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과 대답
여기에서
《우리는 진보적민주주의에 기초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워야 합니다.》
진보적민주주의에 기초한 자주독립국가의 건설, 이를 위한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바로 이것이
인류력사발전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과정입니다. 인민대중의 자주성이 참답게 실현되자면 사회생활에서 낡은것을 새것으로 교체하는 심각한 사회적변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새 사회제도가 자기의 목적을 실현하자면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낡은 사회의 유물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을 벌려야 합니다.
이처럼
박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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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에는 사상이
세대와 세대를 이어 계속되는 장기적인
사상의 힘으로
우리
사상을 백승의 보검으로 틀어쥐고 사상의 위력으로
우리 시대의
허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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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민의 반일애국투쟁사에는 3.1인민봉기와 6.10만세운동, 광주학생사건을 비롯하여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반대하고 민족의 자주권을 되찾기 위한 투쟁들이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습니다. 하지만 그 투쟁들은
우리 민족의 망국의 수난사는
우리
오늘
허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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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은 력사상 처음으로 사람의 본질적특성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사회력사적으로 형성되고 발전되여온 사회적속성이라는데 대하여 밝혀줍니다.
《사람은 진화의 산물이지만 사회적존재인
사람에 대한 진화론적연구방법의 부당성을 알자면 이 연구방법이 사람의 본질적특성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것을 아는것이 필요합니다.
사람에 대한 진화론적연구방법은 사람의 본질적특성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보는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진화론적연구방법은 우선 사람의 본질적특성을 생명물질일반이 가지고있는 자연적, 생물학적속성이 발전되고 완성된것이라고 보는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본질적특성과 다른 생명물질이 가진 속성의 차이를 생명물질의 발전수준의 차이로 보는 견해입니다. 사람이 장구한 진화발전의 산물이라는것은 이미 오래전에 과학에 의하여 확증된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진화의 산물이지만 사람의 본질적특성은 진화의 산물이 아닙니다.
사람에 대한 진화론적연구방법은 또한 사람의 본질적특성을 생물학적 및 사회적구성요소의 다양성과 복잡성에서 찾으려고 하는것입니다.
구성요소가 복잡한가 단순한가 하는것은 서로 대비할수 있는 물질들사이에만 제기할수 있는 문제입니다. 사람은 세계에서 유일한 사회적존재이기때문에 구성요소와 결합구조가 어떠한가 하는것을 가지고 사람과 동물을 대비할수 없습니다. 구성요소와 결합구조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가지고서는 사회적존재와 자연적존재의 근본적차이를 정확히 밝힐수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에 대한 진화론적연구방법의 부당성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람에 대한 진화론적연구방법의 부당성은;
우선 사회적존재인 사람과 자연적, 생물학적존재의 질적차이를 알수 없게 한다는데 있습니다.
또한 사람의 특출한 지위와 역할을 생명물질일반의 수준으로 떨어뜨린다는데 있습니다.
또한 사람에 대한 부르죠아적관점에 떨어지게 한다는데 있습니다.
부르죠아대변자들은 착취사회의 계급적불평등을 생물학적현상으로 설명하면서 자본주의제도를 합리화하고있습니다. 이것은 약육강식의 생존원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사회를 변호하고 인민대중에 대한 착취와 압박, 빈궁과 무권리를 《자연적》이고 응당한것으로 변호하는 반동적인 사상입니다.
사람의 본질적특성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자연이 사람에게 준것이 아니라 사회가 사람에게 준것이며 자연계에서 물려받은것이 아니라 사회력사적으로 형성되고 발전되여온 사회적속성입니다.
주체사상에 의하여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사회력사적으로 형성되고 발전되는 사회적속성이라는것이 밝혀짐으로써
박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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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적민족경제를 건설한다는것은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존하지 않고 자기 힘에 의거하여 제발로 걸어나가는 경제, 자기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며 자기 나라의 자원과 자기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발전하는 경제를 건설한다는것을 의미합니다.
자립적민족경제는 자체의 힘으로 움직이고 다방면적으로 발전되고 현대적기술로 장비된 종합적인 경제이며 자기 나라의 경제건설과 인민생활에 필요한 중공업 및 경공업제품들과 농업생산물을 기본적으로 자체로 생산하는 인민적인 경제입니다. 다시말하여 생산의 인적, 물적자원들을 자체로 보장할뿐아니라 민족국가내부에서 생산소비적련계가 완결되여 독자적으로 재생산을 실현하여 나가는 경제체계를 말합니다.
자립적민족경제를 건설하는것은 우리 시대, 사회주의의 물질기술적토대축성의 필수적요구입니다.
자립적민족경제를 건설하여야;
우선 나라의 자연부원을 합리적으로, 종합적으로 리용하여 생산력을 빨리 발전시키고 인민생활을 끊임없이 높일수 있으며 물질기술적토대를 튼튼히 쌓고 나라의 정치, 경제, 군사적위력을 강화해나갈수 있습니다.
또한 국제관계에서 정치경제적으로 완전한 자주권과 평등권을 행사할수 있으며 반제자주력량을 강화하는데 이바지할수 있습니다.
특히 지난날 제국주의의 지배와 략탈로 하여 경제기술적으로 뒤떨어졌던 나라들에서 자립적민족경제를 건설하는것은 사활적인 문제로 나섭니다. 이 나라들에서는 자립적민족경제를 건설하여야 제국주의자들의 경제적예속과 략탈에서 완전히 벗어날수 있으며 자주의 길로 힘차게 전진해나갈수 있습니다.
자립적민족경제건설에 관한 주체의 경제리론은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성실현의 요구에 맞게 나라의 물질기술적토대를 축성하여나갈수 있는 가장 옳바른 길을 밝혀줍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자립적민족경제의 튼튼한 토대가 마련된것으로 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정치에서 자주, 국방에서 자위가 물질적으로 확고히 담보되고있으며 우리 인민은 국제무대에서 자주권을 원만히 행사해나갈수 있게 되였습니다.
허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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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6(1927)년 1월 17일 길림육문중학교 2학년에 편입하신
《우리가 대중의
농민들, 인민들속에 들어가 계몽활동을 진행하는것은 당시 하나의 사회적풍조로 되여있었습니다. 그러나 계몽활동에서 중심을 이룬것은 문맹퇴치와 농촌의 생활환경을 위생적으로 개조하는것이였습니다. 1926년 여름 《조선일보》사가 방학이 되여 고향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로 무어 농촌으로 내려보낸 계몽대는 신문사에서 만들어준 조선어교본을 가지고 문맹퇴치사업을 하였으며 당시 기독교청년회 성원들은 료리법의 개선운동과 우물을 깨끗이 거두는 운동으로부터 시작하여 양계, 양잠법과 당국이 발행한 증명서, 신청서의 사용법에 이르기까지 농촌주민들을 근대적생활에로 안내하고 유도하기 위한 활동들을 벌렸습니다.
이것은 인민대중을 우매하고 미개한 계몽대상으로만 보아오던
1920년대 후반기 일제는 우리 나라에 대한 식민지적폭압과 략탈을 그 어느때보다도 강화하고있었으며 만주침략을 위한 준비를 더욱 로골화하고있었습니다.
1925년에 조직되였던 조선공산당은 《령도권》쟁탈을 위한 종파분자들의 파벌싸움으로 자기의 존재를 마치였으며 민족주의자들은 《통합》의 미명하에 모여앉기는 하였으나 공리공담으로 세월을 보내고있었습니다.
이러한 정세와 당시의 현실은 모든
《민족의
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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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제청년동맹은
그리고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은
- 먼저 반제청년동맹과 공청의 호상관계에 관한 문제입니다.
반제청년동맹과 공청은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려는 애국청년들로 무어진 비합법적혁명조직이라는데서 공통점을 가집니다.
반제청년동맹과 공청은 결성되게 된 취지와 방법에서 일련의 차이점을 가집니다.
반제청년동맹은 타도제국주의동맹이 확대되고 여기에 광범한 청년들이 망라됨에 따라 《ㅌ.ㄷ》를 보다 대중적조직으로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으로부터 출발하여 결성된 조직으로서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개편하는 방법으로 조직되였습니다.
그리고 공청은 날로 늘어나는 대중조직들을 통일적으로 지도하고 이끌어나가야 할 전위조직의 필요성으로부터 결성된 조직으로서 반제청년동맹의 핵심성원들을 골간으로 하고 여러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은 광범한 반일대중단체들에 대한 통일적인 지도를 보장하며 당조직이 나올 때까지 조선혁명전반에 대한 령도에서 전위적역할을 한 조직이였습니다.
공청의 결성은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선봉대로서 조선에서 진정한
- 다음으로 투쟁강령과 규약에 관한 문제입니다.
반제청년동맹과 공청은 투쟁강령에서 일치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볼 때 반제청년동맹은 《ㅌ.ㄷ》의 구호를 그대로 내세우고 그 강령을 그대로 계승하고있었는데 일제를 타도하고 조선의 해방과 독립을 달성할것을 당면과업으로 그리고 조선에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며 나아가서 모든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세계에 공산주의를 건설하는것을 최종목적으로 규제하였습니다.
그리고 공청은 반제민족해방과 공산주의를 위하여 투쟁하는
이처럼 두 조직은 다같이 광범한 반일대중을 의식화, 조직화하고 그들을 반일투쟁에로 불러일으켜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는것을 자기의 투쟁강령으로 하고있었습니다.
규약에서는 조직의 구성에서 차이가 있었는데 반제청년동맹조직의 기본구성은 조선청년들이였으나 반제적립장이 강한 중국청년들도 망라되였다면 공청은 반제청년동맹의 핵심들을 비롯한 조선의 청년공산주의자들로 구성되여있었습니다.
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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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는 오랜 력사적과정에 인민대중자신이 창작하여 일상생활에서 불러온 노래입니다. 인민가요 또는 인민창작가요라고도 합니다. 민요는 매개 나라와 민족의 인민음악, 민속음악의 대표자입니다.
《민요는 매개 인민의 고유한
매개 나라의 전통적인 민족음악에서 기본은 민요입니다.
민요는 민족음악의 정수로서 민족음악의 우수한 특징을 집중적으로 체현하고있습니다. 매개 나라 민요의 종류와 형식은 서로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로동민요, 서정민요, 풍자민요, 세태민요, 풍속민요, 륜무민요(륜무가) 등이 중심을 이룹니다.
먼 옛날부터 우리 인민들은 실로 다양하고 풍부한 민요들을 창조하여왔습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우리 인민들속에서 널리 불리우며 전해져온 조선민요에는 우리 인민의
우리 나라 민요종류에서 기본적이며 압도적인 자리를 차지하는것은 근로인민들의 로동과정과 련결된 로동민요와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체험과정에서 형성된 내면세계를 표현한 서정민요입니다. 그밖에 민속놀이에서 집단적으로 춤을 추면서 부르는 륜무가(애국적주제의 륜무가도 있다.)와 풍자민요, 서사민요 등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지난날 조선민요는 지역에 따라 크게는 서도민요, 경기민요, 남도민요 등으로 분류하였습니다.
서도민요는 평안도, 황해도지방의 민요로서 우리 민요에서 주되는 자리를 차지합니다. 일반적으로 선률이 밝고 우아하며 유순하고 류창하면서도 명랑하고 약동적인 정서가 특징적입니다. 대표적인 서도민요로는 《양산도》, 《도라지타령》, 《룡강기나리》, 《방아타령》, 《구녕변가》 등을 들수 있습니다. 남도민요로는 《강강수월래》, 《물레타령》, 《흥타령》, 《새타령》, 《까투리타령》, 《진도아리랑》, 《경상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영천아리랑》, 《쾌지나 칭칭나네》, 《옹헤야》 등을 들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강원도, 함경도지방에서 나와 많이 알려진 민요로는 《강원도아리랑》, 《회양닐리리》, 《배노래》, 《어랑타령》(《신고산타령》), 《풀무타령》, 《돈돌라리》, 《흘라리》 등을 들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 민요가운데는 또한 일제의 조선강점시기
우리 민족음악의 우수한 특징을 집중적으로 체현하고있는 조선민요는 지난날 일제침략자들의 야만적인 민족문화말살정책하에서 무참히 짓밟혀 혹심한 피해를 받았으며 수많이 인멸되였습니다. 그러나 해방후
오늘 우리 나라에서 민요는 당의 시종일관한 문예방침에 따라 전통적인 민족음악의 기본으로 널리 장려되고있으며 시대의 요구와 우리 인민의 현대적미감에 맞게 전면적으로 재창조, 재형상되면서 더욱 아름답게 꽃펴나고있습니다. 그와 함께 민요를 발전시킨 《그네뛰는 처녀》, 《모란봉》, 《소방울소리》, 《해당화》, 《바다의 노래》, 《직동령의 승리방아》, 《천하절승 묘향산》, 《바다만풍가》 등 새로운 민요풍의 노래들이 많이 창작되고있습니다.
번영하는 로동당시대에 와서 재창조, 재형상된 민요들과 새로 창작된 민요풍의 노래들은 주체적음악예술의 창조발전과 우리 인민이 조선민족의 우수한
김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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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조선혁명의 성격을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라고 규정한것은 우리 나라에 조성된 계급관계와 우리
사실 세계적범위에서 식민지, 반식민지나라 인민들의 투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있던 시기까지만 하여도 사람들속에서는 식민지민족해방투쟁은 부르죠아민주주의혁명이라는 선행리론을 어길수 없는것으로 여기고있는가 하면 사회주의혁명이라고 력설하는것이 하나의 류행이였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선행한
식민지, 반식민지나라들은 그 사회계급적성격에 있어서 순수 자본주의사회나 봉건사회도 아닙니다. 이 사회에서는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유린하는 착취계급도, 착취관계도 여러가지로 존재합니다. 제국주의자들에 의하여 강요된 식민지적착취관계가 있는가 하면 봉건지주계급에 의하여 만들어진 봉건적인 착취관계가 있으며 매판자본가들에 의한 자본주의적착취관계도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식민지, 반식민지나라들에서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을 봉건세력을 타파하기 위한 부르죠아혁명이나 착취계급을 종국적으로 청산하기 위한 사회주의혁명으로 전개할수는 없습니다.
당시 우리 나라는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통치로 말미암아 정상적인 자본주의발전의 길이 억제되고 봉건적제관계가 지배적인 식민지반봉건사회였습니다.
우리 나라가 식민지반봉건사회였던것만큼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짓부시기 위한 반제혁명의 과업과 봉건적제관계를 청산하기 위한 반봉건혁명의 과업을 다같이 수행하는것은 우리 인민의 절박한 요구였으며 따라서 그것은 서로 뗄수 없이 련관되여있는 조선혁명의 기본임무로 나섰습니다.
반제민족해방혁명의 과업이 제국주의식민지통치를 철저히 종식시키고
조선혁명의 이러한 기본임무의 견지에서 볼 때 이
특히 그것은 우리 나라에서의
이것은 로동계급의
이처럼 조선혁명의 성격을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으로 규정하신것은
박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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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후 종합대학 새 교사건설이 한창 벌어지고있던 어느날 어리신
오랜 력사를 자랑하는 모스크바종합대학에서는 당시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서 모여온 수많은 고위정객들의 자녀들과 수재들이 공부하고있었습니다. 안내하던 그 나라의 일군은 대학의 력사와 규모를 소개하면서 앞으로
이날
김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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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주체65(1976)년 4월 한 일군이
어찌보면 무엄한 물음이였지만
불의의 되물으심에 일군은 잠시 당황해났으나 제나름대로 말씀드리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령도예술의 높이에
그의 대답을 들으신
이것이
김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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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사회는 인민대중이 국가와 사회의 참다운 주인이 되여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누리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사회에서도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사상, 기술,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ㅡ 3대혁명은 사회주의건설의 전기간 수행하여야 할 계속혁명의 과업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높은 단계의
인민대중의 자주성은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하고 사회주의제도가 수립되였다고 하여 완전히 실현되지 않습니다.
사회주의제도가 수립되면
착취사회의 유물인 사상, 기술, 문화의 락후성은 사회주의사회에서 인민대중의 자주성실현을 저애하는 기본요인입니다.
착취와 압박에서 해방된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자면 사회주의제도가 수립된 다음에도 낡은 사회의 유물을 청산하기 위한
ㅡ 3대혁명은 사회주의사회에서 인민대중이 자기의 자주적요구를 실현해나가는 기본방식입니다.
3대혁명은 우선 사회주의제도의 본성에 맞는
사회주의제도는 인민대중을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 내세우고 인민대중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가장 선진적인 사회제도이며 사람들사이의 단결과 협조가 사회관계의 기본으로 되고있는 사회제도입니다.
사회주의사회에서 낡은 사회의 유물을 없애는 투쟁은 어디까지나 사람들을 교양하여 개조하는 방법으로 하여야 하며 새것을 창조하여 낡은것을 없애는 방법으로 하여야 합니다.
3대혁명은 또한 인민대중의 의사에 맞는
집단주의를 본성적요구로 하는 인민대중은 사람들사이의 단결과 협조를 강화하면서 하나의 사회정치적생명체로 결합되여 서로 돕고 이끌면서 살며 발전할것을 요구합니다.
사회주의사회에서 사회주의제도의 본성과 인민대중의 의사를 무시하고 낡은 사회의 유물을 없애는 투쟁을 착취계급과 착취제도를 반대하는 투쟁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면 인민대중의 통일단결을 약화시키고 그들의
그러므로 사회주의사회에서는 3대혁명의 방식으로
ㅡ 3대혁명은 사상, 기술, 문화분야에서 낡은 사회의 유물을 청산하고 새로운 사회주의사상과 기술, 문화를 창조하여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기 위한 투쟁입니다.
○ 사상혁명은 사람들의 머리속에 남아있는 낡은 사상을 뿌리빼고 그들을 자주적인 사상의식, 사회주의사상으로 무장시키며
사상혁명은 우선 사람들의 머리속에 남아있는 낡은 사상을 뿌리빼고 그들을 사회주의사상으로 무장시키기 위한
사상혁명은 또한 근로자들의
○ 기술혁명은 생산력을 발전시켜 인민들의 물질적복리를 증진시키며 로동의 본질적차이를 없애고 근로자들을 힘든 로동에서 해방하기 위한 사업입니다.
기술혁명은 우선 생산력을 발전시켜 인민들의 물질적복리를 증진시키기 위한 사업입니다.
기술혁명은 또한 로동의 본질적차이를 없애고 근로자들을 힘든 로동에서 해방하기 위한 사업입니다.
○ 문화혁명은 사람들을 낡은 문화의 구속에서 해방하고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사회주의문화를 창조하여 모든 사람들이 사회주의적인 문화생활을 누리도록 하기 위한 사업입니다.
문화혁명은 우선 낡은 사회가 남겨놓은 문화적락후성을 없애고 사람들을 깊은 지식과 높은 문화적소양을 가진 전면적으로 발전된
문화혁명은 또한 사회주의적인 새 문화를 창조하여 사람들의 문화적수요를 충족시키는 사업입니다.
이와 같이 인민대중의 자주위업, 사회주의위업을 완성하려면 사회주의제도가 선 다음에도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수행하여야 합니다.
사회주의사회에서의
박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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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아동병원은 우리 어린이들과 청소년학생들을 제일로 사랑하시는
옥류아동병원에는 일반병원과는 달리 병원에 입원한 유치원생들과 학생들이 평시와 꼭같이 수업을 받을수 있도록 교실들이 꾸려져있습니다.
병원의 교육교양과에는 10여명의 교원들이 소속되여있는데 2층에 유치원교양실, 소학교실, 중학교실로 나누어 각기 자기의 교실을 가지고있으며 교실마다에는 책상, 의자를 비롯한 교구비품들과 교재와 학용품들이 아이들의 나이와 심리적특성에 맞게 색갈별로, 모양별로 특색있게 갖추어져있습니다.
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대다수가 회복기에 들어선 환자들인데 그들은 여기에서 입원하기 전과 다름없이 국어, 수학, 외국어 등 여러 과목들에 대한 수업을 해당 교원들로부터 받으며 공부를 하고있습니다.
움직이기 힘든 아이들을 위해서는 교원이 직접 입원실들에 찾아가 개별수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image |reader/2/6EEE118716EB7D6DD744792B51EB5380204F62AB/1.jpg|]
세상에는 발전과 문명을 자랑하는 나라도 많고 아동병원을 가지고있는 나라도 많지만 병원안에 학교가 있어 무상치료와 무료교육을 결합시킨 나라는 오직 우리 공화국밖에 없을것입니다. 평민의 자식들은 병원문턱을 넘어설 엄두조차 낼수 없고 엄청난 치료비에 병든자식을 가진 부모들이 가슴을 조이게 되는것이 례상사로 되고있는 오늘의 세계에서 병원안에서 무상치료, 무료교육의 혜택을 받으며 공부하는 우리 나라는 세상에서 으뜸입니다.
진정 옥류아동병원은
백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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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동해에 위치하고있는 독도가 유럽인들에게 처음으로 알려지게 된것은 1849년이였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연료와 등잔용으로 고래기름을 사용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고래잡이가 성행하였습니다. 그 앞장에는 프랑스의 《리앙쿠르》호도 있었습니다.
《리앙쿠르》호는 1847년에 건조된 360t급 배로서 고래잡이를 전용으로 하는 포경선이였습니다.
포경선 《리앙쿠르》호가 고래잡이를 위하여 닻을 올린것은 배가 건조된 해인 1847년 10월이였습니다.
1848년 1월경에 태평양으로 진출한 《리앙쿠르》호는 고래잡이를 하며 동아시아해협쪽으로 향하였습니다.
《리앙쿠르》호는 그후 중국남해를 지나 1849년 1월 24일부터 조선해협을 통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조선동해에 들어선 《리앙쿠르》호는 1월 27일 울릉도를 향하여 항행하던중 동쪽방향에서 《큰 암석》하나를 발견하게 되였습니다.
바로 이 《큰 암석》이 다름아닌 독도였습니다.
포경선《리앙쿠르》호가 《발견》한 울릉도의 부속섬인 《큰 암석》은 그후 프랑스에서 제작된 해도와 수로지 등에 《리앙쿠르》섬으로 표기되여 유럽지역에 알려지게 되였습니다.
이로하여 독도는 6세기초이래 우산도, 삼봉도, 석도, 독도 등으로 불리운 우리 나라 고유의 명칭과 함께 서반구에서는 《리앙쿠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였습니다.
김국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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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에 우리 공화국은 안팎의 분렬주의세력의 책동이 악랄하게 감행되는 복잡한 속에서도 년대와 세기를 이어
우리 공화국은 앞으로도
박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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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반 민주주의적개혁은 악독한 제국주의잔재세력과 근로인민대중의 피땀을 짜내던 봉건세력을 청산하기 위한 치렬한 계급투쟁이며 정치와 경제, 사상과 문화를 비롯한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심각한 사회혁명입니다. 제반 민주개혁의 과업은 그 폭과 심도, 의의와 중요성에 있어서 다른 그 어떤
그런것만큼 제반 민주주의적개혁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서는 이 거창한 사회적변혁과정의 합법칙적요구에 맞게 그 실현을 위한 전제조건들이 충분히 갖추어져야 합니다.
ㅡ 제반 민주주의적개혁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근본전제는 정권기관을 튼튼히 꾸리고 그 독재기능을 강화하는것입니다.
제국주의잔재세력과 그 식민지통치기구의 잔재를 소탕하고 봉건세력과 봉건적소유관계를 청산하는것은 주관적욕망으로 해결될수 있는것이 아니며 또 법령을 발포한다고 실현되는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온갖 반동들의 악랄한 반항과 도전을 물리치기 위한 치렬한 계급투쟁을 동반하는 력사적인 투쟁입니다.
력사적경험과 해방후 우리 나라에 조성된 정치정세는 적대계급의 반항을 진압할수 있는 강력한 권력기관과 독재기능이 없이는 어떠한 계급도 진보적인 개혁을 실시할수 없다는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
물론 민족해방투쟁을 통하여 나라의 정치적독립을 이룩하면 제국주의식민지예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근본적인 사회적조건이 마련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식민지, 반식민지로 있던 나라 인민들이 제국주의식민지예속의 멍에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 아닙니다. 제국주의식민지통치기구를 짓부신 다음에도 그 잔재세력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 남아 나라의 자주독립과 민주주의적발전을 가로막는 반혁명의 주되는 세력으로 되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제국주의의 식민지적예속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하여서는
력사는 이미
제국주의잔재세력을 청산하기 위한 독재기능에서 기본은 제국주의식민지통치를 적극 옹호하고 그 주되는 지반으로 되여있던 반동관료배, 예속자본가, 반동지주, 민족반역자들을 철저히 숙청하고 그들이 그 어디에도 발붙일 틈을 주지 않는것입니다.
그리고 제국주의식민주의자들이 만들어놓은 일체 법률과 규정들을 철페하고 낡은 정치제도와 사법제도, 교육문화제도를 청산한 기초우에서 광범한 인민대중의 리익을 옹호하는 새 법률과 규정들을 만들어 국가건설의 민주주의적기틀을 확립하여야 합니다.
이와 함께 사람들의 생활속에 뿌리깊이 남아있는 제국주의사상잔재와 썩어빠진 생활풍조를 철저히 청산하기 위한 독재기능도 강화하여야 합니다.
ㅡ 제반 민주주의적개혁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근본전제는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의 핵심력량인 로동계급과 농민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광범한 인민대중을 각성시켜 민주주의혁명수행에로 힘있게 조직동원하는것입니다.
제국주의식민지통치기구의 잔재와 봉건적소유관계를 청산하고 민주주의적개혁을 실시하는것은 식민지적 및 봉건적예속에서 신음하던 각계각층의 인민대중을 해방하기 위한 사업인것만큼 그것은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군중이 떨쳐나서야만 승리할수 있는 사회적변혁입니다. 그러므로 온갖 적대세력들의 반항을 물리치고 민주주의적개혁을 힘있게 추진시키기 위한 가장 옳바른 길은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광범한 인민대중을 사상적으로 각성시키고 조직적으로 묶어세워 그들의
특히
이와 함께 여러 정당, 단체들과의 통일전선을 강화하여 각계각층의 광범한 군중이 로동자, 농민들과 함께 민주주의적개혁수행에 적극 참가하게 함으로써 반혁명세력을 철저히 고립시키고
이처럼 제반 민주주의적개혁에 관한 주체의 리론은 식민지반봉건사회의 력사적처지에 있는 세계 여러 나라 인민들의 지향과
박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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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위인사의 갈피를 헤쳐보느라면 건국의 초행길을 걸으며 나라를 일떠세우고 민족의 운명을 구원한 업적으로 하여 《건국의 시조》,
그러나
이 호칭들에는 주체혁명위업완성과 인류자주위업실현에 불멸의 업적을 쌓으신 우리
이 땅우의 모든것은
참으로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천만년세월이 흘러도
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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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은 사람을 위주로 하여 철학의 근본문제를 새롭게 제기하고 사람이 모든것의 주인이며 모든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원리를 밝혔습니다.
사람이 모든것의 주인이며 모든것을 결정한다는 사람중심의 철학적원리는 주체사상의 근본원리입니다.
ㅡ 사람중심의 철학적원리는
주체사상은 사람중심의 철학적원리에 기초하여 세계의 본질과 그 변화발전의 합법칙성, 사회의 본질과 사회적운동의 합법칙성을 해명하였으며
ㅡ 사람중심의 철학적원리는
주체의
ㅡ 사람중심의 철학적원리는
주체의 령도방법은
이와 같이 사람이 모든것의 주인이며 모든것을 결정한다는 사람중심의 철학적원리는
박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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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사회에서 전인민적소유는 전사회적범위에서 이루어진 사회주의근로자들의 집단적소유를 말하며 협동적소유는 개별적협동단체범위에서 이루어진 근로자들의 집단적소유를 말합니다.
사회주의사회에서 전인민적소유와 협동적소유는 일정한 차이점을 가지고있습니다.
- 소유의 사회화수준이 서로 다릅니다.
전인민적소유에서는 생산수단이 전국가적범위에서 사회화되여있다면 협동적소유에서는 개별적협동단체범위안에서 사회화되여있습니다.
- 소유권의 대상이 서로 다릅니다.
소유권의 대상은 해당 소유의 범위에 속하는 생산수단에 국한됩니다.
전인민적소유는 소유권의 대상에서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협동적소유는 소유권의 대상이 토지, 부림짐승, 농기구, 고기배, 건물과 중소공장, 기업소 등 협동경리운영에 직접 리용되는것에 국한됩니다.
- 생산물의 처리방식이 서로 다릅니다.
생산물의 처리권은 소유권의 범위에서 실현됩니다.
전인민적소유에서는 생산물이 국가의 소유로서 국가의 관할밑에 처리되며 전체 인민의 리익을 위하여 리용됩니다.
협동적소유에서는 생산물이 개별적협동경리의 소유로서 그의 관할밑에 처리되며 협동단체성원들의 리익을 위하여 리용됩니다.
허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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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소유는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에 전인민적소유와 협동적소유의 두 형태로 존재합니다.
- 전인민적소유는 전사회적범위에서 이루어진 사회주의근로자들의 집단적소유입니다.
전인민적소유는 곧 국가적소유로 됩니다. 그것은 사회주의국가가 전체 인민의 리익에 맞게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을 행사하기때문입니다.
생산수단에 대한 전인민적소유에 기초하여 국영경리가 형성됩니다.
- 협동적소유는 개별적협동단체범위에서 이루어진 근로자들의 집단적소유입니다.
사회주의사회에서 전인민적, 국가적소유와 함께 협동적소유가 있게 되는것은 도시에 비한 농촌의 사상, 기술, 문화적락후성과 관련됩니다. 도시에 비한 농촌의 락후성은 농민들의 사상의식수준이 로동자들보다 뒤떨어지고 농업이 공업보다 물질기술적토대가 약하며 농촌주민들의 문화수준이 도시주민들보다 낮은데서 표현됩니다. 사상, 기술, 문화분야에서 도시에 비한 농촌의 이러한 락후성으로 하여 전인민적소유가 지배하는 공업과는 달리 농업에서는 협동적소유가 지배적인 형태로 됩니다. 협동적소유는 과도기에 농민들의 사상의식수준과 문화수준, 농촌에서의 생산력발전수준에 맞는 소유형태입니다.
허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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