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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7


강산호는 김일의 앞에 머리를 푹 떨구고 서있었다. 열정이 넘쳐 불깃하던 그의 얼굴은 풀이 죽어 근육이 느슨해지고 부석부석했으며 쭉버그러진 어깨도 축 처져보이였다.

김일은 산호를 한번 힐끗 쳐다보고는 말없이 보고있던 문건을 그냥 들여다보았다. 산호는 전전긍긍하여 하회를 기다리고있었다.

김일은 어디엔가 전화를 걸었다.

《…응, 종업원들이 다 발동되였구만.… 타자수처녀 혼자서 5키로를 수집했다구?… 지방에 있는 삼촌에게 가서 해왔단 말이지? 영희가 용쿠만.… 그만한 동이면 황해남도 인민들을 우리가 크게 도와줄수 있겠소.… 그럼 전선공장에 보내주어야지.…》

송수화기를 놓고 미소를 짓고있던 김일은 그제야 앞에 서있는 산호에게 생각이 미친것처럼 물끄러미 그를 응시하였다. 그러는 김일의 주름깊은 얼굴에서 인자한 미소는 어느새 사라지고있었다.

《동무가 무엇때문에 불리워왔는지 알고있소?》

김일의 엄한 물음에 산호는 흠칫 놀라 머리를 쳐들었다. 지금까지 산호가 김일에게서 동무로 불리워본적은 별로 없었다.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데서는 언제나 자식 대하듯 너라고 허물없이 불러주었던것이다.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딱딱하게 부르는 《동무》라는 그 소리는 산호에게 이전의 모든 애정을 다 무시한다는 선포처럼 아프게 들리였다.

《알고있는가?》 김일의 목소리가 더 크고 엄엄하게 방을 울리였다.

《예, 제가 잘못했습니다.》 산호는 주접들고 당황하여 황황히 말하였다.

《말해보오. 동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저는 인민들이 살림집에 비물이 새고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고생을 한다는것을 알면서도 돌볼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몇번 제기를 받았으나 대담하게 달라붙어 보수하려고 하지 못하였습니다. 다 제가 인민생활에 무관심했던 탓이였습니다. 이제부터 채심하고 잘하겠습니다. 다시는… 절대로 인민들로부터 신소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다요?》

산호는 김일이 자기의 비판을 불만스러워한다는것을 느끼면서도 대답이 궁하여 머리를 떨군채 배밑에서 두손을 맞잡고 주물거리며 서있었다.

《아직 결함의 본질을 찾지 못했소.》 하고 김일이 말하였다.

《아직도 동문 자기 결함을 실무적으로 보고있단 말이야. 뭐 인민생활에 무관심했다구? 말은 그럴듯하게 하는구만.》

김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그는 창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내 산호동무에게 우리 수령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소. 1958년도에 있은 일이요. 수령님께서는 평양시 건설부문 일군들을 만나 여러가지 문제를 토의하시다가 방안에 앉아서만 의논해서는 탁상공론이 될수 있다면서 그들을 데리고 거리로 나가시였소. 그이께서는 청년거리에 있는 한 다층주택으로 들어가시여 2층에 있는 한 세대를 찾으시였소. 그리고 그 집 주인아주머니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시였지. 집안형편을 물어주시다가 집이 살기 좋은가고 물으시였소. 집이 좋다고 하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을 들으시고는 마루바닥을 손으로 짚어보시며 옛날 우리 할아버지들은 따뜻한 온돌방에 올방자를 틀고앉아서 며느리한테서 밥상을 받아야 사는것 같다고 했다고 말씀하시는것이였소. 수령님께서 이렇게까지 허물없이 말씀하시자 주인아주머니는 어려움도 잊고 평소에 생각하던것을 그대로 말씀올리였지. 사실 그렇다고, 늙은 부모들을 모시는데다 갓난아이를 키우는데는 온돌방이 제일이라고…

주인아주머니의 이 말을 들으시고 그이께서는 수행한 일군들에게 〈어떻소? 아주머니의 말이 옳지 않소? 아주머니가 참으로 좋은 의견을 말하였소. 인민들이 좋다면 다 좋은것이요. 앞으로 다층주택들에도 온돌방을 놓을수 있는가 연구해보는것이 좋겠소.〉라고 말씀하시였소. 그것은 다른 나라 살림집구조를 그대로 받아문 건설부문 일군들에 대한 비판이였고 건설에서 교조주의를 철저히 없애고 주체를 확립하자는 선언이기도 한 귀중한 말씀이였소.

이어 수령님께서는 방안을 둘러보시더니 자를 찾으시여 손수 방안 길이와 너비를 재여보시고 멋없이 지내 길다고 하시면서 생활에 편리하게 적당히 막아주는것이 좋겠다고 가르치시기도 하시였소. 부엌으로 내려가시여서는 가시대와 찬장에 있는 그릇들과 쌀독, 창고까지 일일이 살펴보신 다음 부엌은 녀인들이 아이를 업고도 불편없이 일할수 있도록 넓게 하여야 하겠다는 말씀도 하시였소.

그리고 주인아주머니에게 더 제기할것이 없는가, 앞으로도 생각나는것이 있으면 서슴없이 당에나 관계일군들에게 의견을 제기하라고 이르시고 그 집을 나서시였소.

이날 그이께서는 일군들에게 말씀하시였소. 인민들의 행복한 생활을 위하여 건설도 하고 혁명사업도 하는것인데 인민들의 의견과 생활형편을 몰라서야 되겠는가, 지도일군들은 밑으로 내려가고 밑에서는 우에 더욱 접근해서 모든것을 잘 상론해야 우리 일이 잘 펴나간다고…》

창을 등지고 산호를 향해 돌아선 김일의 얼굴에는 안타깝고 절절한 빛이 가득 어려있었다.

《내가 왜 이 말을 하는가? 산호동무가 우리 수령님의 슬하에서 큰 일군인데 수령님의 뜻을 너무나 모르고있기때문이야. 한 나라 수령께서 인민의 집을 찾으시고 생활형편을 료해하고 불편한 점을 풀어주자고 애쓰는데 동무는 신소를 받고서도 모르쇠를 해? 이게 어디 일군의 자세와 립장이 됐는가.》

김일의 말은 산호의 가슴을 저릿저릿하게 쑤시고드는것만 같았다. 산호는 자기의 결함이 얼마나 엄중한가를 새삼스럽게 깨닫고있었다.

《우리 일군들이 수령님을 잘 받들자면 철저히 수령님을 따라배워야 해. 인민을 위하여! 바로 이것이 그이께서 제시하시는 모든 로선과 방침, 모든 사색과 판단의 전반을 관통하고있는 사상이며 사랑이라는것을 잊으면 벌써 일군의 자격을 상실하는거요.》

《제가 정말 자격이 없습니다.》

산호는 더욱 깊이 머리를 수그리며 진심으로 말하였다. 그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싶으리만큼 자기자신이 수치스러웠다.

《동무는 단단히 비판을 받아야겠소.》

산호는 가슴속으로 차디찬 얼음덩어리가 떨어지는것만 같았다.

《비판을 받아야 하겠소.》라는 김일의 이 간단한 말에 담겨진 의미가 얼마나 큰것인지 누구도 다는 알수 없었다. 산호는 김일이 비판을 받아야겠다고 말하면 그건 벌써 일이 간단하게는 끝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여러 간부들에게서 들었었다. 단순히 비판으로 끝나는것이 아니라 수령님께 보고될수도 있었고 또 해임철직으로 이어질수도 있는것이였다.

산호는 허둥지둥 김일의 집무실에서 나왔다. 서기실에 있던 허룡이 그를 동정하여 찾았다.

《산호동지, 한대 피우고 가십시오.》

산호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허룡이 권하는 의자에 앉았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잘 아는 사이였다. 허룡이 진성봉과 만경대혁명학원을 함께 다녔고 성봉이 형님처럼 산호를 따른 관계로 허룡과도 자연스럽게 사귀게 된것이였다.

《내가 크게 과오를 범한것 같소.》

산호는 담배를 붙여물며 말하였다.

《1부주석동지가 산호동지에게 대단히 노했습니다. 글쎄 지금까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더라니까요.》

《그렇소?》 산호의 얼굴이 더욱 컴컴해졌다.

《그렇게까지 비관할거야 있습니까. 우선 자기비판을 허심하게 하십시오.》

《거야 여부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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