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그 집안 가풍인것 같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잊지 못해하시는 전 조선인민군 군단장
리성국동지와 그의 아버지 리경선동지의 고결한 사상정신적풍모를 놓고

 

우리 혁명력사의 갈피에는 수령이 기억하고 인민이 아는 수많은 애국충신들의 모습이 빛나고있다.

그들속에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잊지 못해하시는 전 조선인민군 군단장 리성국동지와 그의 아버지 리경선동지도 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모든 간부들과 당원들은 대를 이어 계승되는 충실성을 지니고 우리 당에 영원히 충성다하여야 하며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끝까지 싸워나가야 합니다.》

혁명의 종국적승리는 수령의 탁월한 령도와 그를 절대적으로 받들어나가는 혁명전사들의 무한한 충실성에 의하여 이룩되며 우리 시대의 매 인간, 매 가정에 있어서 당과 수령께 충성다하는것보다 더한 중대사는 없다.

이 세상 천지가 변한다고 해도 오직 그대로만 있는 우리 조국의 자랑스러운 가풍, 조선인민의 이름과도 같고 이 땅의 모든 생의 전부와도 같은 충실성의 고귀한 혈통이 어떻게 꿋꿋이 이어지고있는가 하는것을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당과 수령께 충직하였던 리성국동지와 그의 아버지 리경선동지의 고결한 사상정신적풍모를 놓고 이야기하려고 한다.

 

영광의 한생

 

주체108(2019)년 건군절이였다.

이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조선인민군창건 71돐을 경축하는 뜻깊은 모임에서 새로 나온 영화문헌에 리성국 전 군단장도 나오는데 불치의 병으로 사망한 그를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그는 인민군대에서 젊은 군단장들중의 한사람이였습니다. 그는 사업에서 정열적이였고 무슨 일을 맡겨주어도 맵시나게 해제끼군 하였습니다.》

그러시면서 리성국 전 군단장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손길아래 자라나 당에 무한히 충실하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많은 일을 하였다고, 그가 한창 일할 나이에 우리곁을 떠난것이 정말 아쉽다고, 나는 영화문헌에 나오는 리성국 전 군단장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그의 몫까지 합쳐 더 많은 일을 하여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 다음날 인민군대의 군사지휘관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자리에서도 리성국 전 군단장생각이 또 난다고 하시였으며 사흘째 되는 날에도 이번에 진행된 건군절 71돐 경축행사에 참가한 인민군대 일군들가운데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서운하였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리성국 전 군단장을 잊을수 없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이처럼 우리 원수님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참된 혁명전사 리성국동지, 그는 어떤 사람이였는가.

지금으로부터 7년전 조국의 서남전선을 지키는 대련합부대장으로 리성국동지가 임명되였다.

47살의 젊은 나이에 경애하는 원수님의 크나큰 신임을 받아안은 그는 폭풍처럼 설레이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며 혁명의 총대와 함께 걸어온 보람찬 나날을 되새겼다.

주체87(1998)년 1월 31일, 자기의 생일인 바로 그날에 리성국동지는 한생토록 못 잊을 영광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였다.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지켜 끊임없는 전선시찰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가 복무하고있는 인민군구분대를 찾아주신것이였다.

꿈결에도 그리던 환희의 시각이 다가올수록 인민군대에 입대하던 날 총잡은 군인으로 한생을 살겠다는 그의 결심을 듣고 대견함을 금치 못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맙다. 여러 자식을 키우며 당앞에 떳떳이 내세울 자식이 없으면 어쩌랴 하고 근심하였는데 네가 일생을 무장으로 당을 받들겠다니 이젠 마음이 놓인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믿음과 사랑속에서 당중앙위원회 부장으로 사업하다가 10여년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오늘의 이 영광을 안다면 얼마나 기뻐하랴.

(아버지의 마음도 함께 담아 위대한 장군님께 삼가 인사를 드리자.)

리성국동지가 이런 생각을 가다듬고있는데 위대한 장군님께서 타신 야전승용차가 구분대마당에 들어섰다.

씩씩하게 영접보고를 올리는 30대 초엽의 구분대 지휘관이 당의 기초축성시기 자신의 곁에서 일한 사랑하는 옛 전사의 아들이라는것을 알게 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리경선의 아들이요? 반갑습니다.》라고 하시며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순간 리성국동지는 《아버지!》라고 목메여 부르며 한없이 자애로운 그 품에 얼굴을 묻었다.

잊을수 없는 옛 전사의 모습을 그리시는듯 세차게 어깨를 들먹이는 리성국동지의 등을 다정히 어루만지시며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윽하여 리경선동무가 훌륭한 아들을 두었다고, 우리에게 있어서 조국보위보다 더 영예롭고 신성한 사업은 없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그날의 가르치심은 리성국동지의 심장속에 한생 총대로 우리 당을 충직하게 받들어갈 결심을 더 굳게 새겨주었다.

그후 당의 믿음과 사랑속에 어느 한 인민군부대 부대장으로 임명받은 리성국동지는 위대한 장군님의 의도에 맞게 부대의 전투력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에 온넋을 다 바침으로써 부대의 싸움준비와 군기확립, 군인생활향상에서 획기적인 전진을 이룩하였으며 황철나무중대와 같은 전군적인 본보기중대를 만들어 부대를 찾아오신 어버이장군님께 기쁨을 드리였다.

이렇듯 위대한 장군님의 슬하에서 인민군대의 쇠소리나는 젊은 사단장, 군단 참모장으로 자라난 그가 주체혁명위업계승의 중대한 력사적시기에 경애하는 원수님의 크나큰 믿음을 받아안은것이였다.

리성국동지는 숭엄한 마음으로 평양의 하늘가를 우러렀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이 한몸 열쪼각, 백쪼각이 난대도 조국의 서남전선을 굳건히 지키겠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원대한 작전적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리성국동지는 대련합부대관하 부대들과 서남전선 최대열점지역의 섬방어대들을 끊임없이 찾았다.

1년치고 집에 들어가 발편잠 한번 제대로 자보지 못하고 아글타글 애쓴 보람이 있어 그는 짧은 기간에 대련합부대의 싸움준비상태와 걸린 문제를 환히 꿰들게 되였으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전화로 서남전선의 상황과 그에 따르는 대책적문제에 대하여 물으실 때마다 매번 정확하고 구체적이며 확신성있는 대답으로 원수님께 기쁨과 만족을 드릴수 있었다.

인민군대의 젊은 군단장인 그가 남달리 정열적이고 무슨 일을 맡겨주어도 본때있게 해제끼는것이 못내 대견하시여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한해에도 몇차례씩 그의 부대를 찾으시였으며 늘 그를 옆에 끼고다니시면서 작전적안목을 틔워주시고 철의 담력과 배짱을 지닌 유능한 군사지휘관으로 자라나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 기간 영화문헌을 통하여 서남전선의 최대열점지역 섬방어대들로 크지 않은 배를 타시고 풍랑사나운 바다길을 헤쳐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영상을 뵈웠을것이다. 그때마다 우리 원수님을 곁에서 충직하게 보좌해드리던 키가 크고 구리빛얼굴에 순박한 표정의 인민군장령을 기억하고있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생전에 경애하는 원수님을 자주 부대에 모시는 영광을 지니였으며 그것을 최고의 영예로 간직한 리성국동지였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원수님에 대한 그리움보다 더 강렬한것이 불타고있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무도, 장재도를 비롯하여 서남전선 최대열점지역의 섬초소들을 련이어 찾으시던 때의 일이다.

어느날 대련합부대관하 섬초소를 찾으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현지시찰을 수행하고 돌아온 리성국동지는 어느 한 전초기지에 대한 항해길에 나섰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그와 헤여지기에 앞서 그 전초기지에 대하여 물으시였던것이다. 그때 경애하는 원수님께 그 전초기지는 서남전선의 최대열점지역가운데서도 제일 위험한 수역에 자리잡고있어 가실수 없다고 말씀드리였지만 어쩐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 그였다.

초당 10m의 센 바람과 길길이 날뛰는 파도…

더우기 그곳으로 가는 길은 세찬 물곬이여서 배는 안전바줄이 끊어져나갈듯이 사납게 요동쳤다.

하지만 리성국동지는 항해시험을 멈추지 않았다. 금시라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찾아오시여 그곳에 가자고 하실것만 같아 온종일 파도에 몸을 적시면서 부두위치를 확정하고 고무단정도 마련한 리성국동지,

하여 그는 얼마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동이 트는 이른새벽에 또다시 부대를 찾으시여 그 전초기지에 가볼수 있는가고 물으시였을 때 항해준비가 다되였다고 눈물에 젖어 말씀드리였다.

이날의 풍랑세찬 바다길에서 리성국동지는 마음속으로 조국의 바다와 일생 나누어야 할 대화를 다 나누었다고 한다.

(바다야, 제발 조국과 인민의 념원을 알고 오늘의 력사적인 항해길을 무사히 보장해주렴. …)

그날 저녁 리성국동지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현지시찰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고 돌아온것을 축하하는 부대지휘관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오늘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우리 부대에 오시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까지 났소. 오시기만 하면 위험천만한 바다길에 나서시는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요. 나에게 소원이 있다면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풍랑사나운 바다길에 더는 나서시지 않도록 하는것이요.》

경애하는 원수님을 뵈오면 너무 기뻐 떨어졌던 친부모를 만난 어린애와 같은 심정이 되군 하던 그가 눈물이 그렁하여 한 이 말속에는 애오라지 그이의 안녕만을 바라는 간절한 소원이 담겨져있었다.

하기에 그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크나큰 은정속에 대련합부대관하 섬초소들이 눈부시게 꾸려질 때에도 낮에 밤을 이어 섬초소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원수님의 구상과 의도를 결사관철하기 위해 지혜와 열정을 다 바치였다.

리성국동지는 노래 《말하라 선군길아》를 제일 사랑하였다.

어느 한 연회에 참가하였을 때 그는 경애하는 원수님앞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이 아침 최전연 찾아오신

장군님 뵈옵는 전사의 생각

여기서 평양은 천리인데

그 언제 떠나셨을가

이 노래를 부르느라니 군관시절 위대한 장군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옵던 일과 대련합부대장이 된 후 동터오는 이른새벽 현지시찰을 나오신 경애하는 원수님을 맞이하였을 때 그이께서 아침식사를 드셨을가 하고 생각하던 력사의 날들이 떠올라 가뜩이나 바다바람에 갈린 목소리가 눈물에 꽉 잠겨버렸다.

그런데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의 심정을 헤아리신듯 제일먼저 박수를 보내주시였다.

주체106(2017)년 8월,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진행된 한 훈련경기에 참가하고 돌아온 저녁 리성국동지는 그날에 받아안은 격정과 흥분을 누를길 없어 대련합부대 정치일군과 함께 원수님께 드리는 편지를 한자두자 써나갔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모시고 진행한 이번 훈련시간은 저희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위대한 령장을 모시고있는가를 심장으로 절감한 시간이였습니다.…》

위대하신 그이를 만나뵈오면 무한한 행복감으로 시간가는줄 모르다가도 정작 그이곁을 떠나면 또다시 못 견디게 그리운 전사들의 절절한 심정을 그대로 담아 쓴 편지를 경애하는 원수님께 정중히 올리고나서 시계에 눈길을 주던 리성국동지는 깜짝 놀랐다.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퍽 넘어서고있었던것이다. 순간 그는 돌덩이같은 주먹으로 자기의 가슴을 쾅 쳤다.

(이 무슨 죄를… 온 하루 정력적인 훈련지도로 피로가 겹쌓이시였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이밤 편히 쉬시도록 안녕을 지켜드리지는 못할망정 그이께 로고를 더해드리다니!)

크나큰 죄책감으로 그가 잠 못 들고 모대기던 그 시각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은정깊은 회답을 보내주실줄 어이 알았으랴.

《군단장!

밤이 깊었는데 왜 아직 휴식하지 않소?

동무들의 결의편지를 받고보니 힘이 나오. 고맙소.

최고사령관

2017. 8. 27》

자자구구 믿음과 정이 넘치는 절세위인의 회답서한을 받아안는 순간 리성국동지는 솟구치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세상에 우리 원수님처럼 전사들을 사랑하시는분이 또 어데 계시랴 하는 생각이 밀물처럼 차오른 리성국동지는 자기가 애용하는 수첩에 신념의 글발을 적어나갔다.

《나의 심장이 고동치는 최후의 순간까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충직한 혁명전사, 사심없는 제자로 살았다면 나의 시신을 덮을 붉은 기폭에 최고사령관동지의 이 믿음의 글발을 새겨달라.

내 만일 우리 최고사령관동지의 믿음을 순간이라도 저버린다면 나의 심장에 주저없이 비수를 박아 그대로 불속에 집어넣어달라.》

우리 혁명의 중대한 시기 조국방선의 중요한 초소에서 경애하는 원수님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든 리성국동지,

그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작전적구상을 받들어 사업한 나날은 불과 5년간이다. 그는 52살의 한창나이에 생을 마치였다.

하지만 그의 한생이 길었는가 짧았는가 하는것이 문제로 되지 않는다. 우리 당을 어떻게 받들었으며 령도자의 심장에 어떤 모습으로 남았는가 하는것이 기본인것이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주체108(2019)년 5월에도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당과 수령께 충성다한 리성국동지에 대하여 뜨겁게 회억하시다가 그전에 당중앙위원회 부장을 하던 그의 아버지도 당에 무한히 충실하였다고 하시면서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그 집안 가풍인것 같습니다.》라고 값높은 평가의 말씀을 하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오늘도 잊지 못해하시는 리성국동지!

비록 짧았어도 생의 매 구간마다 한점의 후회나 공백이 없이 맑고 깨끗한 충성으로 꽉 차있어 령도자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그의 삶은 어제도 오늘도 우리 인민들과 인민군군인들에게 참된 인생의 수업종을 울리고있다.

순간순간 수령의 사상과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 한마음으로 심장이 고동친 불같은 삶, 그런 충성의 삶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삶, 영광의 한생이 아니겠는가.

 

충실성의 억센 뿌리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리성국동지를 못 잊어하시는것처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리경선동지가 세상을 떠난 때로부터 수십년이 지나도록 리경선동무는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자신께서 매우 아끼고 사랑한 사람이라고, 그는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직한 혁명전사이며 능력있는 일군이였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시하시였다.

리성국동지와 그의 아버지 리경선동지는 활동한 년대도, 맡고있은 직책도 서로 달랐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당력사의 갈피에 한결같이 뚜렷한 자욱을 남기였으며 이 나라 애국충신들의 고결한 넋이 빛나는 영생의 언덕, 신미리애국렬사릉에 충성의 한모습으로 올랐다.

이에 대하여 그 어떤 유전적요인이나 우연적인 결과로 설명할수는 없다. 충실성은 유전되지 않으며 부모가 혁명가라고 하여 자식들도 저절로 혁명가가 되지 않는다는것은 지나온 생활의 교훈이고 진리인것이다.

하다면 어떻게 되여 이들가정에서는 충실성의 대가 그처럼 꿋꿋이 이어졌으며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 집안가풍으로 될수 있었는가.

리성국동지가 아버지의 슬하에서 산 날은 많지 않다. 당의 은정속에 만경대혁명학원에서 공부한 그는 졸업후 인민군대에 입대하였으며 21살의 젊은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당과 수령께 충직하였던 아버지의 모습이 한생토록 간직되여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리경선동지는 아버지이기 전에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 어떤것인가를 산모범으로 가르쳐준 훌륭한 스승이였다.

리경선동지와 오래동안 함께 일한 일군들은 그에 대하여 남달리 박식하고 실력있는 일군이였다고 추억한다.

리경선동지의 높은 실력은 단순히 타고난 재능에 의한것이 아니라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충직하게 받들려는 투철한 신념과 의지의 발현이였다. 그는 늘 일군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였다고 한다.

《말로는 충성을 다할수 없고 당과 수령의 의도를 받들고 충성을 다하자면 실력가가 되고 정열가, 노력가가 되여야 합니다.》

이와 같은 투철한 신조로 리경선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사업을 보좌해드리는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자료들은 열백밤을 패서라도 탐독하여 기억해두는것을 체질화, 습성화하였다. 그는 당에서 바라는 다방면적인 일군으로 준비하기 위해 매일같이 일기도 쓰고 시도 썼으며 우리 나라 문학작품은 물론 세계문학작품과 명언집, 속담집, 세계적인 인물들의 개인자료집 지어는 아이들의 동화와 만화책에 이르기까지 읽지 않은 책이 없었다. 당중앙위원회 부장으로서 항상 많은 일감으로 짬시간을 내는것조차 헐치 않았지만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 어떤 문제를 물으시여도 막힘없이 보고올리는 백과전서가 되고 최고속계산기가 될 높은 목표를 내세우고 피타게 노력한 그였다.

그가 생활에서는 또 얼마나 청렴결백하고 고지식하며 원칙적인 일군이였는가 하는것은 당중앙위원회 부장으로 사업하는 기간에 두 아들을 인민군대에 내보냈으며 딸들도 로동현장에 세운 사실을 놓고도 잘 알수 있다. 슬하에 여섯남매를 두었지만 그는 자식들의 전도를 두고 당에 제기하여 해결받은적이 한번도 없었다.

하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리경선동지가 급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못내 가슴아파하시며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리경선이 고지식한 사람이다보니 자식들의 전도문제에 대하여 나에게 제기한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가 나에게 자식들의 전망문제를 두고 단 한번이라도 제기하여 해결받은 일이 있다면 이렇게까지 가슴아프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옆으로 보나 한모습이였던 리경선동지, 그런 아버지의 순결하고 고지식한 모습이 자식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겠는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조선혁명박물관의 《위대한 수령님들과 전우관》에는 수십년전 리경선동지가 최전연부대에서 군사복무를 시작한 둘째아들 리성국동지에게 보낸 편지가 전시되여있다.

《성국이 보아라.

…나는 네가 입대초기의 어려운 고비를 용하게 이겨내고 마음의 준비도 더 좋아진데 대하여 기쁘게 생각한다.

집의 소식과 식구들의 소식은 너의 동생들이 편지로 전하겠기에 나는 오늘 네가 군사복무를 하는데 도움이 될가 하여 몇가지 문제만 적으려고 한다.

하나의 문안편지로만 생각지 말고 가슴속깊이 새겨넣고 언제나 지침으로 삼기 바란다.

첫째로,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에 대한 충성심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그것을 더욱 높이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한다.

충성심은 혁명가의 생명이다.…

충성심은 혁명가의 삶의 원천이며 삶의 목적이다. 혁명하는 사람의 삶의 보람은 충성심을 꽃피우는데 있으며 혁명가의 생의 길이는 충성심의 크기에 의하여 담보되는것이다.

이것은 오늘까지 내가 생활체험을 통하여 얻은 신념이며 생활신조이다.

너는 무엇보다도 이것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 아니 너뿐아니라 혁명을 하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것을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것이다. …》

사업에서나 생활에서나 당과 수령을 받드는 자세와 립장이 한결같은 리경선동지의 고결한 인생관은 리성국동지가 한생토록 간직한 충실성의 깊고도 억센 뿌리로 되였다.

부모의 옳바른 삶, 한점의 티도 없는 깨끗한 삶이 자식들의 인생에 주는 영향은 이처럼 크다. 아버지 리경선동지는 비록 세상을 떠났어도 생전의 모습은 때로는 보이지 않는 따뜻한 손길이 되고 때로는 엄한 채찍이 되여 리성국동지의 사업과 생활속에 소리없이 와닿았다.

리성국동지는 인민군대적으로 젊고 능력있는 지휘성원이였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 중히 여기시는 실력가형의 일군이면서도 사람들앞에 별로 나타내지 않은 아버지처럼 언제한번 자신을 크게 여기며 으쓱해하지 않았다. 왕별을 단 장령이였으나 실생활에서는 병사처럼 소박하고 평범한 그를 부대지휘관들과 병사들 누구나 따랐다.

그 성품이 과연 타고난것이였는가. 리성국동지가 남긴 수양수첩에는 이런 글들이 있다.

《2014년 1월 8일

사람이 한생을 후회없이 곧바로 산다는것은 헐치 않은 일이다. 특히 당의 신임속에 일정한 사회적직분이 있는 책임일군일수록 더욱 그렇다. 간부일수록 늘 자신을 채찍질하며 수양을 쌓아나갈 때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따라 혁명의 장구한 인생행로를 곧바로 갈수 있다.》

《2015년 4월 30일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믿고 내세워주실수록, 경애하는 원수님을 자주 몸가까이 모실수록 맑은 거울앞에서 제 모습을 비쳐보는것처럼 자신을 늘 수양하고 채찍질해야 한다. 내가 오늘 경애하는 원수님앞에서 몸가짐을 바로하였는가, 말과 행동에서 정중성을 보장하였는가를 량심적으로 돌이켜보아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수준이 제일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세를 낮추어야 한다. 당에서 준 직무의 높이가 결코 인격의 높이, 도덕적수양의 높이가 아니다. 이 나라의 평범한 로동자나 병사들가운데는 인격이나 수양에서 나보다 높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첫 페지에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를 정중히 모신 그의 수양수첩은 매일매일의 충성과 량심, 도덕을 비추어보는 맑은 거울인 동시에 그가 한생토록 그대로만 살고싶은 훌륭한 혁명선배이며 전세대인 아버지와 나누는 마음속대화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105돐을 하루 앞둔 주체106(2017)년 4월 14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뜻깊은 태양절을 맞으며 한급 높은 군사칭호를 수여받은 인민군지휘성원들을 만나주시였다.

그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륙군상장의 칭호를 수여받은 리성국동지앞에 이르시여 말씀하시였다.

《아버지가 살아서 상장의 군사칭호를 받은 동무를 보았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시였겠소.》

순간 리성국동지는 군사복무의 첫걸음을 떼던 시절 최전연에서 병사생활을 한 다음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대장이 되라고 하며 군인 수십명을 거느린 소대장이면 대단하다고 하던 아버지의 말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하였다.

군관이 된 아들의 모습을 한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

아버지는 비록 인민군소대장도 크게 여기였지만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를 한개 전선을 맡은 군단장으로, 륙군상장으로 키워주고 내세워주신것이였다.

리성국동지의 가슴속에 크나큰 격정이 차올랐다. 그는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맹세다졌다.

(내 삶의 하늘이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받들어 충성을 다해가겠습니다.)

그날의 맹세를 리성국동지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안고 살았다.

두해전 최고사령부의 작전적구상과 의도를 받들어 서남전선을 믿음직하게 지켜가던 리성국군단장이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가 수도에 자리잡은 중앙병원에서의 치료에 이어 다른 나라에까지 가서 치료를 받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하지만 병세는 야속하게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리성국동지가 해당 부문 일군들을 찾았다.

《조국으로 돌아갑시다. 한초가 급합니다.》

자기 병은 이미 기울었으니 더 남아있을 필요가 없다고, 한시바삐 경애하는 원수님 품에 돌아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는 그의 절절한 말에 일군들은 더 만류하지 못하였다.

조국으로 돌아온 날 저녁 리성국동지는 안해에게 제일 좋은 필기도구와 원고지를 가져다달라고 하였다. 온종일 불치병의 말기증상에 따르는 극심한 아픔에 시달리고있는 그가 뜻밖의 부탁을 하는 바람에 안해는 영문을 몰라하였다.

그때에야 리성국동지는 자기의 속생각을 터놓았다.

《지난 몇해동안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현지시찰을 수행하며 조국과 인민, 병사들을 위해 바치시는 그이의 열화같은 사랑과 하많은 로고를 직접 체험한 내가 아니요. 그 모든것을 언제부터 글로 남기고싶었는데 일이 바쁘다나니 하루하루 미루어왔소. 이러다가는 내가 력사의 죄인이 될것 같소. 죽는것은 결코 무섭지 않은데 그것만은 정말 두렵구만.》

우리 병사들이 제일 좋아하는것이 바로 경애하는 원수님에 대한 이야기라고, 자기의 생이 끝나기 전에 한가지도 빼놓지 말고 다 적어놓아야 하겠다고 절절히 토로하는 리성국동지를 보며 안해와 자식들은 오열을 터치였다.

성한 사람인 경우에도 집필사업은 헐한 일이 아니다. 칼로 내장을 우벼내는것만 같은 아픔이 계속되는 속에서 그는 《믿음과 사랑》이라는 제목을 달고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한손으로는 배를 그러안고 다른 한손으로는 원주필을 틀어쥐고 모진 아픔을 강잉히 참아가며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여 충성과 흠모의 글줄을 이어간 리성국동지,

당과 수령이 맡겨준 과업을 성실하게 수행하는것도 충실성이다. 하다면 당과 혁명, 시대앞에 지닌 의무를 스스로 자각하고 생의 마지막날까지 한초한초를 깡그리 바치는 그러한 헌신성과 희생성은 정녕 무엇이라고 해야 하는가.

누구나 쉽게 발휘할수 없는 결사의 각오와 의지로 경애하는 원수님의 일화묶음집필을 끝낸 리성국동지는 군사복무를 마치고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공부하고있는 아들에게 정히 넘겨주며 신신당부하였다.

《이 이야기들은 반드시 세상에 전해져야 한다.》

생의 마지막시각을 10여일 앞둔 2018년 10월 중순 어느날 군단장병들은 리성국동지가 병원침상에서 써보낸 편지를 받았다.

《군단장병동지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끝까지 관철하지 못하고 떠나가는 나를 용서해주십시오.

그러나 나는 동지들을 믿습니다. 나의 몫까지 합쳐 군단이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높이 받들어 싸움준비와 군기확립, 군인생활 등 모든 면에서 전군의 앞장에 서기를 바랍니다.

나의 심장의 박동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나는 마지막순간까지 전진하는 군단의 대오속에 같이 있을것입니다. 분발하고 분발하고 또 분발하여 군단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바라시는 최정예군단으로 강화해나갑시다.

전투적인사를 보냅니다.》

이렇듯 리성국동지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경애하는 원수님께 충성을 다하였다.

리성국, 리경선동지들은 한창 혁명에 몸바칠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의 한생보다 더 귀중한 사상정신적재부를 우리 혁명력사에, 이 땅의 새 세대들에게 남기였다.

충실성의 억센 뿌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과연 어떻게 계승되는가.

수령앞에서나 가정앞에서나 두 모습이 아닌 오직 한모습으로 사는 사람만이 충실성을 참된 삶의 바통으로 후대들에게 굳건히 물려줄수 있으며 값있게 산 전세대의 모습을 항상 거울로 비추어보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수양하는 사람만이 그 어떤 풍파속에서도 절대로 흐려지거나 변이되지 않는 고결한 충실성을 지니게 되는 법이다.

 

* *

 

수령이 잊지 못하는 전사로 값높은 영생을 받아안은 리성국동지와 리경선동지,

그들의 고결한 삶은 참된 인간만이 당과 수령께 충직한 혁명전사가 될수 있다는 철리를 우리모두의 심장속에 새겨주고있다. 한가지 큰일을 해놓았다고 해서, 당과 수령의 은덕을 받아안고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소리높이 부른다고 해서 다 충신이라고 말할수 없다. 참된 인간, 참된 충신은 언제나 수령의 마음속에 살고 수령이 걸머진 중하를 스스로 헤아릴줄 알며 그것을 덜어드리기 위해 많은 일을 찾아하고도 혁명전사의 응당한 본분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혁명은 한세대에 끝나지 않으며 전세대들이 새 세대들에게 물려준 가장 귀중한 유산인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야말로 우리 인민이 대대손손 영원히 계승하여야 할 숭고한 사상정신적풍모이다.

온 나라 전체 인민이 당과 수령께 대를 이어 끝까지 충성다한 리성국, 리경선동지들의 훌륭한 집안가풍을 따라배울 때 우리의 일심단결은 더욱 굳건해지고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이 빛나게 완수될것이다.

 

주체109(2020)년 5월 30일 《로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