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81(1992)년 5월의 화창한 봄날,
우리 나라에는 원래 왕가성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그러므로 느닷없이 왕가성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것처럼 생겨날수는 없는것이다. 지금도 우리 사람들속에서는 왕가성을 가진 사람이 거의나 없다.
《왕건이 개성지방의 유력한 신흥봉건세력출신이였으므로 자기의 성을 왕가로 달고 후손들이 다 왕가성을 가지게 하여 왕가성이 생겨났을수 있으며 그가 왕가성의 조상일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왕가성을 가진 사람이 개성지방에만 있었고 다른 지방에는 없었던것만 보아도 왕건이 자기 성을 단것으로 짐작됩니다.》 (
그러시면서 지난
사실 성씨에 대한 문제는 누구도 깊이 생각해본 일이 없는 문제였다. 만일 있다면 그것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력사학자들속에서 있었을것이였지만
일군들이 경탄을 금치 못하는데 우리
우리 나라에서 공가성을 가진 사람들도 개성지방에서 살고있었다.
책을 보시다가 이런 사실이 눈에 띄여 평시에 그것을 놓치지 않고 늘 기억속에 새겨두시였던
그가 말하는데 의하면 중국에는 공가성을 가진 사람이 공자의 후손밖에 없다는것이였다. 그는 조선에도 공가성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데 대하여 매우 호기심을 가지고 대하면서 무엇인가 생각을 굴리더니 이런 사실을 추측해내였다.
공자의 82대손인가 83대손인가 되는 한 사람이 공민왕의 부인이 조선에 갈 때 시녀와 하인들속에 끼여서 간 일이 있었다. 공민왕의 부인은 몽골녀자로서 원나라의 공주였다.
바로 공민왕의 부인일행과 함께 온 그 공가성을 가진 사람에 의하여 우리 나라에 공가성이 퍼진것 같았다.
이렇게 되여 그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