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밟은 대지

한방울의 물에 우주가 비낀다는 말이 있다.

하반신마비로 다시는 대지를 밟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처녀, 8년만에 그의 얼굴에 다시 피여난 구김살없는 미소는 우리 사회의 진면모를 들여다볼수 있게 하는 거울이 아니랴.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서로 돕고 이끌며 단합된 힘으로 전진하는 우리 사회의 본태와 대풍모를 적극 살려나가야 합니다.》

몇년전 어느날 구장군인민병원 외과 의사 박정혁동무는 한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왕진을 갔다 만났던 한 처녀의 모습이 눈앞에서 떠날줄 몰랐던것이다.

한창나이에 하반신마비로 누워있자니 눈물인들 얼마나 흘렸으랴 하고 생각하느라니 가슴은 쓰리고 아팠다.

녀동생과 나이도 비슷한 처녀였다.

(그 처녀를 일으켜세울수 없을가. 그런데 나는 치료경험도 별로 없지 않은가.)

그의 뇌리에 문득 수년세월 다리를 쓰지 못하는 학생을 업고다니며 공부도 시키고 치료도 하여 끝끝내 대지를 활보하게 하였다는 한 교육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전문의료일군도 아닌 그가 어떻게 이런 기적을 창조할수 있은것인가.

그것은 뜨거운 사랑과 정이 낳은것이였다.

그는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아니 한생을 다 바쳐서라도 그를 일으켜세우리라.

그는 당조직을 찾아가 처녀를 전적으로 맡아 치료할 결심을 터놓았다.

병원의 당일군은 그의 결심을 적극 지지해주었다.

이때부터 그의 발걸음은 자주 처녀의 집으로 향해졌다.

수십리 떨어진 발전소건설장에서 치료사업을 하는 속에서도 그는 매일이다싶이 처녀를 찾아가 치료를 하고는 다시 건설장으로 돌아오군 했다.

그러던 어느해 겨울 처녀와 그의 아버지는 초조한 마음으로 어둠짙은 창밖을 바라보고있었다. 박정혁동무가 건설장에서 떠났다는 전화가 걸려온 때로부터 퍼그나 시간이 흘렀지만 도착하지 않았던것이다.

시계바늘은 어느덧 새벽 1시를 가리키고있었다.

《의사선생님에게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게로구나.》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며 그만 기다리라고 딸을 만류하던 찰나였다. 밖에서 빠드득빠드득 눈을 밟는 소리에 이어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박정혁동무였다. 벌겋게 충혈된 눈, 터갈라진 입술…

무심결에 그의 이마에 손을 가져갔던 처녀의 아버지는 덴겁을 하였다.

《몸이 불덩이같군. 그 몸으로 수십리 밤길을 달려왔나.》

순간 처녀는 눈앞이 흐려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자기의 욕창을 치료하기 위해 피부도 서슴없이 바치고 수백리길을 달려가 치료경험도 배우고 한밤을 꼬박 새우며 보약도 지어주던 날들이 가슴뜨겁게 돌이켜졌다.

《내가 뭐라고.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박정혁동무는 그러는 처녀의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명금이, 우리 힘을 내자. 꼭 일어서서 동무를 위해 걱정도 많이 하고 또 진정을 바치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자.》

정말이지 처녀의 곁에는 친혈육과도 같은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다. 그의 치료를 맡아나선 박정혁동무가 힘들어할세라 힘을 주고 떠밀어준 병원일군들, 어머니없이 앓고있는 그를 위해 자주 찾아와 집안팎도 거두어주고 생활상애로도 풀어주던 마을사람들…

《선생님, 저는 꼭 일어서야겠습니다. 그래서 고마운 사람들, 고마운 이 제도에 보답을 해야겠습니다.》

처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것이 너무 기뻐 박정혁동무는 조용히 눈굽을 찍었다.

박정혁동무는 더욱 극진한 정성을 기울였다.

그러던 몇달전 어느날이였다. 그는 자기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지금껏 아무리 뜸을 뜨고 침을 놓아도 어떤 감각도 느끼지 못하던 처녀가 뜨겁다고 말하는것이 아닌가.

그의 눈가에 맑은것이 고여올랐다. 그는 그달음으로 군인민병원 당일군을 찾아갔다.

당일군은 너무 기뻐 그를 얼싸안았다. 당조직에서는 회복치료과 과장을 비롯한 병원의료일군들로 회복치료사업을 적극 도와주도록 하였으며 처녀의 집에 견인치료기까지 가져다주어 그가 회복치료에 전심하도록 하였다.

마침내 처녀는 8년만에 기적적으로 다시 일어서게 되였다.

그는 산골군의 자그마한 철도역에서 일하던 로동자였다. 이렇듯 평범한 처녀, 자본주의사회에서라면 열두번도 사회의 버림을 받았을 그의 운명을 놓고 사람들모두가 그리도 가슴아파하며 친혈육의 정을 기울이는것은 무엇때문인가.

그것은 경애하는 원수님을 대가정의 어버이로 높이 모시고 사는 우리는 모두다 친형제이고 한집안, 한식솔이기때문이다.

한집안, 한식솔에는 네 슬픔, 내 슬픔이 따로 없다.

정녕 우리 사는 이 땅, 우리 안겨사는 사회주의제도는 얼마나 좋은가.

주체109(2020)년 11월 8일 《로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