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절을 맞이한 평양초등학원은 이른아침부터 흥성거렸다. 시당위원회일군들도 찾아오고 취사원들도 푸짐한 음식을 차려놓고 원아들을 축하할 준비를 서두르는데 줄곧 정문쪽을 바라보던 원장은 이내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기다리던 주인공이 드디여 나타난것이다.
온 한해 명절날, 기쁜 날, 자랑많은 날이면 어김없이 원아들을 찾아오는 고마운 녀인, 그가 바로 평양초등학원과 평양중등학원 교직원들로부터 애국자어머니로 불리우는 대동강구역편의봉사사업소 소룡사진관 사진사 리춘숙동무이다.
원아들이 사진사어머니라 부르며 달려와 안기자 춘숙은 저도모르게 얼굴이 붉어만졌다.
어머니로 불리우자면 너무나도 멀었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이런 생각이 갈마들수록
희천!
문득 그의 눈앞에는 우리 생활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 아름다운
* *
대동강구역편의봉사사업소 당일군으로부터 이 말을 듣는 순간 춘숙은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희천발전소건설장에 가서 군인건설자들의 영예사진을 찍어준 일밖에 없는
《사람들이 사회와 집단, 당과 조국앞에 지닌 도덕적의무와 책임감을 깊이 자각할 때 순결한 량심과 의리로 당과
사진사라면 아름다운 생활, 아름다운
수도시민들의 즐겁고 행복한 모습만을 사진기렌즈에 담던 그가 들끓는 희천전역에 마음이 쏠리기 시작한 때부터 춘숙의 생활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 *
희천으로 향한 렬차에 오른 한 녀인은 이르는 곳마다에서 《단속》되여 진땀을 빼지 않으면 안되였다.
《아주머니, 렬차에 많은 짐을 가지고올라 손님들에게 불편을 주어서야 되겠소.》
렬차승무원의 말이였다.
사람들은 미처 알수 없었다. 그가 바로 희천발전소건설장에 천컬레나 되는 두툼한 솜장갑을 마련해가지고 떠난 평양의 사진사라는것을.
한해에도 여러차례나 멀고 험한 희천발전소건설장을 찾고 또 찾으신
뒤늦게야 사연을 알게 된 렬차승무원들은 희천까지 편안히 갈수 있게 성심성의껏 도와주었다. 군인건설자들이 일하는 현지에 도착하여 솜장갑을 안겨주고 돌아서자니 허전함을 금할수 없었다. 제대명령을 받고도 발전소건설장을 뜨지 않는 군인건설자들, 뜻하지 않게 몸은 상했지만 마이크를 틀어쥐고 희천전역의 용사들을 고무하는 병사시인의 모습을 뒤에 두고 평양길에 오르자니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혹 필요할지도 몰라 가지고 떠났던 사진기에 눈길을 주는 순간 춘숙은 그것이
희천땅에 새로 나타난 평양녀인은 근 한달동안 건설장에 눌러앉아 발이 닿는 곳마다에서 군인건설자들의 영예사진을 찍는 일감을 스스로 맡아나섰다. 춘숙은 땅우에서만이 아니라 물길굴에서 일하는 군인건설자들의 영예사진도 찍어주고싶었다.
물길굴이 어찌나 깊고 아스라한지 일종의 공포감이 마음을 휘여잡기까지 했다. 사진을 찍을수 있는 빛조건이 가능하겠는지도 알수 없었다. 하지만 포기할수 없었다. 조국이 부르는 전구마다에 남먼저 어깨를 들이밀고 헌신하는 군인건설자들의 위훈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력사에 남기고싶은 직업적의무감이 그를 주저없이 이 길에로 떠밀었다.
물길굴속으로 깊이 들어간 춘숙은 끝끝내 군인건설자들의 영예사진을 찍어 그들에게 큰 힘과 고무를 안겨주었다. 그가 찍은 영예사진들은 전투속보판에 게시되였고 군인건설자들의 모교와 고향, 부모들의 일터에로 전해졌다. 지휘관들은 춘숙이 찾은 일감이 건설장적으로 대단히 큰 몫을 차지한다고 하면서 더없이 고마와했다.
춘숙에게 있어서 사진사라는 직업을 이때만큼 강렬히 사랑해본적은 없었다.
조국을 위해 자기를 바치는 아름다운
군인건설자들이 언제 다시 오는가고 물으면 춘숙은 《다음달 이맘때 또 오겠어요.》라고 대답하군 하였다. 이 물음은 사실 그가 자기자신에게 묻고싶은것이기도 하였다.
내가 과연 이 길을 마지막까지 갈수 있을가.
* *
행복의 기초에는 나라를 받드는 매
희천발전소건설이 끝난 후에도 그는 옥류아동병원건설장, 미래과학자거리건설장, 려명거리건설장 등 많은 건설장에로 사진봉사의 길을 쉬임없이 이어갔다.
려명거리건설이 거의 끝나갈무렵 건설장에서 뜻밖에도 한 군인건설자가 춘숙을 알아보았다. 춘숙은 자기가 사진찍은 숱한 군인건설자들의 얼굴을 다 기억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사진속의 주인공들은 오랜 나날이 흘렀어도 그를 잊지 않고있었다.
《사진사어머니를 희천발전소건설장에서 보았습니다. 나에게는 신입병사시절에 어머니가 찍어준 사진이 여러장이나 됩니다.》
이 말만으로도 춘숙은 행복했다.
《려명거리건설이 끝나면 또 어디로 가십니까.》
어제날 희천의 병사가 호기심을 안고 물었다.
《글쎄…》
춘숙은 갑자르기만 할뿐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그도 이 선택을 놓고 은근히 여러날동안 고심을 했다. 순수 사진봉사로 묵묵히 지원의 길을 걸어온 그에게 있어서 8년세월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였다.
오랜 친구도 이렇게 말했다.
《8년동안 고생을 했으면 이제는 락을 누릴 때가 되지 않았니?》
고생? …
이 말의 의미를 새길수록 생각이 깊어졌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일이라면 고생을 사서라도 하면서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친 애국자들이 나를 본다면.
고난의 행군시기 대용식품으로 끼니를 에우면서도 애국의 한마음 안고 일터를 꿋꿋이 지킨 자강도사람들을 생각한다면 고생이라는 말을 어떻게 쉽게 외울수 있으랴. 그들이
애초에 내세웠던 인생의 선택이 여기서 종착점으로 되는것은 아닌지.
춘숙의 심정을 다 알기라도 한듯 영예군인남편의 절절한 당부가 잠시나마 동요하던 그를 불러세웠다.
《내가 성한 몸이라면 건설장에 달려나가 흙 한삽이라도 뜨고싶소. 당신이 나의 몫까지 합쳐준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소.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고생도 행복으로 여길줄 아는것이 진짜애국이 아니겠소.》
이러한 때 충격적인 소식이 려명거리건설장에 전해졌다.
아이들의 멋쟁이궁전으로 훌륭히 꾸려진 평양초등학원을 찾으신
원아들생각으로 얼마나 마음쓰시였으면.
순간이나마 제 집살림 생각만을 앞세운
이때부터 그는 평양초등학원, 평양중등학원과 인연을 맺게 되였고 원아들을 위해 묵묵히 헌신의 길을 걷게 되였다.
그는 원아들의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그늘이 질세라 조선소년단입단으로부터 생일과 학원졸업식, 운동회 등 온 한해 학원을 찾아와 사진을 찍어주며 혈육의 정을 부어주었다.
그가 평양초등학원과 평양중등학원 원아들에게 뜨거운 정을 기울이며 보람찬 나날을 보내고있던 어느날 또 하나의 크나큰 영광이 안겨졌다.
하고싶어서 스스로 찾아한 작은 일, 공민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뿐인데 이렇듯 값높은 평가를 안겨주시다니.
춘숙은 해놓은 일보다 받아안는 행복이 너무도 커서 몸둘바를 몰랐다. 몇해전에는 영광스럽게도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였다.
…
대를 두고 전해갈 무한한 영광을 심장깊이 새겨안으며 원아들의 밝고밝은 모습을 사진에 연방 담아가는 춘숙의 마음속에서는 이런 절절한 당부가 메아리되여 울려퍼졌다.
행복한 아이들아, 이 세상 천만부모들의 사랑을 다 합친대도 비길수 없는 우리
* *
애국을 본분으로 여기라. 우리의 주인공은 이렇게 당부하고있다.
조국에 자기를 바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임을 우리는 한 평범한 녀인의 인생관을 통하여 심장깊이 새기게 된다.
어머니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해 나는 무엇을 바쳤는가. 이 물음앞에 떳떳이 대답할수 있는 삶이야말로 순간순간을 후회없이 사는 가장 아름다운 인생이 아니랴.
주체110(2021)년 2월 25일 《로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