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가분방에서 받아들인 유격대원들

 

주체21(1932)년 6월 3일에 소사하를 출발한 남만원정대는 이도강을 건너 행군하다가 류가분방이라는 마을에 들어섰다. 이 마을이 류가분방이라고 불리우게 된것은 류가성을 가진 사람이 제분소를 차려놓은 때부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을에서 하루밤 묵기로 하시였다. 저녁식사를 하고난 유격대는 넓다란 제분소앞마당에 우등불을 피웠다. 유격대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린접부락의 사람들까지 류가분방으로 모여들었다. 제분소마당에 모인 군중은 수백명 잘되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우등불가에 앉으시여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사람들은 그이께 유격대가 어떤 군대이며 유격대가 독립군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고 문의하였다. 이를테면 독립군도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군대이고 반일인민유격대도 나라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군대라면 하필 유격대라는것을 따로 내올 필요가 있는가, 독립군도 어쩌지 못하는 왜놈을 유격대가 거꾸러뜨릴 승산이 있는가, 있다면 그 담보는 무엇인가 하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생각이 많으시였다.

단순하고 평범한 질문 같았지만 거기에는 새로 탄생한 무장력에 대한 기대 그리고 그 힘에 대한 반신반의의 감정이 깔려있었다.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알기쉽게 이야기해주시였다.

반일인민유격대란 말그대로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여 싸우는 인민의 군대이다. 이 군대는 로동자, 농민의 자식들과 청년학생, 지식인들로써 무어졌다. 반일인민유격대의 사명은 일제식민지통치를 청산하고 조선민족의 독립과 사회적해방을 이룩하는데 있다. 반일인민유격대는 의병과도 다르고 독립군과도 다른 새형의 군대이다. 독립군의 지도사상이 부르죠아민족주의라면 항일유격대의 지도사상은 공산주의사상이다. …

사람들은 처음 듣는 희한한 소리에 그이께로 다 바싹 다가앉았다. 수령님의 말씀이 계속되였다.

돈있는 사람들이 주인된 사회를 세우는것이 독립군의 리상이라면 근로하는 사람들이 주인된 세상을 건설하는것이 반일인민유격대의 리상이다. 독립군이 여러분과 같은 평백성들을 광복운동의 협조자로, 동정자로 보아왔다면 우리는 당신들을 항일혁명의 담당자로, 주인으로 보고있다. 의병의 뒤를 이어 독립군이 그동안 만주산야와 조국의 북부지대에서 오래동안 일제와 혈투를 벌리느라고 수고한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독립군의 군세는 점점 허약해지고 지금은 그 존립마저 위기에 처해있다. 독립군이 이루지 못한 위업을 우리가 완수해야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조직한것이 바로 반일인민유격대이다.…

그이의 말씀에 좌중은 흥분으로 술렁이였다. 한 청년이 일어섰다.

《장군님, 반일인민유격대의 병력이 몇천명쯤 됩니까?》

수령님께서는 아직 초기여서 수백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조만간에 수천수만명으로 불어날것이라고 하시였다.

그는 유격대에 입대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가고 또 말씀드렸다. 수령님께서는 특별한 절차나 격식은 없다, 싸울 각오가 되여있는 청년들은 누구나 다 받아들일수 있다, 입대는 혁명조직의 추천을 받는 방법으로 할수도 있고 부대를 찾아와 직접 청원하는 방법으로 할수도 있다고 하시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여러명의 마을청년들이 그이를 에워쌌다.

《장군님, 우리들이 입대를 청원하면 이 자리에서 받아줄수 있습니까?》

《받아들이지요. 그런데 입대하더라도 당분간은 무기가 없이 지내야 하겠습니다. 무기는 전투마당에서 자체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도 입대할 용의가 있다면 우리는 그 청원을 이 자리에서 그대로 수락하겠습니다.》

이리하여 여러명의 마을청년들이 한꺼번에 유격대에 입대하게 되였다. 혁명동지 한사람을 얻기 위해 때로는 두사람, 세사람의 동지를 잃는 경우도 있었던 당시의 형편에서 10명가까운 청년들을 단번에 유격대오에 받아들인것은 하나의 사변이였다. 이 사변앞에서 대원들은 크게 탄복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설득력있는 정치사업이 그처럼 놀라운 위력을 발휘할줄은 몰랐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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