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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4


전쟁시기의 일들을 돌이켜보노라니 김일은 새삼스럽게 김책이나 강건이 그리워졌다. 그들은 간고한 전쟁의 나날에 자기의 생명을 수령님과 조국을 위해 바치였다. 만약 그들이 살아있었더라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제꼈을것인가.

김일은 어쩐지 그들에게 죄를 진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까짓 병때문에 손발이 묶여있다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먼저 간 전우들의 념원까지 다 합쳐 수령님을 받들어야 할것이다.

김일은 어디론가 흩어져버렸던 힘이 서서히 온몸에 모아지는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나는 아직도 일을 할수 있다. 치료받기 위해 다른 나라에 간다는게 말이 되는가.)

김일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해빛이 유난히 밝게 느껴진다. 김일이 환자복을 벗으려는데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오시오.》

장종학이 음식꾸레미를 한가득 들고 들어섰다. 그의 혈색좋은 얼굴엔 왜선지 서글픈 미소가 어려있었다.

(분명 내가 중병에 들었다는 소리를 들었겠지.)

김일은 장종학의 자기를 위하는 그 심정이 리해되였으나 짐짓 눈살을 찌프렸다.

《장동무가 어떻게 왔소?》

《총리동지가 앓으신다기에 찾아뵙고싶어서 왔습니다.》

장종학은 김일의 병상태를 가늠해보듯 지그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러는 그의 얼굴에는 침침한 그늘이 비끼였다.

《총리동지, 퍽 못쓰게 되였습니다.》

《할일도 많겠는데 무엇때문에 날 찾아다니는거요?》 김일의 목소리는 퉁명스럽게 울리였다.

《총리동지가 사람들이 면회오는걸 달가와하지 않는다는 소릴 들었습니다. 그래도 오고싶었습니다.》

장종학은 주눅들지 않고 다가와 꾸레미속에 들었던 꿀병이며 과일 등을 탁자우에 꺼내놓았다.

《그저 내 성의뿐입니다. 총리동지, 오늘은 일요일 휴식일입니다. 그러니 날 쫓을 생각은 아예 마십시오.》

김일은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장동무한테는 어쩔수가 없군. 내가 어떻게 옛친구를 내쫓겠소. 어서 앉소.》

장종학은 의자를 김일의 가까이에 끌어다놓고 앉았다.

《그래 장동무는 건강이 일없소?》

《예, 속탈이 좀 있긴 하지만 일하는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건강관리를 소홀히 하지 마오. 나처럼 된병에 걸리면 큰일이야.》

김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그래 사람들이 내가 다 죽게 되였다고 말하지 않소?》

《아닙니다, 그저 총리동지가 너무 무리하여 중병에 걸렸다는 정도로 말하고있습니다. 총리동지, 마음쓰지 마십시오. 이제 치료를 잘하면 나을겁니다.》

《나을수도 있겠지. 그런데 사람이 지지리 앓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걱정만 끼치면서 살아선 또 뭘하겠소. 동무한테니 말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난 불치의 병에 걸렸소. 난 다 알고있소.》

김일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탁자우의 서류들을 들추더니 여러장의 신문을 꺼내들었다. 신문의 종이와 활자, 사진들로 미루어 우리 신문이 아니였다. 김일은 그 신문을 장종학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적들의 신문이요. 이 대목을 한번 읽어보오, 나에 대해 어떻게 썼는가.》

장종학은 어쩐지 섬찍한감을 느끼며 김일이 지적해준 대목에 눈길을 주었다.

《북한정권의 거두 김일 사망.》

종학은 놀라서 얼굴을 쳐들었다.

《이놈들이 어떻게 허튼 나발을 불어대는지 더 읽어보오.》 김일은 침착하게 말하였다.

종학은 더 읽어보았다.

《…유피아이, 비비씨통신이 전한데 의하면 북한정권의 총리 김일이 급병으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김일은 반만반일 게릴라시절부터… 의 충실한 전우로 활동하였는바 8.15해방후와 6.25내전때에는 군의 요직에서 정권을 뒤받침하는 위치에 있었다.… 전후에 김일은 북한정책 집행의 일선에 서서…》

신문을 읽는 종학의 볼편이 푸들푸들 떨리였다.

그는 적들의 신문을 김일에게 돌려주며 격분하여 말하였다.

《정말 고약한자들입니다.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그럴듯하게는 꾸며댔군요. 글쎄 장례식에 대해서도 썼으니…》

《이게 바로 놈들의 심리전이라는거요. 민심을 오도해보자는거지. 그래서 난 어떻게 김일이 살아있는가를 보여줘야겠소. 참된 혁명가는 침대에서 죽는 법이 없지.》

《그럼 총리동지는 그 몸으로 일을 한다는겁니까?》

《그래, 난 그만큼 치료를 받았으면 됐소. 아직 내 몸엔 힘이 충분히 있소.》

《안됩니다.》 장종학이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김일은 그를 보지 않고 태연한 자세로 말하였다.

《내 나이 올해 예순네살이요. 이만하면 살만큼 살았소. 예로부터 〈인생 70고래희〉라는 말이 있소. 그건 70살까지 사는 사람이 드물다는것을 의미하는 말이지. 사실 난 수령님의 사랑이 아니였더라면 이미전에 죽었을 몸이요. 65년도에 다 죽게 된걸 수령님께서 구해주시였소. 수령님께 더는 걱정을 끼쳐드리고싶지 않소.》

김일은 천천히 일어났다.

《총리동지,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안됩니다.》

장종학이 눈물이 글썽해서 김일의 팔을 부여잡았다.

《종학동문 날 잘 알지. 난 한번 결심하면 흔들리는 법이 없소.》

종학을 응시하는 김일의 희슥한 눈섭이 두드러지면서 얼굴이 서슬이 낀듯 엄해졌다. 종학은 문득 자세가 굳어졌다. 그는 김일의 바위처럼 드놀지 않는 이런 태도에 위압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이때 방문이 열리면서 허창숙을 위시해서 김일의 가족들이 들어왔다.

《장동무 말마따나 오늘이 휴식일이 분명하군. 몽땅 쓸어드는걸 보니…》하고 김일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김일의 아들 박용석의 부부와 손자들, 딸 박은희의 얼굴이 보이였다.

그리고 30대중엽나이의 름름한 체격을 가진 인민군군관이 가족을 데리고왔다. 그 인민군군관은 김일이가 친아들처럼 여기는 진성봉이라는 사람이였다. 진성봉은 지금껏 외국주재 우리 나라 대사관에서 일하다가 귀국하였기때문에 김일이와는 실로 오래간만의 상봉이였다.

《그래 그간 건강했느냐? 이젠 아예 들어왔느냐?》

김일은 군관복차림을 한 진성봉의 끌끌한 자태를 아래우로 훑어보며 물었다.

《예, 새 직무에 배치되여 사업하게 되였습니다.》

《당의 신임이 크구나. 너희들은 언제든지 수령님의 은공을 잊어서는 안된다.》

김일은 자기의 말에 제가끔 결의를 표명하는 가족들을 미덥게 바라보았다. 박용석이까지 3대외독자였던 가문이 이제는 대가족이 된셈이였다. 당중앙위원회 부장으로 사업하는 박용석은 김일이처럼 입이 무겁고 행동이 진중하였다.

그리고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력사연구소에서 사업하는 박은희도 대견스럽다. 김일은 은희에게 칭찬의 말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내 네가 쓴 시를 읽어보았다. 잘 썼더구나. 네가 자기가 맡은 일을 잘할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은희는 얼굴을 붉히였다.

손자 박충선은 저도 할아버지의 칭찬을 받고싶은지 중학교에서 시험을 쳤는데 자기가 5점을 맞았다고 자랑을 한다.

《그래, 그래… 용쿠나.》

《할아버지, 난 대학사로청위원으로 선거되였습니다.》 맏손자 박광선이도 한마디 하였다.

《허허… 우리 손자들이 다 자랑이 있구만.》

이윽고 김일은 허창숙을 보며 말하였다.

《오늘 괜히 여기 온것 같소. 난 이제 당장 퇴원할테니까…》

《아니, 그건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허창숙의 유순한 두눈이 휘둥그래지고 가족들도 모두 아연해서 김일을 쳐다보았다.

《그리 알고 돌아들 가오. 참, 너희들 영화 보고싶겠지?》

김일은 손자들을 둘러보았다.

《그럼 너희들은 영사실에 가서 영화들을 보다 가거라. 은희도 함께 보겠으면 그렇게 하고…》

김일은 할말을 다했다는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허창숙은 장종학에게 다가가 슬그머니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예요?》

《나도 모르겠습니다.》 장종학은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총리동지가 결심하면 어쩌는수가 있습니까. 아마 총리동지는 비장한 결심을 하신것 같습니다.》

누구도 김일의 앞길을 막아나설수가 없었다. 허창숙은 그것을 잘 알고있었다.

허룡서기와 림병욱부관이 김일을 동행하였는데 그들의 얼굴에는 자기들의 무맥함을 한탄하는 빛이 력연하였다.

떠나가는 김일을 바래우는 허창숙의 두눈에는 눈물이 글썽하였다.

《어머니, 이럴수가 있어요? 중병을 앓는 아버지를 저렇게 내보내면 어떻게 합니까?》 하고 진성봉이 불만스러운 눈길로 허창숙을 쳐다보았다.

《내가 어떻게 저 령감을 만류해낼수 있겠니. 누가 저 령감의 고집을 당해내겠는가 말이다. 너희들도 아버지를 잘 알지 않느냐.》

진성봉의 얼굴에도, 박용석부부의 얼굴에도 추억의 빛이 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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