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당을 받들어 충성과 헌신의 60여년

 

보통강구역 서장동 51인민반에서 살고있는 서재렬녀성에 대한 이야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애국의 마음은 조국과 인민을 위한 실천활동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수도 평양의 전체 당원들에게 공개서한을 보내신 소식으로 온 나라가 끓어번지던 지난 9월 6일이였다. 인민에 대한 불같은 사랑, 수도당원들에 대한 하늘같은 믿음에 격정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는 사람들속에는 80고령의 한 로당원도 있었다.

단발머리처녀시절 혁명의 군복을 입고 조국보위초소에 섰던 때부터 백발을 머리에 인 오늘까지 당과 수령을 위해,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해 60여년세월을 불같이 살아온 서재렬녀성,

그는 두툼한 책 한권을 펼쳐들었다. 60년의 당생활에 대한 총화라고 할수 있는 사연깊은 책이였다. 그 책의 한 갈피에 다음과 같은 글이 또박또박 씌여졌다.

《당원 서재렬, 당원증번호 18261, 분공-더 많은 파철을 모아 피해복구전구를 지원할것.》

스스로 맡은 당적분공을 안고 로당원은 또다시 길을 떠났다. 수십년세월 그의 몸에서 떨어져본적이 없다싶이 한 색날은 배낭을 어깨에 메고…

 

사랑이란 무엇인가

 

서재렬, 결코 귀에 선 이름이 아니다.

지난 1990년대 사회와 집단을 위한 좋은 일을 스스로 찾아한 서재렬녀성과 남편인 리재남특류영예군인이 당보에 처음으로 소개된 후 그들은 신문과 방송을 통하여 우리 인민과 더욱 친숙해졌다.

그러나 출판보도물에 서재렬이라는 이름이 새겨진것은 1990년대가 처음이 아니였다. 지난 세기 50년대 조선인민군의 한 잡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녀인은 소생되였다. 심한 화상을 입고 생사기로에서 헤매던 녀인은 오직 당의 뜻대로만 살려는 한 간호원의 지극한 정성에 의해 아름다운 한떨기 꽃으로 다시 피여났다.

자기 몸에 군복을 입은지 한해밖에 안되는 나어린 처녀간호원의 피가 흐른다는것을 알았을 때 그의 가슴이 어찌 감격으로 높뛰지 않으랴.

이렇듯 당에 충직한 인민군전사-서재렬간호원은 자기의 뜨거운 심장의 피로 인민의 생명을 구하고 인민의 군대로서의 본분에 충실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삶이였다. 사랑과 헌신이 없이는 못사는, 오직 그것으로만 설명할수 있고 그것으로만 가늠할수 있는 한 녀성의 류다른 인생길은 17살 꽃나이병사시절에 인민을 위해 더운 피를 서슴없이 바칠것을 결심한 그 순간부터 바치는데서 보람을 찾는 삶으로 조용히 자리잡았다.

생명이 경각에 달했던 부대주변 마을의 이름없는 녀인이 완쾌된 몸으로 군의소정문을 나서던 날 서재렬녀성은 쉬이 잠들수 없었다. 문득 열살 나던 해 고향땅에서 겪은 일들이 삼삼히 떠올랐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연탄군의 어느 한 리인민위원회 사무장을 하던 맏오빠를 내놓으라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모진 악형을 가하던 계급적원쑤들, 일가식솔모두가 놈들의 눈을 피해 찬바람 몰아치는 허허벌판의 강냉이짚속에 몸을 숨긴 후 너무도 배가 고파 어머니의 치마폭을 부여잡고 울먹이던 잊을수 없는 밤…

그후 인민군대의 재진격에 의해 마을이 해방되였다. 아버지는 밤잠을 잊고 살았다. 전선에 한알의 낟알이라도 더 보내주기 위해 아글타글 애써 일했다. 그러던 어느날 적비행기가 하늘을 써는 대낮에도 소잔등에 위장망을 씌우고 밭에 나가 살다싶이 하던 아버지가 적들의 무차별폭격에 희생되였다.

쓰러져서도 놓지 않은 소고삐, 그토록 사랑했던 땅을 적시며 흘러내리는 아버지의 선혈,

그날의 참상은 전후 군당위원회로 소환된 맏오빠를 따라 온 가족이 신천군으로 자리를 옮긴 뒤 중학교학급동무들과 함께 사백어머니와 백둘어린이의 봉분우에 자기 손으로 직접 흙을 떠얹던 날에, 학교를 졸업하는 길로 혁명의 군복을 입고 조국보위초소로 떠나던 날에 서재렬녀성의 가슴속에서 꺼질줄 모르는 복수의 불길로 활활 타올랐다. …

그는 자각했다. 인민을 위해, 전우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자기가 있으며 목숨보다 귀중한 조국을 지켜 한몸 깡그리 바치는 길이 곧 아버지의 원쑤를 갚는 길임을 심장속에 더 깊이 아로새겼다. 군사복무의 나날 서재렬녀성은 수십차례에 걸쳐 10여명의 군인들에게 피와 살을 바쳤다.

그는 자기의 피 한방울한방울이 그대로 동지들의 심장에 흘러들어 원쑤를 무찌르는 힘이 되고 용맹이 되기를 소원했고 자기의 살점 한쪼각한쪼각이 그대로 전우들의 나래가 되여 전투장마다에서 승리의 기치로 휘날리기를 바랐다.

이러한 지향을 안고 산 그이기에 인간으로서, 녀성으로서 쉽게는 결심할수 없는 인생의 심각한 선택앞에서도 결코 자그마한 주저나 동요도 몰랐다.

1960년대 초엽의 어느해 겨울이였다. 해주의학대학추천서를 손에 쥔 한 제대군인처녀가 남쪽방향으로 길게 뻗은 철길을 바라보며 사리원역두에 점도록 서있었다. 차디찬 눈발이 얼굴이며 목덜미에 와닿았지만 처녀는 방금전에 있은 뜻밖의 상봉으로 하여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이름은 리재남, 군사복무시절 자기의 피와 살을 바쳐 소생시킨 전우였고 지금은 특류영예군인인 그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어려왔다. 부대를 떠나는 날 철도일군이였던 아버지를 학살한 원쑤놈들을 끝까지 복수하는 심정으로 한생 마음속군복만은 벗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옛 전우를 바래우고나니 생각이 많았다.

어느덧 서재렬녀성은 자기가 해야 할바가 무엇인가를 심장으로 깨달았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리재남동무와 가정을 이루면 자기가 영영 어머니로 될수 없으며 머지않아 그가 하반신마비로 더는 걸을수 없다는것을 어제날의 담당간호원이 어찌 모르랴.

바로 그래서였다. 자기의 더운 피를 받은 귀중한 혁명동지, 조국을 위해 한몸 서슴없이 내댄 장한 아들은 누구보다 행복하고 떳떳해야 했던것이다.

며칠후 별이 총총한 저녁 두 청춘남녀가 주고받는 말소리가 흰눈을 떠인 경암산기슭으로 도란도란 울려퍼졌다.

《난 동무에게 두번다시 빚을 질수는 없소.》

《우리에겐 아버지의 원쑤를 못다 갚은 빚만이 있을뿐이예요. 그리고 동무곁엔 영원히 담당간호원이였던… 제가 있어야 하고.》

두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그것은 말없는 약속이였다. 한생 영원한 전우로 살리라는 굳은 믿음이고 맹세였다.

그들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한생토록 특류영예군인인 남편의 팔다리가 되여주고 마음의 지팽이가 되리라 마음다진 서재렬녀성의 진정, 그것은 값싼 동정이나 련민의 정과는 인연이 없었다.

조국을 위해 청춘의 더운 피를 뿌린 전우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헌신이였고 비록 불편한 몸이지만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부강조국의 밑거름이 될 불타는 마음에 힘과 용기를 더해줄 고결한 지향이고 실천이였다.

경암산기슭에서의 언약을 지켜 그들은 참으로 불같이 살았다. 어느날 저녁 황북일보사 기자로 일하는 남편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여보, 수령님께서 사회주의건설의 1211고지라고 하신 황철에서 지금 중형용광로건설이 시작됐다누만.》

천리마대고조의 주요전구인 들끓는 철생산기지에 한몸 잠그려는 남편의 결심은 도방송위원회 기자인 서재렬녀성의 가슴을 세차게 흔들었다.

《나도 가겠어요.》

이렇게 그들부부는 나라를 위한 보답과 헌신의 첫 자욱을 찍었다. 그 자욱은 지난 세기 60년대 황철의 중형용광로건설장에서 현장취재활동과 방송선전의 힘찬 메아리로 울려퍼졌고 1970년대에는 《명예석공》, 《명예용해공》이라는 부름과 더불어 삼지연대기념비건설장과 황철의 평로대보수현장으로 변함없이 이어졌으며 80년대속도와 새로운 90년대속도창조의 나날 남편이 더는 자기 발로 걸을수 없게 된 속에서도 개선문과 주체사상탑, 청류다리와 청년영웅도로건설장을 끊임없이 찾는 특류영예군인부부, 성실한 지원자의 모습으로 건설자들의 가슴에 뚜렷이 새겨졌다.

그 나날속에는 황철의 평로대보수전투때 신발바닥이 녹아붙는 로안에 들어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전투원들을 위훈과 혁신에로 고무추동하던 격정도 있었고 2, 000여리 먼길을 달려 혁명의 성지건설에 참가한 석공들에게 150마리의 닭곰을 안겨주던 기쁨도 있었으며 개선문건설현장의 《이동도서실》에서 건설자들을 위해 아낌없는 지성을 바쳐가던 잊을수 없는 밤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비록 삼륜차에 의지하는 몸이지만 당을 받들어 한생을 참되게 살아온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서재렬녀성은 그만 자리에 쓰러졌다.

며칠후 책상우에 펼쳐진채로 놓여있는 한권의 자그마한 책이 그의 눈뿌리를 파고들었다. 남편의 한생이 담겨졌다고도 할수 있는 자서전적인 창작수기집이였다.

그날 《사랑하는 나의 서재렬동지에게》라는 글이 씌여진 책의 첫장에 눈물자욱으로 얼룩진 다음과 같은 글줄이 나란히 새겨졌다.

《영원히 잊지 않으리! 당신을 뜨겁게 사랑하는 서재렬.》

특류영예군인남편과 함께 한 30여년, 결코 평범한 세월이 아니였다.

녀성으로서 응당 누려야 할 모성의 기쁨조차 없었던 나날이였다. 오히려 그러한 기쁨대신 몸이 불편한 남편을 위해 늘 젖은 손이 마를새 없는 드바쁜 시절이였다. 영예군인가정을 위한 나라의 혜택이 그대로 사회주의건설장마다에 가닿아 기념비적창조물의 주추가 되고 기둥이 되던 헌신의 낮과 밤이였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순간의 다리쉼이나 안일도 몰랐지만 힘들다고 주저앉은적은 한번도 없었다.

서재렬녀성의 가슴속에서 쉼없이 불타오르는 지향, 그것은 과연 무엇이였던가.

사랑이였다. 원쑤에 대한 증오가 너무도 큰것이기에 소중한 모든것에 대한 애착도 그렇듯 열렬한 참된 사랑이였다. 다시는 잃고선 못살 조국을 위해 혼신을 다하는 정과 열이고 그 품에서 복된 삶을 함께 해야 할 귀중한 혁명동지에 대한 사심없는 자기희생이였다.

사람들이여, 조국과 인민을 그리고 동지를 사랑한다고 쉽게는 말하지 말자.

서재렬녀성처럼 영원히 꺼질줄 모르는 불길과 같이 순결하고 열렬한 사랑을 위해 자기의 피와 넋, 온 한생을 깡그리 바치고 또 바치기 전에는!

 

대하는 줄기차다

 

류다른 정적이였다. 여느때는 들리지조차 않던 벽시계의 초침소리만이 고르롭게 울릴뿐…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들끓던 생활의 파도가 순간에 잔잔한 물결로 변해버렸다. 서재렬녀성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방안을 둘러보았다.

따뜻함이 넘쳐나던 정든 집이였다. 비록 자식이 없는 가정이지만 시안의 여러 중학교 문학소조원들이 방안가득 모여앉아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작가인 특류영예군인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문학창작과 토론으로 떠들썩했고 사회주의건설장과 병사들을 찾아가는 날이면 광복거리의 널다란 살림방이 넘쳐나도록 지원물자와 원호물자를 준비하느라 만시름을 잊던 행복한 보금자리였다.

삼륜차에 몸을 실은 남편과 함께 10여년세월 궤도전차를 타고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을 통한 위대성선전을 벌리던 나날은 또 얼마나 보람찼던가.

당의 은정어린 조치로 중앙의 어느 한 출판보도기관에 소환되여 평양에 새 보금자리를 편 후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60돐을 맞으며 자강도에서 떠온 60그루의 진귀한 나무를 만수대언덕에 높이 모신 수령님의 동상주변에 심고 삼지연대기념비건설지원의 나날 백두산3대장군을 받들어모실 한마음담아 삼지연못가에 세그루의 봇나무를 정히 심던 때도 눈앞에 삼삼히 떠올랐다.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재렬녀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광복거리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창가너머로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존귀하신 영상을 모신 모자이크벽화가 숭엄히 안겨왔다. 목이 꽉 메여올랐다.

한평생 인민을 위하여 궂은비, 찬눈을 다 맞으신 어버이수령님, 수령님의 높은 뜻을 꽃피우시려 바람세찬 전선길과 현지지도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위대한 장군님!

(여보, 걱정마세요. 당신과 함께 쉼없이 걷던 그 길을 끝까지 가렵니다. 이 한몸이 그대로 뿌리가 되여서라도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늘 아름다운 꽃향기속에 모시겠어요.)

그때부터 절세위인들의 영상을 모신 모자이크벽화주변의 원림구역에 매일이다싶이 한 녀성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낮이나 밤이나 늘 꽃나무를 가꾸는 그 모습이 10여년세월 어느 하루도 변함이 없으리라는것도, 그의 가슴속에 얼마나 소중하고 강렬한 지향이 깃들어있는지도 그때는 미처 알수 없었다.

어느날 서재렬녀성은 장농에 깊이 간수했던 낡은 배낭 하나를 꺼내들었다. 아득히 흘러간 군사복무시절의 배낭이였다.

전우들의 소생과 건강에 필요한 귀한 약재를 구하러 먼길을 떠날 때마다 그러했듯 그는 사연깊은 배낭을 추슬러메고 길에 나섰다. 진귀한 나무가 있는 곳이면 수십리, 수백리 먼길도 주저없이 걸었다. 언제인가 중앙식물원의 수목원관리작업반장에게 나이지숙한 녀인이 찾아왔다.

《만경대갈림길주변에 목란꽃을 심으려고 하는데 좀 도와줄수 없겠나요?》

김순희작업반장은 절세위인들을 높이 우러러모시기 위한 사업에 티없이 맑고 깨끗한 충성심을 바쳐가려는 서재렬녀성을 도와 작업반구내의 뜨락에 자그마한 양묘장을 꾸리였다. 그리고 목란꽃과 황목련, 누운향나무를 비롯한 나무모들과 갖가지 아름다운 꽃씨를 정히 심고 뿌렸다.

식물원의 양묘장에서 자란 아름다운 꽃관목들을 받아갈 때마다 서재렬녀성은 광복거리까지 내처 걷다싶이 했다. 뻐스나 지하철도를 리용할수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에서는 살붙이와도 같은 꽃나무들이 조금이라도 상할것 같아 체소한 몸에 《나무가 걸어간다》고 할 정도로 키큰 나무모를 등에 지고 수십리길을 쉬임없이 오갔다.

그 나날 만경대갈림길혁명사적비와 절세위인들의 영상을 모신 모자이크벽화주변만이 아닌 금수산태양궁전지구의 수목원과 만수대언덕, 만경대혁명사적지와 칠골혁명사적지를 비롯하여 혁명의 성지마다에 수만그루의 진귀한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였다.

서재렬녀성에게 있어서 심어도 심어도 또 심고만싶은 나무, 그것은 나무이기 전에 넋이고 숨결이였다. 그 어디에도 비길데 없는 행복이고 보람이였다.

사람들이 힘들지 않은가고 물을 때마다 그는 말했다. 그 나무들은 호위병이고 보초병들이라고.

정녕 그랬다.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품을 떠나 순간도 살수 없는 서재렬녀성이 슬하에 없는 자식을 대신하여 수령님들 가까이에 세운 수만명의 호위전사이고 보초병들이였다. 하기에 눈보라 휘몰아치는 한겨울의 이른새벽이면 그는 서둘러 절세위인들의 영상을 모신 모자이크벽화 원림구역으로 달려나오군 했다. 그리고 한그루한그루의 나무를 어루쓸며 《내가 온밤 뜨뜻한 구들에서 지내는 동안 너희들은 모진 추위를 이겨내며 우리 수령님들곁에서 찬바람, 눈보라를 막아드렸구나. 정말 고맙다.》고 이야기하고는 두볼을 눈물로 적시군 했다.

한해도 다 저물어가던 10여년전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몸소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를 찾아주시고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봉화를 지펴주신 감격적인 소식이 온 나라에 전해졌다. 력사의 땅 강선에서 타오른 대고조의 봉화는 서재렬녀성의 가슴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정리했던 가산으로 강선의 용해공들을 위한 지원물자를 성의껏 준비했다. 새해의 첫아침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 강철직장 초고전력전기로앞에서였다. 련합기업소 일군과 서재렬녀성과의 류다른 싱갱이가 벌어졌다.

《나이많은 늙은이라고 지내 그러지 말게. 이래 뵈두 여기서 용해공들의 작업복이랑 빨아주고 더운물을 끓여주는 일은 능히 할수 있어.》

《야 참, 여긴 할머니가 있을 곳이 못됩니다.》

이때였다. 《파철-》 하는 웨침과 함께 천정기중기에 실린 파철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초고전력전기로안으로 쏟아졌다.

용해장주변을 대낮같이 밝히는 눈부신 불꽃! 순간 서재렬녀성의 머리에 번개불마냥 스치는것이 있었다.

(파철!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가.)

그날 《파철, 파철》 하며 집으로 돌아오던 도중 청춘거리의 건설장에서 부러진 삽날 한개를 발견했을 때 마치도 진주보석을 본듯 가슴에 넘치던 희열을 서재렬녀성은 10여년이 지난 오늘도 감회깊이 추억하군 한다. 그때부터 《꽃배낭》, 《나무배낭》은 동시에 《파철배낭》으로도 되여 그의 등에서 한시도 떨어질줄 몰랐다. 드넓은 평양시의 건설현장 어디나 가보지 않은데란 없었다. 눈에 차지 않는 꽁다리파철이든, 한아름이 넘는 육중한 파철이든 가림없이 배낭과 손수레에 담아 나르고 또 날랐다. 한달이 가까와오자 아빠트마당 한켠에 파철더미가 키높이 솟아났다. 그것도 모자라 10㎏씩 저울로 단 파철무지들이 살림방 세칸에 빼곡이 들어찼다.

그후 년간강철생산목표를 돌파한 뜻깊은 날 강선의 초고전력전기로용해공들은 지난 세기 70년대 삼지연대기념비건설에 참가했던 석공들과 마찬가지로 종업원명단 첫자리에 다음과 같은 이름을 써넣었다.

《서재렬-명예용해공》

이른새벽마다 물날은 배낭 하나를 메고 집문을 조용히 나서는 우리의 주인공, 그러한 모습을 본적은 있어도 집에 들어서는 모습이나 아빠트마당에서 한가로이 산책을 하는 모습은 본 기억에 없다는 마을사람들의 소박한 말속에서 우리는 생각해본다. 어떤 사람들은 저만을 위한 짐, 자기 한가정만을 위한 짐을 지고 인생의 주로를 달릴 때 한생 끝까지 짊어지리라 맹세다진 애국의 짐을 더 억세게 추스르며 당을 따라 곧바로, 힘차게 걸어온 그 길을 다시금 뒤돌아본다.

거세찬 대하의 흐름이 한줄기의 시내물에 시원을 두고있듯이 한생 당의 령도업적이 깃들어있는 사적지마다에 정성껏 심은 꽃과 나무가 무려 10만그루를 헤아리고 모은 파철만 해도 1, 300t이 넘으며 병사들에게 보내준 원호품이 3만여점에 달한다고 하니 서재렬녀성의 지칠줄 모르는 열정과 헌신은 과연 어디에 뿌리를 두고있는것인가.

일편단심, 바로 그것이였다. 위대한 우리 당의 한 당원으로서, 이 나라의 성실한 공민으로서 좋은 날에나 시련의 나날에나 오직 당과 수령만을 받들고 따르는 변심없는 충성이였으며 나날이 늘어나는 지원증서에서 억만장자들도 맛보지 못할 삶의 희열을 느끼는 불타는 애국심이였다.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는 충성의 한길을 따라 서재렬녀성은 오늘도 걷고있다. 육체는 비록 80고령이여도 60여년전 단발머리시절의 그 열정과 맹세를 안고.

 

《나는 행복합니다》

 

다섯해전 마가을의 어느날이였다. 서재렬녀성은 여느때없이 일찍 집문밖을 나섰다. 전날에 심은 애어린 나무모가 걱정되여서였다. 해가 중천에 떠오를무렵 부지런히 일손을 놀리고있던 그에게로 여러명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할머니, 기뻐하십시오. 할머니가 어머니날을 맞으며 텔레비죤에 소개되게 되였습니다.》

서재렬녀성은 마치도 자기의 일인듯 기뻐하는 그들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일손을 잡으며 말했다.

《헛갈린게로구만. 자식없는 내가 어머니날에 무슨 소개될 일이 있다구…》

순간 모두의 가슴이 뭉클 젖어들었다. 어머니날, 이 나라 모든 어머니들의 경사로운 명절이건만 슬하에 일점혈육없는 그의 심정이 가슴에 맺혀와서였다.

《할머니, 헛갈린게 아닙니다. 당에서는 오랜 세월 애국의 길을 꿋꿋이 걸어온 할머니를 텔레비죤축하무대에 불러주었습니다.》

구역당일군의 절절한 이야기에 서재렬녀성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텔레비죤축하무대에 참가하기 위해 떠나는 날이였다. 뻐스에 올라 차창밖에 비낀 거리의 풍치를 바라보는 서재렬녀성의 눈가로 잊을수 없는 나날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결혼한지 여러해가 지난 어느날이였다. 꽃화분에 물을 주다만채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에게로 남편이 다가왔다.

《뭘 그렇게 보오?》

아무 대답도 없는 안해의 눈가에 물기가 어려있었다. 그 눈길을 쫓아 서둘러 창밖을 내다보니 아빠트마당에서 한 녀인이 아들애에게 그네를 태워주고있었다.

《여보, 후회하는게… 아니요?》

서재렬녀성은 눈길을 들어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도 인간이고 녀성이였다. 그라고 왜 모성의 기쁨을 누리고싶지 않으며 귀여운 자식이 있는 단란한 가정적분위기가 그립지 않으랴. 축축히 젖어든 눈굽, 애써 지어보이는 웃음…

이윽고 서재렬녀성은 남편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뜨겁게 속삭였다.

《절대로 후회하지 않아요. 왜냐면 저에겐 어머니의 행복에 못지 않는 소중한것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흘러온 30여년세월이였다. 기쁨도 많았고 눈물도 있었던 시절, 그러나 무엇보다도 량심과 의리앞에서 한점의 부끄러움도 없고 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자부로 긍지스러운 삶이였다. 하기에 텔레비죤축하무대에서 서재렬녀성은 이렇게 말하였다.

《어머니들이 애기에게 젖을 먹이러 갈 때 난 내 살붙이나 같은 꽃나무들에 물을 주러 가군 했어요. 애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릴 때면 꽃나무들이 목이 마르다고, 물을 달라고 하는것만 같았고. 다른 어머니들이 영웅이 된 아들딸을 보며 기뻐할 때 난 무럭무럭 자라는 꽃과 나무를 보며 보람과 행복을 찾군 했습니다.》

평양시는 물론 저 멀리 리원군과 천마군, 은률군을 비롯한 온 나라 곳곳에서 편지가 날아들었다. 출입문에 불이 일 정도로 사람들이 찾아왔고 하루종일 전화종소리가 그칠줄 몰랐다.

우리 구역에 이런 할머니가 있다는것이 정말 자랑스럽다는 녀인도 있었고 응당 해야 할 일을 하고도 은근히 대가를 바란것이 부끄럽다고 터놓는 청년도 있었다. 이제라도 평양으로 달려가 20년 가까운 세월을 홀로 사신 할머니에게 친손자가 되고싶다고 한 중학교 학생도 있었다.

이무렵 만경대구역 팔골2동 22인민반의 어느 한 집 창가에서는 밤깊도록 불빛이 꺼질줄 몰랐다. 모든것이 고요속에 묻힌 때였지만 방 한복판에 그린듯이 앉아있는 집주인인 오영순녀성의 가슴속에서 세찬 격랑이 일고있었다.

그것은 말그대로 충격이였다. 바로 자기와 가까운 곳에 그런 훌륭한 녀성이 있으며 그가 자기는 감히 바랄수 없는 삶의 아득한 높이에 올라있다는 사실앞에서 심장이 달아오르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지금껏 나름대로 사회와 집단을 위해 바쳐왔다고는 하지만 서재렬녀성의 한생에 비해볼 때 너무도 보잘것없어보였고 꽃과 나무를 자식삼아 살아왔다는 그의 이야기가 가슴에 맺혀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팔골2동 26인민반에서 사는 홍성옥녀성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텔레비죤축하무대에 서재렬녀성과 함께 섰었지만 그의 남다른 인생행로에 절로 머리가 숙어졌다. 이튿날 서재렬녀성의 집으로 들어선 두 녀인은 60고개를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그의 품에 무랍없이 안기였다.

《어머니, 이제부터는 저희들이 어머니의 친딸입니다.》

긴말은 필요없었다. 세상에 심장의 언어보다 더 진실하고 뜨거운 언어가 어디에 있으랴.

서재렬녀성에 대한 그들의 지성은 참으로 극진했다. 어머니의 여생에 못다 누리는 즐거움과 행복이 있을세라 고목에도 꽃을 피우는 심정으로 알뜰살뜰 뜨거운 정을 기울였다. 지난 6월 국제아동절날 오영순녀성의 손자손녀들이 크고 향기로운 꽃다발을 서재렬녀성에게 안겨주며 목소리합쳐 웨쳤다.

《증조할머니, 우리 원수님께서 기뻐하시게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이들뿐이 아니였다. 김련선, 김부남, 최순복, 방현임, 박정심, 정영옥동무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서재렬녀성처럼 한생을 참되게 살리라 다짐하며 그와 친혈육의 정을 맺었다. 만사람이 공감하는 숭고한 정신세계, 참된 인간이 울리는 시대의 진폭은 이렇듯 큰것이다.

얼마전 서재렬녀성은 그를 친어머니로 모신 고마운 손길에 떠받들려 보통강구역 서장동의 높다란 아빠트에 새 보금자리를 폈다. 오늘 그는 친자식보다 더 살뜰한 정속에 아빠트밑의 빈땅을 일구고 갖가지 꽃과 나무를 가꾸며 한생토록 걸어온 길을 변함없이 이어가고있다.

수십년전 어느 봄명절 우리 나라를 찾았던 한 외신기자가 광복거리를 지나던 리재남특류영예군인과 서재렬녀성을 만난적이 있었다. 삼륜차에 앉은 사람이 특류영예군인이라는것을 알게 된 기자는 서재렬녀성에게 물었다.

《당신은 행복합니까?》

대답대신 서재렬녀성의 눈가에 밝은 미소가 비꼈다. 인생의 가치관과 행복관을 개인의 물질적만족에서 찾는 자본주의나라 기자에게 구태여 무슨 말을 해줄수 있으랴. 그날 그들부부의 집을 돌아보고 명절을 함께 쇠려고 찾아온 이웃들까지 만나본 외신기자는 엄지손가락을 내흔드는것으로 자기 물음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찾았다.

당신은 행복합니까?

아마도 오늘 서재렬녀성이 다시 이 물음앞에 선다면 스스로 정한 삶의 목표를 향해 쉬임없이, 줄기차게 걸어온 그의 한생과 화목한 사회주의대가정의 현실이 그대로 다음과 같은 대답이 될것이다.

《나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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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렬녀성과 같은 참된 당원들이 주추돌이 되고 기둥이 되여 떠받들고있기에 위대한 우리 당은 장장 75성상 자기의 붉은 기폭에 승리와 영광만을 아로새겨올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헌신적인 삶에 열렬히 공감하며 뜻을 나누고 정을 다하는 사람들이 많아 우리의 사회주의큰집은 세상에 둘도 없는 미덕의 화원으로 더욱 아름답게 만발하는것이다.

서재렬녀성은 자기의 남다른 인생길로 사람은 한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며 진정한 삶의 보람과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를 말없이 가르쳐주었다.

모두다 이 나라의 훌륭한 당원이고 참된 어머니이며 열렬한 애국자인 서재렬녀성처럼 한생 끝까지 당과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열혈의 인간, 보답의 인간이 되자.

그러면 그 인생은 조국과 인민이 기억하고 존경하는 값높은 삶으로 빛날것이며 그런 애국자들이 무성한 숲을 이룬 내 조국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나라로 영광떨치게 될것이다.

주체109(2020)년 9월 20일 《로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