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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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들이 림시수도로 선포한 대전이 해방된 후 서울에 있던 전선사령부는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작은 산골마을인 수안보로 이동하게 되였다. 보름달이 환하게 떠오른 밤 인민군군인들을 태운 한대의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였다. 그것은 경비소대의 일부 인원들로 이루어진 전선사령부 선발대였다. 전선사령부 군사위원 김일이 그들과 동행하고있었다.
자동차는 기세좋게 내달린다. 전선이 있는 남쪽을 향해 행군해가는 일부 인민군대오가 전조등에 비쳐진다. 그런가하면 미군포로들을 실은 호송자동차가 마주 달려오기도 하였다. 밤이 이슥하여 다시 도로는 고요해진다. 포성은 먼 남쪽에서 둔중하게 울려오고있었다.
장령복차림의 김일은 경비소대 군관 그리고 운전사와 함께 차안에 앉아있었다. 앞시창을 바라보는 김일의 얼굴에는 근심의 빛이 짙게 어리였다. 그는 그 시각 전선사령부에 두번째로 찾아오시였던
아, 얼마나
전선사령관 김책이 평양에서 지휘하셔도 되겠는데 또다시 전선으로 나오시면 어떻게 하는가고 우려의 말씀을 올리자 동무들이 전선에서 수고하는데
김일이 울적해지는 심정을 걷잡지 못해 심란해하는데 옆에 앉았던 군관이 말을 걸어왔다.
《군사위원동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김일은 비주름히 미소를 그리며 군관을 돌아보았다.
《내 산호와 얘기를 한다는게 그만…》
다부진 체구에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하고 열정이 내풍기는 젊은 군관, 그는 림산호였다.
《군사위원동지, 이젠 약속을 지킬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하고 산호가 불만스러운 어조로 말하였다.
《약속을 지키겠소. 전선사령부의 이동전개가 끝난 다음엔 산호동무를 놓아주겠소.》
《정말입니까?》
산호는 격동된 어조로 말하면서 김일을 슬쩍 돌아보았다.
김일은 군사위원으로 임명되여와서야 산호가 경비소대에서 복무하고있음을 알게 되였다. 김일은 1946년 황초평에 건너가 산호를 만나본 후에 인차 보안간부훈련소 제1소 문화부소장으로 소환되면서 신의주를 떠났었다. 그후엔 산호를 만나지 못했는데 전쟁이 그들의 상봉을 마련해준것이다. 그런데 산호는 김일을 만나서부터 일선전투부대에 가게 해달라고 졸라댔다. 김일은 대전을 해방하고나서는 일선에 보내주겠다고 산호에게 약속했었는데 이제는 그 약속을 지켜야 할 때가 왔다.
(산호가 이제 일선부대에 가면 본때를 보일것이다.) 하고 김일은 생각하였다.
산호를 보낼 작정을 하고나니 어쩐지 산호와 함께 있고싶은 심정을 억제하기 어려웠던지라 김일은 산호와 함께 차에 올랐었다.
전선사령부안에 있다고 해도 단둘이 만나 오래 이야기를 나눌만 한 겨를이 지금까지는 거의 없었다.
《얼마전에 김람인선생을 만났댔소. 선생이 산호의 안부를 묻더구만.》
《어디서 만났댔습니까?》
《금강도하장에서였소.》
…그때 김일은 적들의 맹폭격으로 끓어번지는듯 한 금강에 나가있었다. 인민군대가 금강을 넘어서면 대전이 위험에 처하게 됨을 잘 알고있는 적들은 금강을 《불퇴의 선》으로 선포하고 인민군대의 강도하를 막아보려고 발악적으로 나왔다.
전선사령부는 적들의 폭격으로 무선기들이 파괴된 조건에서 통신보장을 위해 금강에 선을 늘이도록 하였다. 통신병들은 자동차다이야 쥬브를 타고 강을 건너다니며 선을 늘여나가고있었다. 기본도하장과는 떨어진 곳이였지만 때없이 눈먼 포탄이 날아와 터지면서 물기둥을 일으키군 하였다. 통신보장이 중요하였기때문에 강건과 군사위원 김일이 여기에 나와있었다. 선을 늘이는 전투가 성과적으로 결속되여 강건이 송수화기를 들고 전투명령들을 하달할 때 김일은 통신참모에게 말하였다.
《우리 통신병들이 용감하오. 짧은 시간에 선을 늘였거던. 공로있는 동무들에게 훈장을 내신하도록 합시다.》
잠시후에 김일은 기본도하장으로 갔다.
인민군전사들은 나루배와 구명대, 나무판대기를 비롯한 각종 도하기재를 리용하여 강을 도하하고있었다. 김일은 도하장에서 싱갱이질을 하는 두 군관을 발견하였다. 안경을 쓴 나이 듬직한 군관은 막 떠나려고 하는 나루배를 타겠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못 탄다고 막아나선다. 가까이 가보니 제지당하고있는 나이 듬직한 군관은 뜻밖에도 김람인이였다.
《김람인동무, 이리 오시오.》 김일이 소리쳤다. 람인이 김일을 보고 기뻐하며 달려와 인사를 하였다.
《이게 얼마만이요? 헌데 어떻게 군복을 입었소?》
《인민군 종군기자입니다.》
《그러니 람인동무는 종군기자의 임무를 수행하겠다는거로구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 김일이 람인동무를 도와야지. 하지만 우리에게 담배한대 나누어 피울 짬이야 있겠지. 자, 한대 피우기요.》
김일은 김람인에게 담배를 권하였다.
김일이 평북도를 떠난 후에 김람인은 우여곡절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김람인은 도당의 요직을 차지했던 종파분자를 날카롭게 비판한것때문에 그자에 의해 출당철직되였었다.
《김람인동무야
《군사위원동지도
람인은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말을 이었다.
《참,
《그렇소,
《우리
《람인동무의 말이 옳소. 잘 싸우시오. 그리고 전쟁이 끝나면 옛친구들끼리 한번 모여앉자구, 장종학동무랑… 그리고 림산호도 있지.》
《산호가 전선사령부에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맞습니까?》
《림산호는 전선사령부 경비소대에 있소. 지휘관이요. 나에게 전투구분대에 보내달라고 성화를 먹이군 하지.》
《림산호를 한번 만나보고싶군요. 시재가 있는 청년인데 너무 일찌기 문학을 포기한게 지금도 아쉽게 생각됩니다.》
《시인이 되기 전에 먼저 참다운 사람이 되여야지요.
람인동무는 종군하면서 좋은 글을 많이 쓰오. 내 하나 부탁할가? 군사위원으로라기보다 혁명동지로서 부탁하는거요.》
《무엇입니까?》
《동무야 기자이기 전에 시인이 아니요. 우리 인민군대의 영웅적모습을 형상한 서사시를 잘 써보오.》
《알겠습니다. 나도 단단히 각오를 하고있습니다.》
김람인의 안경이 해빛을 받아 번쩍이였다.
《좋소. 동무가 쓰는 작품들에 우리 군대가
동무가 훌륭한 작품을 써낸다면 제일로 기뻐하실분은 바로
김일은 김람인을 이끌고 도하장으로 갔다. 전선군사위원앞에서 도하장군관은 다른 소리를 할수 없었다. 김일은 김람인과 그리고 인민군전사들과 함께 나루배에 올랐다. 나루배는 불타면서 사납게 들끓는것만 같은 금강을 건너갔다.
머리우에서 적비행기들이 돌아치면서 폭탄을 떨구고 기총사격을 퍼부어댔다.
인민군병사들이 적기들을 향해 일제사격을 들이대였다. 격분한 김일은 한 전사의 경기관총을 빼앗아들고 적기를 향해 맹사격을 퍼부었다.
한대의 적기가 불길에 휩싸여 떨어지고있었다.
마침내 배는 대안에 당도하였다. 여기서 김일은 김람인과 헤여졌다.
김일은 전사들과 함께 달리는 람인의 뒤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김일에게서 람인을 만난 이야기를 듣고나서 산호는 말하였다.
《람인선생님은 정말 훌륭한분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극악한 반동분자가 된 내 형이 군사위원동지의 어린 자식을 죽이고 아주머니를 부상입힌 다음부터 나를 외면했지요. 물론 나도 선생님을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지금 나는 선생님에게 죄를 지은듯 한 심정입니다.》
김일이 말없이 산호의 복잡한 심경을 헤아려보고있는데 남쪽하늘에서 우릉우릉하는 비행기동음이 울려왔다.
《군사위원동지, 적비행기입니다. 계속 달리잡니까?》 운전사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잠간 대피하기요. 보름달이 밝아 적기에 발견될수 있소.》
김일의 명령에 따라 자동차는 도로옆의 풀숲에 들어가 은페하였다.
이윽고 미국놈들의 비행기편대가 북쪽으로 날아갔다.
다시 차가 출발하려는 순간 총소리들이 몰방으로 터지였다. 어떤 놈들이 자동차를 습격하는것이였다. 총알이 유리창을 꿰뚫으며 짱하고 옆시창에 금이 갔다. 산호가 와락 김일을 감싸안으며 차문을 열었다.
《하차하여 놈들을 제압하라!》
적재함에 탔던 병사들이 대응사격을 가하면서 뛰여내렸다.
적아간에는 치렬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인민군병사들의 강력한 대응전에 습격자들이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보잘것 없는 놈들이였다. 쉽게 무너지는것을 보아 아마 괴뢰군패잔병무리들인것 같았다.
오금을 꺾고앉아 전투상황을 감시하던 김일은 몽둥이를 드세게 치는듯 한 타격을 왼쪽어깨죽지에 받았다. 저도 모르게 어깨죽지를 그러잡았던 손을 펴보니 끈적끈적하니 피가 발렸다.
《부상당하지 않았습니까?》
옆에서 놈들에게 사격하던 산호가 물었다.
《한방 맞은것 같소. 제기랄…》
산호는 다급히 위생병을 찾았다. 위생병이 당도하는것과 함께 산호는 기관단총을 쏘며 내달리였다.
《추격하여 소멸하라!》
산호의 명령에 따라 대원들이 일어서서 총을 쏘며 내달리였다.
《개새끼들…》
산호의 씹어뱉는듯 한 목소리가 총소리들속에서도 또렷하게 들리였다.
잠시후 전투는 끝났다. 전사들은 자동차곁에 모여들었는데 산호는 보이지 않았다.
《소대장동무는 어디 갔소?》 김일은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저기에 있습니다.》
한 전사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멀리서 누군가 땅에 전지불을 비치고있었다. 김일은 그곳으로 갔다.
훤한 달빛에 죽어너부러진 놈들의 시체들이 보이였다.
땅을 그러안으려고 모지름을 쓰는듯 한 자세로 엎드려죽은 놈, 자는듯 한 태평한 자세로 네활개를 펴고 죽은 놈, 배가 아파 참을수 없어 배를 그러안고 태질하다가 숨이 넘어간듯 한 자세로 온몸을 달팽이처럼 꼬부리고 죽은 놈… 각양각색의 시체들이 여기저기 일정한 거리를 두고 널려있었다. 산호는 어떤 시체앞에 머리를 숙이고 서있었다.
《왜 그렇게 서있는거요? 안면이 있는자인가?》
산호가 김일에게로 얼굴을 돌렸는데 그것은 모진 고통이 어려 침침하고 이지러진 모습이였다. 산호는 한순간에 백년이나 늙어버린것만 같았다. 그는 갈린 목소리로 말하였다.
《군사위원동지, 이자는 제게 형이 되는 림의호입니다.》
《옳긴 옳소?》
김일이 전지불로 최후의 순간에 그 무엇을 벼르듯 듬성듬성한 이발로 입술을 앙다물고 굳어진 시체를 비쳐보는데 산호가 놈의 증명서를 내밀었다.
(산호가 쏴죽였는가?)
《나도 믿어지지 않아서 증명서를 뒤져보았습니다. 림의호가 맞습니다.》
김일은 림의호의 괴뢰군장교증명서를 보고나서 머리를 끄덕이였다.
《음― 여기서 죄악의 인생의 막을 내렸구만. 그래 산호는 형의 죽음을 놓고 무슨 생각을 하고있나? 조상이라도 하는게 아니요?》
《형이라는 사람이 우리와 맞불질을 하다가 죽었다는 사실이 어쩐지 기막히게 생각되였습니다. 내 운명이 기구하다는 생각도 들고…》
《림의호는 제 갈길을 갔소. 우리도 갈길이 바쁘니 어서 떠납시다.》
잠시후 전선사령부선발대는 자동차에 올라 다시 도로를 내달리였다.
야산들과 벌판들이 빠른 속도로 마주달려왔다가 뒤로 사라진다. 포성은 더욱더 가깝고 크게 들려왔다. 벌써 화약내가 풍기고 화염으로 공기가 달아오른듯 더위가 운전칸에 물큰거리였다. 전선이 바투 다가서는것이였다.
《군사위원동지, 크게 다치지 않았습니까?》 산호가 흰 붕대로 감싼 김일의 부상자리를 다시 살피며 근심스럽게 물었다.
《일없소. 뼈는 상하지 않은것 같소.》
《내가 군사위원동지에게 또 죄를 진것만 같습니다.》 산호는 침울하게 말하였다. 《나와 한피줄을 나누었다는 놈때문에 이번엔 군사위원동지가 부상을 당했군요. 해방후엔 아주머니가 부상을 입고 아들애가 죽었지요.…》
《됐소, 그만하오. 죄는 지은데로 가고 물은 곬으로 흐르는 법이요. 악한짓을 하는 놈은 벌을 받기마련이지…》
《차라리 이렇게 일찍 결말이 지어진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난 일찌기 형과 사상적으로 결별하고 그를 증오하였지만 어쩐지 혈육이라는 그 감정이 늘 나를 괴롭히였습니다. 오늘도 그의 시체를 보았을 때 어째서 형이라는자가 이렇게 미국놈의 앞잡이로 개죽음을 당해야 하는가, 그를 옳바른 길로 이끌어줄 기회가 과연 없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쩔수없이 자기 환멸에 빠져들었댔습니다.
이제는 결산했습니다.》
김일은 옆눈으로 산호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 순간에 다부진 체격이며 까맣고 정열적으로 불타는듯 한 눈, 코날이 성큼하게 들린것이 어쩐지 강정익을 련상시키는 그 얼굴과 모습이 별로 련민의 정을 강하게 안겨주는것이였다.
《우리는
《명심하고있습니다. 군사위원동지, 난
《결심이 좋소. 우리 언제나
자동차는 수안보의 산기슭으로 들어서고있었다.