안석이 결코 편안한것은 아니였다. 더우기 음모적방법으로 찬위한 대원의에게 있어서이랴.

《페하, 역모사건이 터졌소이다.》

《금상의 침상에 부적을 깐 궁녀들을 잡아냈소이다.》

《...부, 주들에서 역도들의 란동이 있었소이다.》

여기저기서 장계들이 올라왔다. 기본취지는 모두 금상을 인정할수 없으므로 타도하려 한다는것들이였다.

대원의는 분개하였다.

어떻게 등극하였던지간에 짐은 이 나라의 천자다. 그러니 짐을 받들지 못하겠다는자는 모두 역적이다. 누가 감히 거스르려드느냐, 네놈, 아니면 저놈?!

대원의는 광분하였다.

자기의 적수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지시하였다. 하루에도 몇십명씩 국문을 당하고 형틀아래 이슬로 사라졌다. 관료들의 반란과 백성들의 폭동이 무자비하게 진압당했다. 눈 한번 쫑깃한 죄로 3대멸족을 당했다.

제노라던 재사들은 시기의 대상으로 교형을 당하거나 정배를 갔다.

얼결에 한숨을 쉰것이 빌미로 되여 륙시당하였다. 아첨군들조차 기침을 참느라고 비지땀을 흘리고 숨소리마저 죽여가며 계하에 꼼짝하지 못하고 서있다가 대궐을 나서면 문밖에 쓰러지군 하였다. 긴장해서 있다가 그대로 심장이 멎어 죽어나가는자도 있었다.

무지한 임금의 비위를 맞추느라고 우정 머저리시늉을 하여야 했다.

대원의는 설설 기여다니는 뭇신하들을 굽어보며 만족감을 금할수 없었다. 바로 그래야지 이것이 바로 위엄과 복종이라는것이다.

그는 전국 5경 15부에 관리들을 파견하여 백성들에게 조세와 공물을 독촉하였다. 저기 북쪽에서는 초서피(누른돈의 털가죽)와 범, 표범, 물개, 곰 가죽, 흑수의 연어, 고래의 눈, 말린 잉어, 붕어, 인삼, 잣, 사향, 꿀을 바치도록 하며 로성에서는 벼를, 환도에서는 고급추리를, 락유에서는 배를, 막힐에서는 돼지를, 룡주에서는 명주를, 현주에서는 삼베를, 남해에서는 곤포를, 옥주에서는 풀솜을, 여기 책성에서는 그 유명한 된장을 진상하도록 하였다.

각 부, 주와 속령지역들의 특산품들을 매일과 같이 독촉하는 대원의의 야욕에는 끝이 없었다.

게다가 이를 계기로 한몫 보려는 아전배들과 관리들의 토색질로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령락되여갔고 더는 견딜수 없게 된 사람들의 반봉건적진출도 이에 따라 강화되였다.

대원의에게 원한을 품은자들이 이 기회를 놓칠리 만무하였다. 그들은 도처에서 일어나는 백성들의 폭동으로 대원의의 이목이 딴데로 돌려진 기회를 틈타 그뒤에서 거사를 준비하였다.

깊은밤, 한 권가의 솟을대문을 소리가 날세라 조심히 밀어여는 사나이가 있었다.

문은 안으로 걸려있지 않았는지 쉽게 열리였다.

사나이는 주위를 다시한번 둘러보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는 총총걸음으로 정원을 지나 초불이 희미한 방으로 들어갔다.

《수고했다.》 어스크레한 속에서 소년의 새된 소리가 반겨주었다.

《갔던 일은 다 잘되였소이다.》

《형님은 뭐라고 하시더냐?》

《부디 실수가 없도록 하라고 신신당부하셨소이다.》

《원 겁두... 그래, 대장군은?...》

《군사들을 대기시켜놓고 지시가 있기만을 기다린다 하였소이다.》

《수고했다. 이젠 돌아가 쉬여라.》

두 사람은 밀회를 마쳤다. 시종인듯한 사나이는 허리를 구부린채 바삐 방에서 물러나갔다.

방에 있던 새된 소리의 임자는 시종이 주고간 편지를 보려고 초대를 자기앞으로 바싹 끄당겼다. 불빛에 어둠속의 소년이 자기의 모습을 우렷이 드러냈다. 두드러진 이마, 치째진 두눈, 넓적한 코, 고집스레 다물린 입, 10대의 소년이 분명하였으나 체모에서는 로회한 장년의 기상이 엿보였다.

그가 바로 문왕 대흠무의 손자인 대숭린이다.

그는 태자였던 아버지 굉림이 요절하였으므로 할아버지의 사후 보위는 응당 손자들가운데서 그 누구에게 넘겨지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먼 친척벌이 되는 대원의가 권좌에 오른것이였다.

대숭린은 아연하였다.

물론 그도 자기의 세작들로부터 대원의가 룡좌를 넘겨다본다는 통보를 받지 못한것은 아니였지만 설마하는 생각에 대책을 세우지 못하였던것이다.

집권한 대원의가 시기를 일삼으며 가혹한 정사를 펴자 대숭린은 자기를 보존할 방도를 강구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무지한 대원의가 자기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그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형틀에 올려놓았던것이다.

얼마후 사냥나갔던 숭린이 말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치는 바람에 머저리가 되였다는 소문이 나게 되였다.

한번은 대원의가 교외에 사냥을 나갔을 때 그를 좇아간 일이 있었다. 그때 숭린은 제가 잡은 짐승들도 임금님이 잡은것이라고 바치면서 머저리처럼 느침을 겔겔 흘렸다.

그 모양을 본 대원의는 자만자족하여 그에게 엎드리라 하고 그를 딛고 말에서 내렸다.

속으로는 피눈물을 삼키면서도 입으로는 《황상만세!》를 련거퍼 웨쳐댔다.

그때 그는 속으로 마음다졌다. 네가 지금은 내 등을 밟고있다만 나는 너의 목을 베여 저자에 내걸리라.

때를 기다려 그는 와신상담을 달게 여기였다.

월왕 구천이 거북한 섶우에서 자고 낮에는 밥먹기 전에 쓴 열을 먼저 맛보며 힘을 키워나갔다지 않은가. 결국은 오나라 부차에게 이겼지.

그래, 계산은 그때 하자.

10대의 소년호걸 대숭린은 그 막뒤에서 반국왕세력을 규합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아직은 표면상 적손 대화여를 중심인물로 삼았다. 이것은 적지 않은 관료들의 지지를 받았다. 역시 룡상의 꿈을 안고사는 화여도 거절은 하지 않았지만 원래 조심스럽고 나약한 인물이라 별궁에 틀어박혀 별고가 없기만을 재삼 강조하였다.

대숭린은 무관들에게 손을 뻗쳐 군대를 장악하려고 시도하였다. 대원의의 시기와 폭행에 반감을 품은 무관들과 시위군사들이 은밀히 대숭린과 련계를 맺었다.

그밤도 숭린은 형인 화여에게 폭동계획과 날자를 알리고 장군 대창태와 구체적인 합의를 보기 위하여 시종을 몰래 보냈던것이다.

대창태의 편지를 읽고나서 대숭린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래일이면 모든것이 결산된다.

바로 이날을 위하여 모든 굴욕을 참고 견디였었다.

숭린은 벽에 걸어둔 장검을 내리워 뽑아들었다. 불빛에 칼날이 번뜩였다.

이 칼에 모든것이 달려있다.

그는 자기의 운명이 직결되여있는 장검을 오래도록 쓰다듬었다.

어서 날이 밝았으면...

대숭린은 답답한 심경을 풀어보려는듯 칼집으로 뙤창을 활 밀어제꼈다. 찬바람이 기다렸던듯 획 밀려들며 초불을 꺼버렸다.

다음날 저녁, 경기의 군인들은 정변을 일으켰다. 적지 않은 문무관료들이 이에 적극 가담하였다.

대원의는 시살되고 대흠무의 장손 대화여가 보위에 올랐다.

식을 거행하는 장소에서 대숭린은 옆에 찬 칼을 부지런히 어루만졌다. 그의 장검은 아직 자기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던것이다.

력사에는 4대임금 대원의가 시기와 폭정을 일삼았으므로 1년을 넘기지 못하고 《국인》(나라사람, 수도사람들이라는 뜻)들에 의해 처형되였다고 기록되여있다.

력사는 언제나 후광으로 그 리면을 밝혀야 한다.

그러면 이 한줄뿐인 기록에도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얽혀져있는가를 알게 될것이다.

권력과 음모의 피비린내속에 5대 왕위에 올라 조부가 일시 수도로 정하였던 상경에로 천도를 단행한 대화여(성왕)는 793년 한해를 넘기고 그만 죽고말았다.

후임으로는 그의 동생인 대숭린이 올랐다.

죽은 후에 나라를 편안케 한 왕(강왕)이라는 시호를 받은 대숭린이고 보면 거듭되는 정권교체에서 그가 논 역할을 가히 짐작할수 있는것이다.

793년 대흠무의 죽음과 대숭린의 즉위, 대원의의 페위, 성왕 화여의 급사, 그것을 주도한 강왕 대숭린.

권력쟁탈을 위한 피바다우에서 이긴자 뭇신하들의 찬배속에 웃음지을 때 나라는 눈물지었다. 나라의 발전은 정체되고 대국의 권위는 흔들렸다. 때를 노린자들이 발해의 기반에서 벗어져나가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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