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만춘과 당태종​

반만년의 유구한 민족사에서 국력이 가장 강한 때는 고구려때였다.

고구려의 강대성과 그 위력은 외래침략자들과의 싸움마다에서 남김없이 과시되였다.

645년 전쟁때 있은 안시성(중국 료동반도 해성부근의 영성자산성)방어전투는 바로 그러한 실례의 하나이다.

당나라침략자들이 전쟁을 도발한지 석달이 지난 645년 6월 어느날이였다.

안시성 성주 양만춘장군에게는 백암성이 성주 손대음의 투항변절로 하여 적들에게 함락되고 침략군이 안시성으로 공격해오고있다는 급보가 날아왔다.

이 소식은 곧 연개소문을 총지휘자로 하는 고구려군의 총지휘부에 전달되였다.

당시 안시성은 료하류역에 설치된 전연방어성들가운데서 료동성 다음가는 중요한 군사전략적거점이였다. 이미 전연방어성들인 개모성과 비사성, 료동성과 백암성이 적들의 손에 들어갔고 전방에 남은 성은 신성과 건안성, 안시성뿐이였다.

안시성은 신성과 건안성의 중간에 있고 오골성을 거쳐 압록강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것으로 하여 안시성의 방어문제는 료동지방 여러 성들의 방어에 큰 영향을 줄뿐아니라 나아가서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사활적인 문제로 되였다. 이로부터 고구려의 총지휘부는 15만의 예비병력을 내여 안시성을 지원하라는 긴급명령을 내리였다. 그리하여 침략자들은 안시성을 먼저 완전히 포위한 상황에서 고구려의 15만 지원군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당시 적들은 개모성과 비사성을 함락한 후 료동성을 겨우 점령하게 되자 료하류역의 성들을 차례로 공격함으로써 손쉽게 점령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수도로 침공하려던 초기계획을 바꾸어 륙군과 수군의 력량을 합쳐 한개성씩 각개격파하는 전술로 나왔으며 백암성이 바로 그 첫 타격대상으로 되였다.

양만춘장군의 두눈에서는 불이 일었다.

《손대음, 네놈이 성주로서 투항하여 외적에게 나라의 관문을 열어주다니, 백암성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줄은 몰랐구나!》

그런데 만단의 방어준비를 갖추고있던 양만춘장군과 안시성군민들에게는 또다시 불길한 소식이 날아왔다. 15만의 지원군이 적들의 불의기습을 받게 되자 고연수, 고혜진 등 지휘자들이 투항변절하였다는것이다.

(이게 무슨 변인가. 어제는 성주가 변절하고 오늘은 숱한 병력을 거느린 장수들이 투항했으니!)

전쟁국면이 고구려에 불리해만지고있던 이때 일부 지휘관들의 투항변절은 양만춘의 가슴을 무겁게 하였다.

바로 이때 양만춘의 수하장수가 그에게로 달려오며 소리쳤다.

《적괴수 당태종이 성밖에 나타났소이다!》

《흥, 네놈이 이젠 우쭐해졌구나. 당나라 황제가 거느린 군사를 이 고구려의 양만춘이 어떻게 요정내는가를 이제 보여주마.》

양만춘은 속으로 다짐하며 태연히 갑옷을 떨쳐입고 성벽우에 올라섰다.

한편 성벽우에 서있는 양만춘을 어렴풋이 알아본 당태종은 옆에 서있던 륙군의 우두머리 리세적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안시성이 원래 험하고 군사가 강한데다 성주 역시 지략이 뛰여나고 용감한 장수라니 쉬이 떨어뜨리지는 못할것이다. 옛날 수양제는 부하들에게 잔인하고 포악했으나 고구려의 영류왕은 부하백성에게 인자하고 어질었다. 수양제는 반란을 꾀하려는 군사로서 안정되고 화목한 고구려군을 쳤기때문에 실패했다. 지금 우리는 큰것으로 작은것을 치고 순리로 반역을 치고있으니 어찌 이기지 못할가봐 근심하겠는가. 리세적 너의 말을 쫓아 건안성을 먼저 칠 생각을 바꾸어 안시성으로 달려왔으니 속히 점령하라!》

그러나 일은 당태종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낮에 밤을 이어 벌어진 공방전은 며칠이 지나도 승부가 나지 않았으며 적들의 사기는 점점 저락되여갔고 오히려 안시성군민의 기세는 더욱 높아갔다.

안시성의 방위자들은 당나라 황제의 기발과 일산(해가리개)을 발견하기만 하면 북과 징을 두드리고 고함을 치면서 욕을 퍼부었으며 그때마다 당태종은 약이 올라 노발대발하였다.

《장수들은 무엇하는가. 6월에 공격하기 시작해서 벌써 8월이다. 여기서 겨울을 날 작정이냐?》

흥분한 당태종은 속이 상하여 리세적에게 행패질만 하였다.

《소인이 성을 함락하는 날 성안의 남자들은 모두 구뎅이에 묻어버리겠소이다.》하고 리세적이 변명하였다.

《듣기 싫다! 빨리 포차와 충차로 성벽을 들부셔라!》

당태종의 고함소리가 떨어지기 바쁘게 300근짜리 큰 돌들이 련방 안시성의 성벽에 날아가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성벽을 무너뜨렸다.

순간 《통나무로 울타리를 세워 성벽을 막으라!》하는 양만춘장군의 벼락같은 구령소리가 들렸고 적진에서는 《빨리 무너진 성벽을 타고넘으라!》하는 당태종의 고함소리가 울렸다.

무너진 성벽으로 먼저 달려온것은 고구려의 용감한 궁수들이였다. 그들은 긴 사닥다리를 둘러메고 달려드는 적들에게 우박같은 화살벼락을 퍼부어 무리죽음을 안기였다. 깨여졌던 성벽은 얼마 안되여 보수되였다.

《굼벵이같은 놈들, 도망쳐오는 놈들은 모조리 목을 쳐라!》하며 당태종은 안절부절 하지 못하였다.

적들을 수세에 몰아넣고 양만춘은 재차 주동적인 반공격전으로 넘어갈것을 안시성의 군인들에게 지시하였다.

이때부터 적들은 낮에는 당태종에게 몰리워 성벽에 기여오르느라 맥을 뽑았고 밤에는 고구려군의 불의기습에 시달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였다.

당태종은 이렇게 계속 얻어맞기만 하고 공성무기의 위력도 효과를 보지 못하자 부총관 리도종에게 안시성보다 더 높은 흙산을 쌓아 성을 내려다보면서 공격할것을 명령하였다.

이리하여 안시성의 동남쪽 모퉁이에는 60일간에 걸쳐 50만 공수나 들여 밤낮없이 쌓은 흙산이 생겨나게 되였다.

양만춘은 적들의 이러한 의도를 곧 알아차리고 하루 6~7차례의 교대를 정하여 성벽을 높이 쌓을것을 명령하였다.

그런데 성벽과 흙산이 승벽내기로 저마끔 높아지던 어느날 적들이 쌓은 흙산이 안쪽으로 무너지면서 안시성의 성벽을 눌러 무너뜨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흙산을 맡고있던 적장 부복애라는 놈은 때마침 제마음대로 자리를 뜨고 없었다. 지휘관이 없는 적들이 어물거리고있는 사이에 때를 놓칠세라 성방위자들은 즉시에 흙산을 타고앉았다.

《닭을 길러 족제비에게 준다더니. 부복애놈의 목을 잘라 각 군영들에 돌려라!》

당태종은 화가 치밀어올라 견딜수가 없었다.

그후 3일동안 계속된 적들의 발악적공세는 모두 실패하고말았다. 이제는 군량까지 밑창이 난데다가 료동벌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당태종은 기운이 빠져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정신나간 놈처럼 하늘만 쳐다보았다.

(아! 내 일국의 황제로서 이 싸움을 직접 지휘했건만 고구려의 이름없는 성주에게 무릎을 꿇다니.)

당태종은 저들의 집요한 공격앞에서 연 88일동안이나 버티여낸 안시성방위자들의 완강성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당태종은 드디여 전군에 퇴각명령을 내리였고 양만춘이 성을 잘 지켜 싸웠다고 하면서 명주 100필을 그에게 보내기까지 하였다.

《흥! 도망을 치자니 꾀를 부리는군, 이따위나 보내오면 추격을 안할줄 아는가.》

양만춘장군은 곧 적들에 대한 추격전을 명령하였다. 결국 당태종의 침략군은 료동의 진펄속에서 숱한 주검을 내면서 도망가지 않을수 없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안시성전투때 당태종은 고구려군사의 화살에 맞아 애꾸눈이 되였다고도 한다.

이처럼 양만춘장군을 비롯한 용감한 애국적군민들에 의하여 이룩된 안시성전투의 빛나는 승리는 고구려인민들의 높은 애국심과 완강한 투쟁정신에 의하여 이룩된것이였으며 그것은 645년 전쟁을 고구려의 승리로 끝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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