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등록 |  학생가입 
따뜻한 정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나는 무엇을 바쳤는가라는 물음에 늘 자신을 비추어보면서 애국의 마음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뭇별들이 깜빡이는 깊은 밤 청남군편의봉사관리소의 어느 한 방 창가에서는 오래도록 불빛이 흘러나왔다.

어려운 세월속에서도 변함없이 우리 당을 믿고 언제나 지지해주신 마음들에 감사를 드린다고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친필서한이 실린 신문을 벌써 몇번째나 다시 읽어보는 반장 한은숙은 뜨거운것이 가슴속에 차오름을 금할수 없었다. 흥분된 심정을 가까스로 진정하며 한은숙은 지난해 가장 어려웠던 나날의 소중한 추억이 어려있는 보풀이 인 자그마한 봉사일지를 한장한장 펼치였다.

《주체109(2020)년 9월 13일부터 9월 14일까지 달리는 렬차칸에서 리발봉사 140명, 9월 15일부터 9월 25일까지 답동역, 리파역주변에서 리발봉사 310명, 신발수리 340컬레 진행…

9월 28일부터 10월 23일까지 대흥청년영웅광산지구 피해복구전투장에서 리발봉사 1 545명, 신발수리 1 913컬레, 50벌의 비옷을 비롯한 각종 옷수리봉사 진행…

석달이상은 푼푼히 쓸수 있다고 보았던 봉사용자재가 벌써 바닥이 날 지경이다. 시급히 대책을 세울것. …》

그 글줄들우에 근 80일간 검덕지구피해복구전투장에서 고락을 같이한 작업반원들인 손성실, 손성희, 리옥실, 김은정의 미더운 얼굴도 비껴들었다. 뿐만아니라 검덕전역에서 봉사활동을 할수 있게 성심성의껏 도와준 잊을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도 정답게 어려오고 군인건설자들을 찾아 험한 길을 톺던 나날들도 어제일처럼 떠올랐다.

 

*             *

 

지난해 9월 13일 아침이였다. 청남군녀맹위원회 일군이 렬차화물칸에 짐을 실어준 다음 검덕지구피해복구전투장으로 떠나는 우리 일행의 손을 잡아주며 다정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 군 일군들과 전체 녀맹원들의 몫까지 합쳐 군인건설자들을 잘 도와주세요. 봉사용자재보장은 념려말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일을 잘하겠습니다.》

단천시까지 기차를 타고가면서 가만히 앉아있자니 옹색했다. 그래서 렬차칸의 어느 한 곳에서 반원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가는 군인건설자들에 대한 리발봉사를 시작했다.

《아주머니들을 정말 다시 보게 되는구만요. 달리는 렬차칸에서 리발봉사까지 해주니 말입니다.》

나이지숙한 려객전무가 지나가다가 웃으며 하는 말이 영 싫지는 않았다.

단천시에 도착할 때까지는 그럭저럭 순조로왔지만 그다음부터는 헐치 않았다.

리파역까지 걸을 때 단천철도분국과 단천시당위원회의 일군들이 땀을 동이채로 흘리며 각종 봉사도구, 식량, 부식물 등을 넣은 수십개의 짐마대를 같이 운반해주었다. 리파역주변에서 한주일간 봉사를 하고 또다시 걸으면서 검덕광업련합기업소까지 왔을 때 녀맹중앙위원회 일군과 단천지구광업총국의 녀맹일군이 우리 일행을 대흥1동까지 가는 자동차에 타게 해주었다.

9월 27일 2시경 길가에서 대흥2동지구로 가는 차를 기다릴 때 군인건설자 두명이 전지를 켜들고 지나가다가 말을 건늬였다.

《어디까지 가기에 한지에서 밤을 새웁니까?》

《우린 대흥청년영웅광산까지 갑니다. 피해복구전투를 벌리는 군인들을 도울가 해서…》

《어제 하루종일 그곳으로 건설자재집중수송을 했기때문에 아마 차가 없을겁니다. 우리가 안내하는 곳으로 가십시다. 짐은 우리가 날라다드리겠습니다.》

아무리 사양해도 막무가내였다. 어느 한 가설건물안으로 우리 일행을 안내한 군인들은 얼른 밖으로 나갔다. 얼마후 따끈한 국과 김이 문문 나는 삶은 풋강냉이를 가져온 군인들은 요기를 한 다음 아침까지 눈을 붙이라고 하고는 전투장으로 나갔다. 저도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 원수님 키워주신 인민의 군대가 확실히 달라. 혹시 저들속에 우리 아들도 있지 않을가.)

날이 밝은 다음 알아보니 아들이 복무하는 부대의 군인들은 아니였다.

허나 사람의 정이란 참 유별하다. 그들모두가 내 아들처럼 여겨지니 말이다. 불과 몇시간만에 친자식처럼 정이 든 군인들곁에서 얼마간 있으면서 봉사를 하겠다고 하니 그들은 굳이 만류했다.

《몇십리 더 웃쪽으로 올라가면 대흥2동지구인데 그곳에 군인들이 더 많습니다. 우리보다 신발이 더 빨리 해지군 하는 그들에겐 어머니들의 사랑과 정이 몇갑절 더 힘이 될겁니다.》

해발고가 보다 높은 지역에서 피해복구전투를 벌리는 다른 부대의 전우들을 더 걱정해주는 웅심깊은 그 진정에 어쩔수 없었다.

어서 가자, 한시바삐 그들곁으로.

이렇게 우리 일행은 대흥땅에 《전투좌지》를 차지했다. 9월 28일부터 대흥청년영웅광산지구의 피해복구전투장에서 리발, 신발수리봉사 등을 동시에 시작했다. 군인들이 얼마나 좋아하던지.

《이것 보게. 신발이랑 장화랑 새것처럼 얼마나 든든해졌나. 어머니, 앞으로 일을 더 잘하겠습니다.》 …

지쳤다가도 군인들이 싱긋 웃으며 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가슴이 뭉클해지군 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이 아닐가.

10여년전 안주지구탄광련합기업소의 여러 탄광을 순회하며 탄부들에게 봉사를 해줄 때에도 자주 듣던 말이였다. 그후 세포지구와 청천강계단식발전소건설장에서, 무산군 피해복구전투장, 양덕군의 온정역사건설장, 삼지연시꾸리기 3단계공사장을 거쳐 이번에는 검덕지구피해복구전투장에서 또다시 그 말을 들으니 감개무량했다.

여러 대고조전투장에 몇달씩 나가보았지만 이번처럼 먼길을 걸어보기는 처음이였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뜻을 받들어 하루빨리 인민의 새 보금자리를 일떠세우기 위해 낮에 밤을 이어 전투를 벌리는 군인건설자들에게 조금이라도 힘과 용기를 보태주고싶은 열망이 우리를 검덕까지 오게 하지 않았던가. …

공사장가까이의 둔덕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봉사를 했다. 그러던 10월 중순 어느날 곱아드는 손가락을 주무르며 쪽걸상에 앉아 한창 신발수리를 하는 우리를 누군가가 일으켜세웠다. 조선인민군 한승철소속부대의 낯익은 군관이였다.

《반장어머니, 반원들이랑 같이 빨리 갑시다.》

모름지기 자기 부대의 군인건설자들에게 이동봉사를 또 한번 해달라고 찾아온것 같다. 그전에도 이런 일이 종종 있었기에 군말없이 따라갔다.

그러나 우리를 맞아준것은 덩실하게 서있는 가설건물이였다.

《청남군어머니들, 이제부터 여기서 봉사를 해주십시오.》

제 집처럼 무척 아늑하게 느껴졌다. 군인건설자들의 정이 구석구석마다에 슴배인 그 가설봉사건물앞면엔 병사들을 위하는 우리의 심정이 그대로 담겨진 글발이 문패처럼 붙어있었다.

건물이 아니라 끌끌한 아들들의 웃는 얼굴, 정깊은 눈빛을 마주보는 느낌이였다.

이런 멋에 사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 눈앞이 뿌잇해졌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크나큰 사랑과 정을 검덕의 인민들에게 전해주는 장한 일을 하는 속에서도 하나라도 더 도와주고싶어하는 군인들의 뜨거운 진정이 끝내 우리를 울리고야만것이다.

《우리 병사들의 발에 매일 날개를 달아주는 고마운 어머니들에게 지금은 이렇게밖에 지어주지 못해 정말 미안합니다.》

깍듯이 거수경례를 하고 돌아가는 군관의 뒤모습은 점점 멀어져가건만 《어머니!》 하고 소리치며 군복입은 숱한 아들들이 달려오는것만 같아 마음은 더없이 설레이고 온몸이 붕 떠오르는 기분이였다.

그러고보면 정이란 참 아름다운것이다. 제가 주는 정은 아무리 주고주어도 작아보이고 이렇게 제가 받게 되는 정은 어느것이나 더없이 커보이고 마음속에 가득히 넘쳐나 스스로 행복감에 잠기게 하는 그런 신비스러운것이다. 군인건설자들을 조금이나마 도와주러 검덕전역에 왔다가 오히려 그들에게서 더 아름차게 정을 받아안은셈이다.

곁에 서있던 김은정도 축축해진 눈굽을 닦으며 속삭이였다. 《반장동지, 집에서 듣던 어머니란 부름을 여기 검덕용사들에게서 매일 들으니 가슴이 막 찡해져요.》

그 속삭임에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보니 건설장이 별스레 더 환해지는것 같고 가슴속에는 불덩어리가 계속 흘러드는것만 같다. 우리는 여기서 군인건설자들과 따뜻한 정을 주고받으며 저도모르게 아들부자가 되였다. …

 

*             *

 

봉사일지의 마지막페지에도 그때의 사연깊은 글발이 적혀있었다. 값진 보물인듯 그 글발을 소중히 어루쓸며 검덕지구에서의 나날을 추억하던 한은숙은 조용히 봉사일지를 덮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하늘같은 사랑과 정이 어려있는 새해의 축복을 다시금 가슴속깊이 되새기며 방을 나선 한은숙은 멀리 동구밖으로 뻗은 길의 한끝을 점도록 바라보았다.

(길은 걸을수록 줄어든다고 했지만 우리가 가는 길은 계속 늘어만 난다.

우리 인민에게 부어주시는 경애하는 그이의 크나큰 사랑으로 가득찬 내 나라를 더욱 부강하게 하기 위해 힘과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쏟아붓는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에 그 얼마나 많은가. 그들에게 정을 보태주고싶어 스스럼없이 나선 길, 정과 정으로 더 뜨거워진 마음들이 하나되여 가는 이 길에 어찌 종착점이 있을것인가. 내 한생 이 길에서 헌신적인 봉사자, 인민의 복무자로 살리라!)

주체110(2021)년 2월 4일 《로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