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홍왜회의》가 《조선혁명의 주체적립장을 고수한 회의》라는 인식이 잘 듭니다. 회의소집 경위랄가,,, 이에 대한 호기심을 식힐수가 없습니다. 기대합니다
장청 [ 카나다 - 학생 ] 2020-10-15 12:08:28
김충일 | 김일성방송대학 |       2020-10-17 16:51:13

《우리민족강당》홈페지를 통해 아시다싶이 주체24(1935)년 2월 24일부터 3월 3일까지 진행된 다홍왜회의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자주의 기치를 들고 조선혁명의 주체로선을 옹호고수하기 위하여 벌린 대사상전이였습니다.

다홍왜회의가 진행될 당시 동만의 각급 당조직들에서는 반《민생단》투쟁이 극좌적으로 전개되였고 그로 하여 수많은 견실한 조선공산주의자들이 《민생단》으로 몰려 억울하게 처형당하는 참사까지 빚어졌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공식적인 장소에서 공식적인 결정이 채택되여야만 이 문제를 해결할수 있다고 보시고 반《민생단》투쟁을 바로잡기 위한 회의를 동만당지도부에 제기하시였습니다.

한편 공청만주성위 순시원의 자격으로 중국 간도지방의 사업을 료해하러 내려왔던 사람이 동만지방의 조선사람 70%가 《민생단》이라는 허황한 보고를 성당에 제출한것과 관련하여 만주성당에서 파견한 순시원은 수습책을 강구하기 위해 회의소집을 발기하였습니다.

그때 조선인민혁명군 지휘성원들과 대원들은 한결같이 위대한 수령님께 회의에 가시지 말것을 간청하였습니다.

그것은 《숙반》을 주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인정사정없는 돌심장들인가를 잘 알고있었기때문이였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 있어서 이 길은 결코 외면할수도 없고 에돌수도 없는 길이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류하는 지휘성원들과 대원들에게 이 길은 죽든지 살든지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길이다, 내가 만일 다홍왜로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멸을 가져올뿐이다, 우리앞에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운명을 구원하고 조선혁명을 위기에서 구원할수 있는 가장 심각한 기회가 왔다, 대결은 피할수 없고 흑백은 반드시 갈라져야 한다고 단호히 말씀하시며 결연히 대결장에 나서시였습니다.

후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 자신께서는 하루 세끼씩 콩죽을 먹으면서 주야를 가리지 않고 론쟁을 하다나니 뼈만 남은 몸이 되였다고, 하루종일 회의를 하고 밤늦게 숙소에 돌아와 앓다가도 아침이 되면 또 론쟁마당에 나가야 하였다고 하시면서 단독으로 여러명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나에게 결석이라는것은 있을수 없었고 기권이라는것도 있을수 없었다, 나는 수천수만명에 달하는 간도의 조선공산주의자들과 인민들의 운명을 위해서 싫건좋건 론쟁마당에 뛰여들지 않으면 안되였다고 회고하시였습니다.

이처럼 다홍왜회의는 견결한 자주정신과 열화같은 애국정신으로 주체의 길을 과감히 개척해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업적을 길이 전하는것으로 하여 우리 혁명력사의 갈피에 깊이 새겨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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