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혁명가의 영예를 빛내이는 길에서

높은 실력과 뜨거운 정으로 지켜가는 교단

 

《진심을 바치지 않으면 교단에 설수도 없고 끝까지 지켜갈수도 없습니다.

온넋을 다 바쳐 교단을 사랑하고 후대들을 미래의 역군으로 키워가는 여기에 교육자의 진정한 보람과 행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섰던 교단, 내 삶의 전부와도 같은 교단을 지켜 한생을 바쳐가겠습니다.》

이것은 청진시 수남구역 수남고급중학교 교원 현옥주동무가 우리에게 한 말이다.

참으로 깊은 뜻을 담고있는 말이다.

바로 이 말속에 두 자식을 가진 어머니, 영예군인공장에 다니는 남편을 돌봐야 하는 가정주부의 몸이지만 지칠줄 모르는 열정으로 많은 새 교수방법을 창조하고 교육사업에서 뚜렷한 실적을 내여 학생들과 학부형들, 교원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있는 그의 참모습이 그대로 비껴있다.

교육자로서의 현옥주동무의 높은 자질은 풍부한 지식과 실천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학생들의 원리적인식능력과 응용능력을 높여주는것과 동시에 교육조건과 환경개선에서도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둘수 있게 하는데서 잘 표현되고있다.

지난해에만도 그가 내놓은 새 교수방법들이 도에서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그로 하여 현옥주동무에 대한 교원들과 학생들, 학부형들의 기대는 남달리 크다.

교수자질이 높을뿐아니라 이악하고 성실하여 맡은 일에서 언제나 책임적이라는것이 현옥주동무에 대한 학교일군들과 교육자들의 일치한 평가이다.

때로는 생활이 어려운 학급학생을 위해 수십리 밤길을 걷기도 하고 때로는 새 교수방법창조를 위해 며칠밤을 밝히기도 하는 그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직업적혁명가의 긍지가 가득차있다.

(우리 당의 후대사랑, 미래사랑을 꽃피우는 길에 나의 지혜와 열정을 아낌없이 바쳐가리라.)

이런 소중한 마음을 가슴깊이 간직한 그였기에 높은 실력과 뜨거운 정으로 어머니가 섰던 교단을 꿋꿋이 지켜가고있는것이다.

현옥주동무는 조국의 미래를 가꾸어가는 성스러운 교단에 세워준 당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에 기어이 보답할 일념을 안고 깨끗한 량심과 헌신으로 오늘도 뚜렷한 삶의 자욱을 새겨가고있다.

본사기자 김성민

 

후대교육사업에 순결한 량심을 바쳐

 

함흥시 성천강구역 성남소학교 분과장 차영실동무는 30여년세월 변함없이 후대교육사업에 순결한 량심을 바쳐온 성실한 교육자이다.

차영실동무는 교단에 선 첫날부터 오늘까지 언제나 학생들에게 친어머니와 같은 정과 사랑을 부어주며 걸음걸음 따뜻이 이끌어주었다.

후대들을 위한 량심의 길, 헌신의 길을 아름답게 수놓아온 그의 성실성을 말해주는 한가지 사실이 있다.

언제인가 그가 맡은 학급으로 한 학생이 전학되여왔다.

그런데 학생이 학급동무들과 섭쓸리기 싫어하고 공부에도 재미를 붙이지 못하여 부모의 속을 태우고있었다.

차영실동무는 그런 학생일수록 더더욱 정과 품을 들이였다.

학생의 집에도 찾아가 밤늦도록 그날 수업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며 공부에 취미를 가지도록 하였고 장난으로 옷이 덞어지면 빨래도 해주면서 옷차림을 단정히 하도록 친어머니의 심정으로 보살펴주었다. 그 과정에 학생은 점차 공부에 적극적으로 달라붙게 되였고 조직생활도 잘하고 례절이 밝은 학생으로 자라날수 있었다.

학급학생모두가 금싸래기와 같은 나라의 귀중한 보배이며 조국의 밝은 앞날이라는 후대관을 깊이 간직하고 차영실교원이 남모르게 새겨온 순결한 량심과 헌신의 자욱에 대한 이야기는 이뿐이 아니다.

자기가 직접 구해온 갖가지 꽃나무들과 산나물, 약초 등을 학생들과 함께 학교교재림에 옮겨심고 가꾸면서 그 과정이 곧 학생들의 관찰능력을 높여줄뿐아니라 애국의 마음을 키워주는 계기로 되도록 한 사실, 새로 배치되여오는 교원들의 자질을 높여주기 위해 밤새도록 진심으로 도와준 사실 등은 그가 후대교육사업에 얼마나 깨끗한 량심을 바쳐오는가를 잘 말해주고있다.

학생들이 훌륭한 혁명인재로 자라나도록 밑거름이 되여주고 뿌리가 될 고결한 마음이 없이야 어떻게 수십년세월을 변함없이 후대교육사업에 자신의 모든것을 바쳐갈수 있으랴.

10월8일모범교수자인 그는 오늘도 자라나는 새 세대들을 앞날의 믿음직한 역군으로 키우는 교육사업에 온넋을 바쳐나가고있다.

주체109(2020)년 6월 2일 《로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