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골외가에서의 감회깊은 회고 (1)​

 고향 만경대를 찾으시여 조부모님들과 감격적인 회포를 나누신 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34(1945)년 10월 17일 저녁무렵 칠골외가를 찾으시였다.

《모두들 편안하시였습니까?》

 마당에 들어서시며 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우렁우렁하신 말씀에 버선발로 달려나온 외가분들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였다.

 《나라를 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면서 칠골을 떠나시더니 기어이 나라를 찾고 오셨구만.》

 외삼촌어머니가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으며 이렇게 말씀드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며 말씀하시였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집은 예전그대로입니다. 만경대집과 함께 정이 들고 감회가 깊은 집입니다.》

 잠시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외가분들과 함께 방안에 들어가 앉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까지도 잡고계시던 외삼촌어머니의 손을 다정히 쓸어주시며 칠골과 외가분들이 못내 그리웠고 언제 한번 잊은적이 없다고 하시며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런데 계셔야 할 분들, 만나야 할 분들이 다 없습니다.》

 외할아버님과 외할머님, 강진석외삼촌에 대한 그리움에 잠겨 하시는 말씀이시였다.

 한동안 아무 말씀없이 생각에 잠겨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는 조국을 해방하면 꼭 외할아버지에게 큰 절을 드리려고 하였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내가 조국해방을 위한 투쟁의 길에서 나서서 일제와 끝까지 싸워 이길수 있은것은 외할아버지를 비롯한 외가분들의 적극적인 로력이 깃들어있기때문입니다.

 외할아버지는 나에게 우리 나라 력사와 지리를 비롯한 폭넓은 지식을 가르쳐주고 세상에 대한 옳은 인식을 가지도록 따뜻이 이끌어주고 도와주신 고마운 스승이십니다.

 그러시고 외할아버지는 늘 자신께 지식이 밭으면 나라가 왜 망했는지, 인민들이 왜 재난을 당하는지 잘 모르게 된다고 가르쳤다고 말씀하시였다.

 외할아버님의 체취가 어려있는 방안을 다시금 둘러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득 《일본총독 망귀지 시월 십일 사회전, 백체일심 위성공 일본백일 수재변》이라고 쓴 글을 나직이 뇌이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 글은 일제가 동양제패를 떠들던 시기에 우리 조선이 번영의 시대를 맞이할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내다보시고 외할아버지가 쓰신 글입니다.

 외할아버님이신 강돈욱선생님은 주체13(1924)년 9월에 일본총독은 쫓겨가고 우리 민족은 한몸으로 뭉쳐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며 일본제국주의는 멸망의 운명을 면치 못한다는 내용의 이 글을 쓰시여 학생들에게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에 대해 설명해주시면서 외할아버지는 그때 벌써 해방된 나라의 오늘과 민족의 래일을 내다보시였다고, 외할아버지가 선견지명하신것은 책을 많이 보고 공부를 많이 하시였기때문이라고, 외할아버지의 방에는 책이 많았으며 보신 책의 내용을 자신에게 다 이야기해주시면서 책들을 빼놓지 말고 다 읽으라고 늘 이르시군 하였다고 감회깊이 말씀하시였다.

 이윽고 웃방에 올라가신 그이께서는 룡마루에 있는 《백학사지모옥 두공부지초당》이라는 글을 읽어보시며 저 글도 외할아버지가 쓴 글이라고, 글을 보니 외할아버지생각이 더 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 《두공부지초당》이라는 글만 보아도 외할아버지의 높은 뜻을 알수 있다고, 외할아버지는 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신의 방을 중국의 이름난 시인 두보의 초당에 비기였다고, 그래서 자신께서도 창덕학교에 다닐때 두보의 시도 읊어보고 음미도 해보았다고 말씀하시였다.

 그 웃방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배움의 천리길을 걸어 칠골에 오시였을때 외할아버님께서 통채로 내주신 방이였다.

 이에 대해 회고하시며 수령님께서는 그때 자신에 대한 외할아버지의 기대가 얼마나 큰가하는것을 새삼스럽게 느끼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집밖에 있는 우물을 가리키시면서도 졸음이 올때마다 저 우물에 나가 찬물을 끼얹고 돌아와 공부를 계속하군 하였다고, 졸음을 이겨내는데는 찬물이상 좋은것이 없다고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창덕학교시절 외가댁에서 겪으신 잊지못할 추억들을 돌이켜보신 그이께서는 강돈욱선생님의 애국적인 교육활동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하시였다.

 외할아버지는 새로운 애국적인 교육활동을 주장하시면서 칠골에 창덕학교를 세우시고 학생들을 가르치시였을뿐아니라 서선지방의 여러 학교들에 가시여 교육사업에 헌신하였습니다.

 강돈욱선생님께서 후대교육사업에 쌓으신 공적을 높이 찬양하여 동아일보사에서는 1927년에 선생님께 은잔과 상장을 수여하였고 뜻있는 애국지사들은 1939년에 선생님의 공적을 전하기 위하여 《묵계선생 강돈욱 기적비》를 비석거리에 세웠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에 대해 상기하시면서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칠골외가는 학문이 뛰여난 대대로 문학가의 가정이였으며 애국적인 일가였습니다.》

 그러시고 외할아버지가 이태만 더 계셨으면 만날수 있었으나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애석함을 금치못해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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