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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제도가 안겨준 행복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영예군인들에게 돌려지는 당의 사랑과 배려, 사회적혜택이 제때에 정확히 가닿도록 하여 그들이 아무런 불편도 없이 락천적으로 생활하며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지난 1월말 어느날이였다.

따스한 해빛이 비쳐드는 평양산원 4산과 입원실에서는 퇴원을 앞둔 한 산모가 귀여운 아기를 안고 밝은 웃음을 짓고있었다.

그는 만경대구역 만경대동에서 살고있는 영예군인 박용희동무였다.

하반신마비의 몸인 그는 자기가 자식을 가진 어머니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8차례나 되는 척추수술을 받은데다가 건강상태가 시원치 않았던것이였다.

그러나 어머니가 되고싶은 소원만은 간절했다. 그래서 남몰래 베개잇을 눈물로 적시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만경대구역 만경대남새전문농장에서 농장원으로 일하고있는 남편인 김선호동무가 희색이 만면하여 집으로 들어섰다.

《농장사람들모두가 당신이 평양산원에 가면 꼭 무사히 해산할수 있다고 하오. 우리 산원에 가보기요.》

이렇게 되여 박용희동무는 지난해 11월 30일 평양산원 4산과에 입원하게 되였다.

당시 제일 난문제는 태아가 커지면서 척추수술자리를 압박하고있는데다가 하반신마비의 몸으로 태아를 유지하는것이였다.

누구를 담당의사로 선정할것인가.

이것은 영예군인이 도착한 순간부터 4산과 과장 우리철동무의 머리속에 줄곧 떠오르는 생각이였다. 누구보다 의술이 높고 또 정성이 지극한 의사를 선정하여야 했다.

바로 이러한 때 4산과 의사 로금철동무가 그를 찾아왔다.

《저에게 영예군인동무를 맡겨주십시오. 조국을 위해 피흘린 그에게 꼭 행복을 안겨주겠습니다.》

우리철동무는 말없이 그의 손목을 꽉 잡았다.

하반신을 쓸수 없는 임신부를 돌보는 일은 사실 쉽지 않았다.

그러나 담당의사 로금철동무와 담당간호원 김별미동무는 수십일간 영예군인의 곁에서 자리를 뜰줄 몰랐고 궂은일, 마른일 가림없이 간호하였다.

그들뿐이 아니라 4산과의 의료일군들모두가 영예군인을 위해 눈물없이는 볼수 없는 뜨거운 정성을 바치였다.

영예군인의 몸을 추켜세우겠다며 매일이다싶이 별식을 안고 오는 의사, 간호원들이며 빨래감도 웃으며 받아들던 간병원들…

드디여 지난 1월 8일, 영예군인이 해산하는 날이 왔다.

과장 우리철동무가 직접 집도한 수술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였고 산모는 떡돌같은 아들을 낳았다.

온 과가 명절처럼 흥성이였다.

그런데 해산한지 2시간이 못되여 뜻하지 않은 정황이 발생하였다.

산모가 갑자기 심한 출혈을 하기 시작했던것이다. 정황은 매우 위급하였다.

기술부원장 박성봉동무가 소생전투를 지휘하였고 집중소생과와 수혈실의 의료일군들도 긴장한 전투를 벌렸다.

여러 시간째 출혈을 멈추기 위한 전투를 벌리는 의료일군들에게 산모는 혼미해지는 의식을 가다듬으며 간신히 말했다.

《이젠- 그만두세요. 난… 아이를 낳았다는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

바로 이때 4산과 과장 우리철동무의 목소리가 울렸다.

《무슨 그런 나약한 소리를 하는거요.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무의 소생을 애타게 기다리고있는지 알기나 하오.》

사실 그랬다.

온 산원이 아니 영예군인이 살고있는 농장의 일군들과 마을사람들, 오랜 세월 남다른 인연을 맺어온 어느 한 인민군부대의 군인들도 그의 소생을 안타깝게 기다리고있었다.

그 시각 산모의 치료에 필요한 약을 보장하기 위해 구급차가 달리고 평양시당위원회의 일군들도 수시로 산모의 상태를 알아보며 대책을 세우고있는줄 사람들은 미처 알지 못하였다.

마침내 오랜 시간에 걸치는 소생전투끝에 산모의 생명지표는 정상상태에 이르게 되였다.

산모가 의식을 차리였을 때 담당의사 로금철동무는 목메인 소리로 말하였다.

《용희동무, 정말 고맙습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이런 현실은 오직 사람을 세상에서 제일로 귀중히 여기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에서만 펼쳐질수 있는 감동깊은 화폭이였다.

4산과의 애기방 의사, 간호원들은 애기의 영양관리를 위해 뜨거운 정성을 기울였다.

입원한 첫날부터 닭알이며 고기, 잣죽, 산꿀 등 영예군인에게 돌려지는 혜택은 끝이 없었다.

영예군인은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면 좋을지 몰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박용희동무는 퇴원하는 날 남편에게 이렇게 부탁하였다.

《가장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송이를 가져다주세요.》

그는 귀여운 옥동자를 안고 남편과 4산과의 의료일군들과 함께 산원 중앙홀에 모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영상사진문헌앞에 섰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자애로운 영상을 우러르며 아름다운 꽃송이를 진정한 박용희동무는 아기에게 얼굴을 묻었다.

그러는 영예군인을 보며 의료일군들도 뜨거운 눈물로 눈굽을 적시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세워주시고 빛내여주시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가 아니라면 하반신마비의 녀성영예군인이 어떻게 귀여운 옥동자를 품에 안을수 있었겠는가.

진정 모두의 가슴속에 차넘친것은 고마운 우리 제도,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 우리 조국을 받들어갈 불같은 맹세였다.

어머니의 품에 안긴 아기는 밝게 웃고있었다. 더욱 창창할 조국의 앞날을 그려주며 웃음꽃을 피우고있었다.

 

주체110(2021)년 2월 4일 《로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