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에서 만난 평양녀인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정말 좋은 인민입니다.》

얼마전 신포에서 만났던 평양녀인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가 그를 알게 된것은 신포시의 피해복구전투장에서였다. 그때 시의 한 일군이 피해복구전투에서 앞장서고있는 신포시녀맹돌격대원들에 대해 이야기하였는데 그들속에 뜻밖에도 평양녀인인 그가 있었다.

착공의 첫삽을 박던 첫날부터 지금까지 성실하게 일하고있는 평양녀인,

그가 신포시녀맹돌격대원이 된데는 필경 사연이 깃들어있을상싶었다. 한시라도 빨리 만나보고싶은 충동을 금할수 없어 우리는 동행한 일군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잠시후 그의 입에서 이런 반가운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저기 삽질을 하고있는 동무랍니다.》

비오듯 흘러내리는 땀을 씻을념도 않고 부지런히 일하고있는 녀인의 모습이 안겨왔다.

알고보니 그는 룡성구역 룡문동에서 살고있는 송정향동무였는데 짐작대로 평양에서 신포시에 달려온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지난 9월 어느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수도 평양의 전체 당원들에게 보내신 공개서한을 받아안고 그는 생각이 많았다고 한다. 수도당원사단에 선참으로 탄원하고싶은 심정을 누르지 못하며 밤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의 눈가에 불현듯 떠오르는것이 있었다. 군관으로 복무하다가 희생된 맏이의 모습이였다.

맏이는 이렇게 절절히 말하는듯싶었다.

《어머니도 수도시민이 아닙니까. 우리 원수님께서 부르시는 피해복구전투장으로 달려나가 내 몫까지 합쳐 블로크 한장이라도 찍어주십시오.》

(그렇다. 비록 수도의 당원들과 함께 영예로운 대오에 설수는 없지만 이 나라 공민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이튿날 그는 남편의 바래움을 받으며 북행길에 올랐다.

아들의 묘소가 있는 신포시에 도착한것은 깊은 밤이였다. 송정향동무는 그달음으로 시당위원회청사로 달려가 자기의 심정을 터놓았다고 한다.

일군들은 먼길을 스스로 달려온 평양녀인의 진정에 감복되였고 그가 신포시녀맹돌격대에서 일하도록 해주었다.

이렇게 송정향동무는 피해복구전투에 참가하게 되였다.

힘들 때도 있었고 저도모르게 나약해질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성스러운 조국보위초소에 꽃다운 청춘을 바친 자식앞에 떳떳하려는 지향을 안고 힘과 용기를 가다듬군 한다고 그는 말하였다.

취재가 끝나자 녀인은 다시 전투장으로 종종걸음을 놓았다.

이렇게 우리는 그와 헤여졌다. 모름지기 그는 지금 이 시각도 전투장에서 충성의 땀방울을 아낌없이 바쳐가고있을것이다.

평범한 녀인의 모습이 우리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것은 가사보다 국사를 먼저 생각하고 당의 뜻을 앞장에서 받들어가려는 그 마음이 고결하기때문인것이다.

주체109(2020)년 10월 4일 《로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