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치마저고리는 다른 민족녀성들의 옷차림과 구별되는 우리 나라 녀성들의 가장 중요한 외적표징의 하나로 되며 우리 민족옷가운데서 기본으로 됩니다.
조선치마저고리는 오직 조선민족, 우리 녀성들만이 입고 다니는 고유한 옷입니다.
그 유래를 보면 웃옷을 가리키는 저고리는 삼국시기에는 《유》,《삼》,《위해》로, 고려시기에는 새롭게 《의대》라고 표기되여왔습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와서 저고리는 《적고리》, 《소오자》, 《포오》, 《삼아》, 《소대》, 《적삼》등 여러가지로 불리워왔으나 조선봉건왕조중엽말에 와서는 고유한 조선어였던 《적고리》가 웃옷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고착되면서 널리 불리워지게 되였습니다. 《세종실록》권92년 (1420년) 9월 무인조에 《홍단자적고리》라는 첫 기록이 있으며 그후 1493년에 출판된 《악학궤법》제9녀기복식조와 그밖에 기록들에도 《적고리》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적고리라는 표현이 1420년에 처음 있었다고 하여 이때에 비로소 생긴 이름이라고 볼수 없으며 그 이전시기부터 인민들속에서 통용되고있었다고 보아야 할것입니다.
그후 적고리라는 말은 저고리라는 말로 고착되여 불리워지게 되였습니다.
적고리와 함께 조선녀자옷의 아름답고 우아함을 특징짓는 전통적인 민족옷인 치마는 우리 나라 녀자 아래옷을 가리키는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삼국시기, 발해, 후기신라시기를 거쳐 고려시기에 치마를 《군》, 《상》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조선봉건왕조초기에도 치마는 그전 시기와 같이 표기하였으나 15세기부터는 《적미》라고도 표현하였습니다. 1527년에 편찬된 《훈몽자회》에는 앞치마를 《쵸마》라고 표기하였는데 이것이 《치마》라는 우리말표기의 첫 기록입니다.
력사적으로 치마는 각이하게 표기되고 불리워왔으나 16세기이후부터는 《치마》라고 불리워지게 되였습니다.
우리 녀성들이 즐겨입는 치마저고리는 이렇게 력사적인 오랜 전통을 가지고있습니다.
우리 겨레는 오랜 력사와 전통을 가지고있는 민족의 넋이 깃든 조선치마저고리에 대하여 잘 알고 그 어디에 가든 민족전통을 적극 살려나가야 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