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떨친 화가 리녕

리녕(12세기 전반기)은 고려의 대표적인 풍경화가이다.

그의 스승은 당시 이름있는 화가 리준이였는데 이 엄격한 스승은 리녕에게 전통적인 화법 등의 요구대로만 그림을 그리도록 하였다. 하지만 리녕은 옛날사람들의 화법을 따르되 거기에 구애되지 않고 새로운 화법을 창조하기 위해 고심하면서 자유분방하게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어느날 그림에 조예가 있는 임금으로 알려진 인종이 리녕의 그림들을 보고 《우리 고려에도 그림을 이렇게 잘 그리는 화공이 있는줄은 몰랐구나.》라고 감탄하며 리녕을 궁으로 불러들여 누구에게서 그림을 배웠는가고 물었다.

스승이 리준이라는 리녕의 대답에 인종은 자기가 본 그림을 그에게 내밀며 이 그림을 스승에게 보인적이 있는가고 물었다.

그림이 미숙하여 칭찬을 받을것 같지 못해 보인적이 없다는 리녕의 말에 인종은 머리를 끄덕이며 그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며칠후 그의 스승을 부른 인종은 리녕이 그린 산수화를 보여주며 물었다.

《이 그림을 어느 나라 사람이 그린것 같소?》

리준이는 다른 나라의 화가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잘 그릴수 없는줄 안다고 하였다.

《틀렸다. 이 그림은 너의 제자 리녕이 그린것이다. 너의 제자중에 이런 훌륭한 화공이 있는데 대해 긍지를 가져야 한다.》

왕의 말에 리준이는 기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여 황황히 물러났다.

1124년 리녕이 사신을 따라 송나라에 간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송나라 왕에게 《례성강도》를 그려주어 온 송나라땅에 이름을 날렸으며 송나라의 화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가 귀국한 후 어느날 인종은 리녕을 불러 송나라 상인이 《송나라의 명화》라고 자랑하던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림을 본 리녕이 《황송하오나 이 그림은 소생이 그린것이옵니다.》라고 아뢰였지만 인종은 그의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네가 그린 그림이라는것을 보여줄수 있는 표적이라도 있느냐?》

리녕은 곧 그림을 받아 뒤폭모서리를 뜯었는데 거기에는 리녕이 그렸다는것을 증명하는 락관(도장)이 있었다.

바로 이 그림이 《천수사남문도》이다.

아쉽게도 《례성강도》와 《천수사남문도》는 실물이 전해지지 않고있다. 그러나 력사는 12세기 초엽 리녕과 같은 명성높은 화가들에 의해 고려의 회화수준이 송나라를 훨씬 릉가하였음을 후세에 전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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