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운 부름속에 사는 행복

평성시 중덕동초급녀맹위원회에는 한권의 부피두툼한 기록장이 있다.

거기에는 6년전 녀맹원들이 평성중등학원 원아들과 첫 인연을 맺은 때로부터 그들을 위해 기울인 친혈육의 사랑과 정이 깃들어있다.

수십명 원아들의 어머니가 되여 생활을 따뜻이 돌봐준 이야기며 그들이 중등학원을 졸업하고 평성시모체양묘장에 진출한 후에는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옳게 떼도록 이끌어준 이야기, 조국보위초소로 떠나는 그들과 찍은 사진들이며 초소에서 보내온 수십장의 감사편지들…

볼수록 감동을 자아내는 기록장이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서로 돕고 이끌며 단합된 힘으로 전진하는 우리 사회의 본태와 대풍모를 적극 살려나가야 합니다.》

사실 중등학원을 졸업한 원아들이 평성시모체양묘장에 진출하였을 때 녀인들은 생각이 많았다.

그들이 어머니당의 사랑을 언제나 잊지 않고 한생 애국의 길을 곧바로 걸어가도록 이끌어주고싶은것이 녀인들의 한결같은 심정이였다. 하여 시모체양묘장에 진출한 청년들에게 더욱 뜨거운 진정을 바치였다.

중덕동의 녀인들은 평성시산림경영소 일군들과의 긴밀한 련계밑에 청년들이 생활하게 될 합숙을 번듯하게 꾸려주었고 사업소의 기둥으로, 자랑많은 청년집단으로 되도록 이끌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중덕동의 녀인들은 한 청년이 며칠동안 합숙에 들어오지 않아 그곳 일군들이 몹시 걱정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그날 동녀맹초급일군들은 청년을 찾기 위해 떨쳐나섰다.

박향숙동무는 양묘장까지의 길을 몇번이나 오갔는지 몰랐다. 그는 동사무소앞 눈길우에 털썩 주저앉고말았다.

제 자식 열 키우기보다 남의 자식 하나 키우기가 더 힘들다는 말이 불쑥 떠올랐다. 그래도 학원시절부터 친자식처럼 위해주며 애지중지 키워온 애들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할수록 눈물이 앞을 가리우고 가슴이 저려들었다.

그때 어디선가 《위원장어머니!》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토록 애타게 찾아다니던 청년의 뒤로 여러명의 녀맹초급일군들의 모습도 보였다.

함께 학원을 졸업하고 시의 어느 한 피복공장에서 일하는 누이동생에게 갔댔다고 무랍없이 말하는 그를 붙잡고 박향숙동무는 이렇게 울먹이였다.

《너때문에 다들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그러고도 뭐 조국보위초소에 서겠다고?》

그날 당조직을 찾아간 박향숙동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 자식이라면 잘 먹이고 잘 입혀 내세우는데만 마음쓰지 않았을겁니다. 전 지금껏 눈먼사랑을 하였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중덕동의 녀인들은 청년들에게 더 깊은 관심을 돌렸다.

그 나날에 청년들은 로력혁신자로, 초급일군으로 자라났으며 조국보위초소에도 서게 되였다. 초소로 떠나는 날 그들은 고향의 어머니와도 같은 중덕동녀인들의 진정이 깃든 시집을 안고 떠나군 하였다.

자기들에게 참되게 살라고 채찍질해주고 걸음걸음 이끌어준 중덕동녀인들, 그들을 청년들은 어머니라 부르며 마음속으로 굳게 결의다지군 하였다.

(고마운 어머니들의 당부대로 꼭 훌륭한 병사가 되겠습니다.)

조국보위초소에서 《최정희어머니 앞》, 《한정애어머니 앞》, 《송춘화어머니 앞》이라고 쓴 편지들이 날아올 때마다, 그들의 영예사진을 볼 때마다 중덕동녀인들은 만시름을 잊은듯 밝게 웃는다.

수십명의 원아들을 우리 원수님을 받드는 끌끌한 병사로 내세운것으로 하여 그들은 가슴뿌듯해지는 행복감을 느끼군 한다.

오늘도 그들은 조국보위초소에 자식들을 세운 어머니된 심정으로 사회와 집단을 위한 좋은 일을 적극 찾아하고있다. 아름다운 생의 자욱을 새겨갈 불같은 지향을 안고.

주체109(2020)년 10월 20일 《로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