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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 조선인민에게 식민지노예의 비참한 운명을 강요한 일제의 범죄적책동가운데는 우리 나라의 식민지지배권확립을 위해 《고문정치》를 실시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미래 [ 중국 단동 - 학생 ] 2021-04-26 16:48:48
최영송 | 김일성방송대학 |       2021-04-28 11:26:04

《고문정치》는 제국주의국가들이 식민지 및 약소국가들에 저들의 침략정책을 직접 담당수행할수 있는자들을 《고문》의 명목으로 파견하여 그 나라의 대내외정책을 조종하는 식민지예속화정책을 말합니다.

20세기초에 조선에서 감행된 일제의 《고문정치》는 《친선》, 《협조》를 표방하면서 우리 나라에 대한 식민지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한 교활한 침략책동이였습니다.

일제는 1904년 2월 23일에 《조일 두나라사이에 영원한 친선관계유지》, 《동양평화》, 《조선의 독립과 령토의 보존》 등 허위와 기만으로 일관된 《한일의정서》를 조선봉건정부에 강요하였으며 이를 강압적으로 체결한 후 그해 6월 11일에는 이른바 《제국의 대조선방침》을 결정하였습니다.

일제침략자들은 이에 기초하여 조선에 대한 지배를 실현할 목적밑에 8월 22일 또다시 새로운 침략적조약인 《한일협정서》라는것을 조선봉건정부에 강요하고 그것을 구실로 《고문정치》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한일협정서》에는 조선봉건정부는 대일본정부가 추천한 일본인 1명을 재정고문으로 그리고 외국인 1명을 외교고문으로 삼아 그의 의견을 들어 재정사무와 외교와 관련되는 중요한 사무를 시행한다는것이 규제되였습니다. 또한 조선봉건정부는 외국과의 조약체결, 기타 중요한 외교문제 즉 외국인에 대한 특권양여와 계약 등의 문제처리에 대해서 미리 대일본정부와 상의할것 등의 굴욕적이며 예속적인 내용들도 규제되였습니다.

이 조약에 따라 일제는 조선봉건정부의 《재정고문》으로 일본대장성 주세국장 메가다를, 《외교고문》으로 일본외무성 고문인 미국인 스티븐스를, 그밖에 《경찰고문》으로 일본경시청 경시 마루야마를, 《궁내부고문》으로 조선주재 일본공사 가또를, 《군부고문》으로 륙군중좌 노쯔를 각각 들여앉혔습니다. 이밖에도 《경무고문》, 《학부고문》 등도 파견하였습니다. 

이자들은 조선봉건정부의 각부에 대하여 명령권을 행사할수 있었을뿐아니라 직접 정책을 작성집행할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있었습니다. 이밖에도 일제는 《직무의 범위가 크기때문에 협조자가 필요하다》는 구실밑에 서울에 《고문부》를 내오고 대구, 전주, 평양 등지에 《고문지부》를 내왔으며 다른 지방들에는 《고문분서》를 설치하고 수많은 침략자들을 끌어들이였습니다.

이렇게 되여 조선에 대한 일제의 악명높은 《고문정치》가 실시되였으며 조선봉건정부는 정책수행에서 독자성을 잃고 독립국가로서의 기능을 수행할수 없게 되였습니다.

당시 일제가 우리 나라에 들여보낸 고문들은 조선봉건정부안에서 특권적지위와 권한을 차지하고 지배자의 행세를 악랄하게 감행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에 대한 일제의 《고문정치》는 본질에 있어서 고문의 탈을 쓴 침략자들을 조선봉건정부의 각 부안에 박아넣고 우리 나라를 완전강점하기 위한 발판을 닦은 교활한 책동이였습니다.

이렇게 일제는 조선봉건정부의 실권을 장악하고 1906년 2월 1일 일제식민지의 첫 통치기관인 《통감부》를 설치할 때까지 악명높은 《고문정치》를 악랄하게 감행하면서 조선을 완전강점하기 위한 지반을 닦고 종당에는 우리 나라를 침략한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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