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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반동들의 력사외곡책동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알고싶습니다.

《강화도조약》 서막으로 알려진 《운양》호사건에 대한 일본반동들의 외곡책동에 대해 알고싶습니다

답변 (1건)

리영남 | 김일성방송대학 |       2023-03-13

2월 27일은 일제가 지금으로부터 147년전 《강화도조약》 강압조작하고 조선에 대한 본격적인 침략의 길에 들어선 날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일제는 《강화도조약》 체결을 위한 구실을 마련하기 위하여 《운양》호사건을 도발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주권국가에 대한 불법무법의 침략행위이며 그 무엇으로써도 그 진상을 가리울수 없습니다.

《운양》호사건의 진상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본반동들은 저들의 침략목적을 가리우고 합법적인것으로 만들기 위해 엄연한 사실을 앞에 놓고도 사건이 당시 초지진을 수비하고있던 조선군사들의 《불의적인 포격》에 의하여 일어났다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력사외곡책동에 미쳐날뛰였습니다.

그중에서 일본반동들이 력사외곡책동의 중요한 수단으로 악용한 백과사전과 교과서들중에서 몇가지 자료들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일본에서 1968년에 출판된 《일본력사대사전에서는 교활하게 저들의 비법적인 침입에 대하여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강화도앞바다에 닻을 내리고 음료수를 찾던중 초지진으로부터 《불의에 포격을 받아 그에 응전》하였다는 식으로 진상을 은페시키려고 꾀하였으며 같은 해에 출판된 《일본백과대사전》(1968년)에서는 당치 않게도 비법적으로 침입한 《운양》호에 가한 초지진 수비병들의 정당한 경고사격을 《불법포격으로 날조하였습니다.

1987년에  출판한  《세계대백과사전》에서는 《운양》호사건을 《일본군함〈운양〉호가 강화도포대의 사격을 받고 함포사격을 하여 포대를 파괴한 사건》이라고 정의함으로써 흑백을 완전히 전도시켜놓았습니다.

1995년에 출판된 《고등학교교과서검정과 오늘 교과서문제의 초점》이라는 도서에서는 1992년의 《세계사》교과서에 이 사건에 대하여 《〈운양〉호가  강화도연안에서  측량을  진행하고  함장이 뽀트로 상륙하려고 하였다. 그때 강화도의 포대로부터 포격하였기때문에 함포사격을 가하고 해병을 상륙시켜 포대를 점령하였다.》라고 씌여져있다고 《운양》호의 침입을 정당화하였습니다.

일본의 《전쟁책임연구》(제72호 2011년)잡지에 실린 글에도 《지금껏 일본에서는 급수를 리유로 수역(강화도수역)에 들어간 〈운양〉호에 불법포격을 가한 조선측의 책임이 강조되여왔다.》고 씌여있습니다.

이처럼 일본반동들은 사건이 일어나서 140여년이 흐르는 동안 줄곧 《운양》호의 침입이 음료수를 보충하기 위한것이므로 문제시될것이 없고 반대로 자기 령해를 지키려는 우리 군사들의 정정당당한 경고사격은 《불법포격》이며 그로 하여 사건이 발생하게 되였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하고있습니다. 
 일본반동들이 지독하게  《운양》호사건의 진상을 은페하고 외곡하는 기본목적이 무엇인가 하는것입니다.

그것은 우선 《운양》호의 침입을 정당화하고 제놈들이 감행한 파괴와 략탈, 살인방화가 마치도 《정당방위》, 《응당한 보복》인듯 한 인식을 주자는데 있습니다. 또한 《운양》호사건이 직접적인 동기가 되여 강압적으로 체결된 1876년의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를 미화분식하며 나아가서 우리 나라의 근대적발전을 백방으로 억제한 죄과를 가리우고 반대로 조선에서의 근대문명은 일본이 조선을 개항한 이후 저들의 영향밑에 이루어졌다는 황당한 궤변을 합리화하려는데 있습니다.

세월은 흘렀어도 일본반동들의 침략야망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죄많은 행적을 력사의 흑막속에 묻어버리고 과거범죄를 합리화, 정당화하여 군국주의부활과 재침의 발판을 마련하자는것이 일본반동들이 추구하는 목적이며 그 연장선우에서 빚어진것이 다름아닌 《운양》호사건에 대한 외곡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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