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송가의 장엄한 포성

주체45(1956)년에 처음으로 조선인민군협주단에서 수령송가인김일성원수께 드리는 노래》를 창작하였다. 하지만 그후 반당수정주의분자들의 방해책동으로 하여 수령송가창작은 중단상태에 빠져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창작가들에게 위대한 수령님을 칭송하는 노래를 많이 창작하는 한편 그 노래를 방송으로 내보내여 우리 인민들을 교양하고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는데 이바지하도록 그들의 심장속에 수령송가창작의 불길을 지펴주시였다.

일군들과 창작가들은 위대한 장군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온 나라를 수령님에 대한 흠모의 열기로 끓어번지게 할 심장의 맹세를 안고 창작전투를 힘있게 벌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창작가들이 좋은 곡상을 찾지 못해 모대기고있을 때에는 책상머리에서만 빙글빙글 돌아가서야 어떻게 좋은 곡상을 잡아쥘수 있겠는가, 백두산에도 가보고 만경대와 봉화리같은 사적지들에 나가 체험도 해보아야 폭이 큰 송가의 울림도 나올게 아닌가고 하나하나 일깨워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속에 시상도 곡상도 있다는것을 깨달은 창작가들은 곧 백두산으로 올랐다.

살을 에이는 백두의 칼바람과 하늘을 떠이고 솟아있는 장엄하고 웅건한 천만산악에서 그들은 그처럼 바라던 곡상을 찾았다.

이렇게 되여 나온 노래가 바로 《4천만은 수령을 노래합니다》였다.

이 노래를 들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유순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민족적인 맛이 나는 선률이 얼마나 좋은가고 하시며 그들의 창작성과를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련이어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56돐을 맞으며 또 한편의 수령송가인 《수령님 한품속에 우리는 사네》가 보급되여 온 나라 인민이 즐겨부르는 명곡으로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후날 이 두편의 노래가 가지는 력사적인 의미를 되새겨보시며 그 노래들의 창작은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는데서 전환의 계기로 되였으며 우리 당 발전력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다고, 그 노래들의 창작보급은 혁명적수령관에 기초한 우리 나라 음악예술발전의 새시대를 선언한 포성이였으며 반당수정주의분자들에 대한 선전포고였다고 추억깊은 교시를 하시였다.

수령송가의 음악포성은 위대한 장군님의 이렇듯 세심한 지도가 있어 세기와 년대를 이어가며 울려퍼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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