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을 통해 본 고상한 미풍량속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에는 옛날부터 한번 결혼을 하면 갈라지지 않고 일생을 같이 사는 좋은 풍습이 있습니다.》

한번 맺은 사랑의 언약을 일생토록 굳게 지키는것은 우리 민족의 고상한 미풍량속이다. 예로부터 재물이나 권세보다도 정과 의리를 더 귀중히 여겨온 우리 인민은 남녀가 한번 결혼을 하면 서로 돕고 리해하면서 일생동안 함께 가정생활을 꾸려나가는것을 응당한것으로 간주해왔다.

옛 기록에 의하면 고조선에서는 《녀성들이 행실이 단정하고 신의가 있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고대부터 우리 인민들속에서 부부사이의 신의가 매우 두터웠으며 서로를 아끼고 도와주는 아름다운 풍습이 널리 발현되고있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남편이 안해를 홀시하거나 구박하는 일이 거의 없었을뿐아니라 서로 다투지도 않고 화목하게 지냈다. 이것은 부부의 일생언약을 담보하는 중요한 기초로 되였다.

고대에 널리 존재하였던 이러한 부부관계는 삼국시기에 와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삼국지》를 비롯한 중국의 오랜 력사기록들에 의하면 고구려에서는 《남녀가 혼인하면 송종지의를 만든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송종지의》는 생을 마치고 떠나가는 사람에게 입히는 옷을 말한다. 이것을 통해서도 혼인을 하면 일생 변치 않고 끝까지 함께 살아가는 우리 인민의 미풍량속이 매우 오랜 력사적전통을 가지고있었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

남편과 안해사이의 고상한 도덕관계는 그후 발해 및 후기신라시기를 거쳐 우리 나라 중세력사의 전과정에서 보편적인것으로 되였다. 《고려사》를 비롯한 우리 나라 력사기록들에 의하면 부모와 아무런 합의도 없이 제멋대로 안해를 버린자는 벼슬을 빼앗고 제한된 지역에서만 살게 하는 벌을 주었으며 처가 마음대로 집을 뛰쳐나갔을 때에는 도형 2년에 처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의 법전에는 두번 약혼하는것 자체를 비도덕적인 행위로 규정하고 당사자에게 죄를 주었으며 두번째 약혼이나 혼인을 무효로 선포하였다. 함께 살아온 안해를 이러저러한 구실을 붙여 내쫓는것은 사회적비난, 도덕적규탄의 대상으로 되였다.

이처럼 오랜 옛날부터 우리 인민은 한번 결혼하면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며 일생을 손잡고 다정하게 살아나가는것을 응당한 도리로 여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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