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세봉​

(1896.7.15-1934.9.20)   

주체6(1917)년말 중국으로 이주한 후 그곳에서 3.1인민봉기에 참가하였다. 그후 천마산의병대 선봉장으로 있었으며 주체9(1920)년부터 광복군사령부에서 활동하였다. 주체10(1921)년부터 독립군부대에서 활동하였으며 주체11(1922)년부터 소대장, 중대장으로 있으면서 압록강을 넘어 국내에 들어와 일제의 주재소들을 습격하는 과감한 전투를 벌리였다. 그 과정에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을 여러차례 만나뵈옵고 독립운동에 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았으며 김형직선생님과 의형제를 맺었다. 주체14년부터 민족주의자들의 반일단체인 정의부의 간부로 있었고 3부의 통합으로 국민부가 나온 후에는 독립군의 통수권을 장악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화성의숙에 입학하실 때 소개신을 써드리였으며 길림육문중학교에 다니실 때에는 학비도 마련해드리였다. 주체21(1932)년 6월 독립군과의 통일전선을 위해 통화에 오신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고 반일민족통일전선형성과 관련한 귀중한 교시를 받았다.

남만에서 국민부가 조직한 조선혁명군 사령으로 있다가 통화성 환인현에서 적들에 의하여 희생되였다. 묘는 애국렬사릉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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