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생을 병사들의 어머니로 살리

남포시 항구구역 건국2동 리명숙

우리 집 살림방의 벽면에는 한상의 기념사진이 정히 모셔져있다.

제4차 전국어머니대회에 참가하였던 내가 경애하는 원수님을 한자리에 모시고 찍은 영광의 기념사진이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꿈만 같던 영광의 시각이 가슴뜨겁게 어려온다. 내가 걸어온 원군길에 새겨진 잊을수 없는 추억들도 감회깊이 떠오른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전체 인민이 인민군대를 친혈육처럼 사랑하고 성심성의로 원호하는것은 결국 자기 아들딸들을 사랑하고 도와주는것입니다.》

수십년전 농촌지원을 나갔던 나는 군인들이 수렁논을 개간하기 위해 온몸이 감탕투성이가 되여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되였다. 그때 우리가 일을 쓰게 못해 나라를 지켜야 할 군인들에게 농사일까지 시켜 미안하다고 하자 군인들은 합창을 하듯 말하였다.

《한치한치의 땅이 얼마나 귀중합니까. 이 땅을 지키는것도 가꾸는것도 우리의 임무입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며 나는 돌이켜보았다.

병사들처럼 조국을 사랑했던가. 조국을 위해 내가 한 일이 과연 무엇인가.

이런 생각을 거듭하는 나의 눈앞에 병사들이 마치 친자식처럼 정깊이 안겨들었다.

돼지를 많이 길러 군인들에게 보내줄 결심을 굳힌 나는 돼지우리도 큼직하게 짓고 먹이를 마련하기 위해 여기저기로 분주히 뛰여다녔다. 돼지를 살찌우는 일이라면 궂은일, 마른일을 가리지 않았다. 그렇게 애지중지 기른 돼지들을 처음으로 인민군군인들에게 보내줄 때의 기쁨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수 있겠는가.

한해두해 두터워지는 원군일지와 함께 나이가 찬 딸들을 보면서 나의 마음속에는 은근한 욕심이 싹터올랐다. 끌끌한 군관들을 사위로 맞고싶었다. 그래서 인민군군관만이 우리 집문턱을 넘어설수 있다는 《특수》한 결혼조건을 내세웠다.

지금도 즐겁게 회상하는 일이지만 딸들이 마음에 들어 찾아오는 총각들이 군관이 아니면 아예 선도 안보이고 불합격을 놓았더니 그렇게 눈을 높이다가 온전한 사위감들을 다 놓치겠다는 오해를 받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되여 우리 집에는 세명의 군관사위가 들어서게 되였다. 우리 아들도 역시 군관이다.

군관복을 입은 름름한 대장부들을 앞세우고 집밖에 나서면 온 마을사람들이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군 하는데 정말이지 대견하고 자랑스럽기만 했다.

군관의 안해가 된 딸들도 병사들을 위해 승벽내기로 집짐승을 길렀다.

아마 우리 가족이 기르는 집짐승을 모두 합하면 적지 않은 량이 될것이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자식들과 함께 원군의 길, 애국의 길을 변함없이 걸어갈 충성의 맹세를 담은 편지를 보아주시였다는 감격적인 소식에 접하였을 때 나는 그길로 많은 원호물자를 안고 사회주의건설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있는 군인건설자들을 찾아갔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내가 금수산태양궁전을 주체의 최고성지로 훌륭히 꾸리는 사업에 지성을 바치였을 때에도 은정어린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제4차 전국어머니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온 나는 세월이 흐를수록 크나큰 사랑과 은정을 거듭 베풀어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께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충성의 마음을 다 바칠 결심을 더욱 굳게 가다듬었다.

당에서는 군사임무수행중 뜻하지 않은 정황속에서 한몸을 서슴없이 바쳐 병사들을 구원하고 장렬하게 희생된 둘째사위를 애국렬사로 내세워주었다. 둘째딸은 남편이 못다 걸은 복무의 길을 꿋꿋이 이어가는 심정으로 병사들을 위해 군인가족의 본분을 성실히 수행하고있다.

초소의 병사들은 나를 어머니라고 정답게 부른다. 그럴 때면 해놓은 일보다 받아안은 사랑과 믿음이 먼저 어려와 송구한 마음을 금할수 없다.

정말이지 병사들을 위해 걸어온 원군길에 내 인생의 영광과 행복, 긍지와 보람이 모두 실려있다.

나는 원군이 우리 가정의 영원한 가풍으로 이어지도록 하며 경애하는 원수님의 뜻을 받들어 한생을 병사들의 어머니로 살겠다.

주체109(2020)년 9월 16일 《로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