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화현성전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휘밑에 반일인민유격대가 중국인반일부대와의 협동작전으로 진행한 첫 현성공격전투.

주체21(1932년) 9월 2일에 진행되였다.

남만원정을 마치시고 량강구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반일부대들이 항전을 포기하고 안전지대로 철수해가거나 적들에게 투항하여 반동군대로 변질되고있다는것을 아시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일부대의 이러한 동요와 괴멸을 막기 위해서는 그들과의 사업을 더 적극적으로 하는 동시에 전투를 통하여 그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량강구에서는 구국군내부에 파견되여 활동하고 있던 정치공작원들과 동만 각 현에서 온 군정일군들이 참가한 반일병사위원회가 소집되였으며 여기에서 반일인민유격대와 반일부대가 련합하여 돈화현성전투를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돈화현성에는 일본수비대가 주둔하고있었으며 위만군 길림경비3려단본부와 4련대, 9련대, 비행장경비대와 일본령사관 경찰과 위만경찰을 비롯한 막대한 무력이 주둔하고있었다. 그리고 놈들은 매 성문포대와 령사관 분관정문에 물샐틈 없는 경비진을 치고있었다.

반일인민유격대와 구국군부대는 9월 2일 새벽 일제히 돈화현성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였다.

반일인민유격대는 남문으로 공격하였으며 구국군부대는 서문과 북문을 거쳐 현성으로 돌입하였다. 성안에 재빨리 돌입한 아군은 적들의 지휘처를 습격한 다음 적려단지휘부와 령사관 분관, 경찰분서를 일거에 소탕하고 적려단구분대병력에 강력한 타격을 가하였다.

혼란에 빠진 적들은 2대의 비행기를 동원하여 아군에게 기총소사를 하고 폭탄을 마구 퍼부었다. 이렇게 되자 구국군대원들속에서는 동요와 혼란이 일어났다.

이러한 정황을 구체적으로 살피고 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미 차지하고있던 계선에서 철수하여 유인전으로 적들을 소멸할데 대한 새로운 방안을 내놓으시였다.

이에 따라 반일인민유격대 부대들은 현성 서남쪽고지를, 구국군부대들은 관둔자 남쪽 무명고지를 차지하고 추격해오는 적들을 매복전으로 섬멸하였다. 불리하였던 정황은 아군에게 유리하게 전변되였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구국군부대병사들은 사기충천하여 도망치는 적들을 맹렬히 추격하였다.

이날 전투는 아군의 승리로 끝났다. 아군은 많은 적들을 살상하고 전투기술기재를 로획하였다.

돈화현성전투는 주체22(1933)년 9월 초에 있은 동녕현성전투와 그 성격과 규모에 있어서 류사하였다. 전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반제공동전선로선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뚜렷이 확증하였으며 수령님의 탁월한 령군술을 남김없이 과시하였다. 또한 반일인민유격대의 위력을 널리 시위히고 일제에게 심대한 정치군사적타격을 주었으며 인민들에게 혁명승리에 대한 굳은 신심을 안겨주었다.

특히 돈화현성전투는 조중인민의 공동투쟁력사에서 반일인민유격대가 중국인반일부대와의 협동작전으로 일본군을 타승한 첫 현성전투라는데 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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